동족학살 범죄는 세월이 흘러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

글: 림구호(4.9진상규명위원장)

 

서북청년단 호림부대 인제, 영천, 경산, 청도 등에서 민간인 학살

백선엽(시라카와 요시노리), 한국판 간도특설대 호림부대 창설 지휘

살육으로 개성 1사단장된 백선엽 전쟁 발발하자 부대 버리고 도주

다부동 전투, 미군 압도적 화력으로 승리, 백선엽 영웅 동상 세워

▲ 윤석열 정부는 백선엽을 다부동 전투의 '영웅'으로 떠받들어 동상을 세웠다(편집인 주).
▲ 윤석열 정부는 백선엽을 다부동 전투의 '영웅'으로 떠받들어 동상을 세웠다(편집인 주).

[간도특설대와 서청 호림부대, 시라카와 요시노리]

49년에서 50년 사이, 장기면 마현리 탄광의 창고는 서북청년으로 창설된 호림부대의 소굴이 되었다.

이들 호림 서청은 좌익혐의자의 가족 친지들을 잡아다 남자는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난타하고, 군화발로 사타구니를 차거나 대검으로 배를 찔렀다.

여자는 윤간하고 젖가슴을 칼로 오려내거나 성기에 대검을 박았다. 죽은 남자는 목을 베어 장기숲 고목에 매달고 여자는 거적때기로 덮었다.

공포에 전율한 주민들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호림부대의 살인만행은 강원도 인제에서 영천(학살 383인 확인), 경산, 청도를 거쳐 거창에 이르는 피바람의 학살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악랄하고 더러운 강도범죄는 금품을 요구하다 성사되지 않으면 악질좌익으로 몰아 잔혹하게 살해하였다는 사실이다.

백선엽은 48년 4월 육본정보국장에 취임하여 학살로 악명 높은 서청(367인) 중심의 호림부대를 창설 지휘한다.

시라카와 요시노리에게는 한국판 간도특설대라 할 것이다. 43년 간도특설대는 잡은 항일전사를 산채로 작두살인하고, 총검으로 학살하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만행을 즐겼다.

이런 일제의 이이제이 부대 추악한 악질의 한국인 장교로 백선엽, 김백일, 손석하, 김석범, 신현준, 이 용, 임충식, 윤충일, 박창암이 있다.

이들 만행에 중국인들은 한국인하면 치를 떨었다 한다. 불행하게도 이들이 한국 창군의 간판얼굴이다.

백선엽은 호림부대의 살육전과 덕분에 49년 개성지역 1사단 사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50년 전쟁발발시 부대 지휘는커녕 병력을 내버려 둔채 도주했다.

50년 8월 다부동전투에 국군1,6사단과 미제1기병사단은 인민군 3개 사단과 대치한다.

미군은 B29, 98대를 동원 폭탄 960톤(히로시마 원폭 1,400톤)을 융단폭격하였다.

인민군 3개사단 3만 중 2만4천이 폭사하고, 남은 병력은 모두 철수해버렸다. 이 폐허가 된 유학산 고지를 백선엽은 태극기를 흔들며 산책했다.

백선엽 1사단은 미군과 함께 북진하면서 상주, 괴산, 보은, 청주에서 양민을 강간 학살하는 토벌작전까지 자행하였다.

이런 박정희, 백선엽은 맥아더를 알현하고 북에 핵을 사용하자고 진언했다. 그런 알랑방귀에 맥아더는 입가로 웃음을 흘렸다.

북녁땅은 모든 지역이 이미 초토화 되어 핵을 사용할 곳이 사실상 없다는게 미군부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백선엽 동상을 철거하라고 외치고 있다(편집인 주).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백선엽 동상을 철거하라고 외치고 있다(편집인 주).

1940.9.27. 독·이·일 3국이 반공동맹을 체결한다. 1905년 영일동맹으로 조선을 합방한 일제는 이 동맹으로 태평양 신질서의 지배 주도권을 획득한다.

일제는 이를 계기로 한글신문을 폐간시키고 창씨개명을 강행하며, 파쇼 군부독재를 강화한다. 그리고 지주 자본가의 자산가계급과 자유주의 민족주의 세력, 기독교세력을 내선일체 견마지로에 광분하게 한다.

이들의 피 토하는 승리의 간절함이 산천을 메우고, 반소반공과 미영귀축 박멸, 징용징병 동원에 본격 돌입한다.

이에 광분한 조선특설대는 양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중국8로군과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가진자 출신의 군경과 친일관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공반소 전선에 총동원 옥쇄돌진을 결행한다.

1945년 일제가 훈련시키고 사상을 무장시킨 이들은 다시 맥아더 미군이 제공하는 붉은 선글라스를 쓰고 좌익사냥에 나선다.

피와 살, 비명과 죽음의 지옥문을 여는 선봉에 월남 탈북 무리 서북청년단(회)이 있다.

이들 붉은 선글라스에는 임산부도 아동도 칠십노인도 없었다.

더구나 백선엽의 "백야사"는 지리산 빨치산 4,000명을 토벌하는 작전을 전개하여 사살 5,840인 생포 5,700명의 전과를 특히 미군부에게 진상하였다.

적어도 사살된 2천 내지 3천 여명은 양민인 지리산 마을주민이었다. 이 잔인하고 비열한 전쟁범죄가 미군의 관리된 총애를 받았다.

누구도 따라 갈 수없는 동족학살 범죄의 대기록으로 참모총장이란 똥별을 어깨에 달았다. 이런 백선엽을 영남의 그 많은 항일 애국지사들을 물먹이는, 동상이고 기념관이냐?

꽃피고 새 울던 내 고향 봄바람이 이제 살육의 비명에 쫒겨 평양으로 만주로 나그네길을 떠나야 하는가?

TK 70 치끼들이 염치도 없이 술잔들고 참배한다고 헤롱거리며 줄을 서면, 이제 나의 고향은 그들의 땅이 되는가?

70치끼 떼거지야, 5.16잘난 장학생들아, TK를 맹지맹토로 맹글어 쥐박무리와 일베떼의 소굴로 흥청거리게 할 좀비짜리 야심인가?

양키간세와 토착왜구 떼가 만세와 지화자를 연창하는 거리굿을 봐야, 못난 직성이라도 풀리겠는가? 왜들 이래, 허허참,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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