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이 나누어야 세상이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글: 이범주(시사평론가, 한의사)

 

세상은 한 치 앞을 못 보는 불안 속 병든 사회

나누면 해결되는데 소수가 노동 성과물 다 차지

76년간 재벌, 가진 자가 이끈 나라, 치유방법 없어

약물, 게임중독, 우울증으로 정신병동 젊은이 가득

 

▲ 10대, 20대 정신병동을 채우고 있다고  머리기사로 보도한 조선일보(편집인 주)
▲ 10대, 20대 정신병동을 채우고 있다고 머리기사로 보도한 조선일보(편집인 주)

늙으나 젊으나 한국에서의 삶은 피곤하다.

최근 들어 지인들의 부고가 자주 전해진다. 형제처럼 가까이 지냈던 이들이 세상 떴다거나 몹쓸 병에 걸렸다는 전언 들으면, 젊었을 적 그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 기억하는 나로서는, 마음 아프고 아쉽고 슬프다.

더불어 나 또한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몹쓸 병으로 아프고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 한둘이 아니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이 그렇고 인생사의 부침(浮沈) 또한 그렇다. 한때 돈 많이 벌며 잘 나갔던 이들이 그 좋은 흐름을 잘 이어가지 못해 결과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한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세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불가피한 곤란과 위기를 넘어서지 못해 결과적으로 실족한 경우에 해당된다. 누가 실족하고 싶었겠는가, 누가 그 실족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곤란은 느닷없이 등장하고 위기는 늪처럼 늘 행로 상에 잠복하는 이 변화막측 분단된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이가 적잖게 들 때까지 아프지 않고 생계에 큰 곤란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얼마간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비교적 다행스러운 처지에 있더라도 이웃과 벗들의 불행, 곤란이 언제든 나의 것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불행과 곤란은 대개 개인의 몫으로 된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불안의 포로다. 그리고 이는 마음 병을 부른다.

나누면 모두가 모자람 없이 더불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오로지 소수가 (타인 노동의 성과물인) 핵심자산(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 이유만으로 그것의 소유에서 배제된 대부분 사람이 불안하게 쫓기며 살아야 한다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대부분 그렇게 흘러 왔지만, 과거와 지금이 다른 것은, 과거에는 그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기도 했으려니와 문제 제기조차 불가능했다.

이에 반해 지금은 그 문제가 해결 가능한 과제로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인류가 해결한 전례를 갖고 있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 사회가 소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물녘에 도달한 우리의 삶도 그렇지만 더욱 암울한 건 이 나라 젊은이들이다. 출산율 떨어진다고 개탄하고 걱정해 보았자 뭐하나, 적게 태어나는 귀한 애들만이라도 잘 키워야 할 거 아니냐.

오늘 조선일보 머리기사에 이렇게 나온다. “정신과 폐쇄 병동 1020으로 가득 차” 숱한 젊은이들이 게임중독, 우울증, 약물중독으로 고립되거나 자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며 사회에서 이탈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젠 젊은이들마저 그 아름다워야 할 푸른 청춘에 영혼이 죽어 나가고 있다.

분단된 상태에서 미국과 재벌,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해 75년 이상 작동되어 온 이 나라가 더 이상 여기 사는 민초들을 건강하게 부양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실증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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