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고래들이 노니는 락원이었다.

글: 안국진(시사평론가)

 

동해의 이름순서 고래바다, 고려해, 조선해, 한국해

동해를 고래바다로 부른 문헌은 삼국시대로 올라가

신라 해운 최치원부터 조선왕조 태종실록, 문집에 다수

 

▲ 동해는 고래 바다로 불렸다.
▲ 동해는 고래 바다로 불렸다.

 

1597(정유)년 섬나라 것들의 재침으로 다시 난이 발발하고 이듬해인 1598년 정월 명나라 군사의 도움으로 왜적을 몰아붙였다. 이에 당시 의병장이었던 수은(睡隱) 강항(姜沆 1567~1618)은 울산에 있던 왜적의 절반이 고래밥이 되었고, 호남에도 순천 등지에도 소수의 왜적만 남게 되었다며 기쁜 마음으로 시를 썼다.

“고래바다에 하늘의 위력이 움직이니, 벌떼 같은 놈들은 달무리처럼 포위되었네”. ​

강항은 뒤에 섬나라에 잡혀갔다가 돌아와 간양록을 썼다.

고전번역원은 이 글에서도 두 번이나 나온 ‘경해(鯨海)’를 모두 ‘큰 바다’라 번역했다. ‘경(鯨)’은 ‘큰’이 아니라 고래다.

강항(姜沆), 간양록(看羊錄), 섭란사적(涉亂事迹, 난리를 겪은 일의 기록), “鯨海天威動, 蜂屯月暈成.”

고래바다, 고려해, 조선해, 한국만.

해운(海雲) 최치원은 향약잡영 5수를 썼는데, 그 중 ‘금환(金丸)’이란 시에서 금구슬을 돌리니 고래바다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읊었다. 국사편찬위워회가 만든 한국사 DB에는 “경해(鯨海, 고래바다)”를 “넓은 세상”이라 번역했다. 『삼국사기』 제32권 잡지(雜志) 제1음악[樂] 향악잡영시 ‘금환’, "定知鯨海息波瀾“

고래바다, 고려해, 조선해, 한국해.

사도세자의 후견인이자 정조의 스승이었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인 노계정(盧啓禎, 1695~1755)의 묘갈명에 쓴 글이다. 노계정이 있을 때 왜구가 소란을 피우지 못해 무용(武勇)을 드러낼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상한 놈들은 분명 "경해"라 적혀있건만, “큰 바다”로 번역한다. 눈에 백태가 끼었는지 알 수 없다. 채제공, 『번암집』 제 50권, 無地用武, 鯨海晏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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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는 경상감사로 임명된 윤방(尹昉, 1563~1640)을 송별하는 시에서 군영을 제대로 만들면 왜구가 설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이때 윤방은 군영설치 책임자였다.

이정구, 『월사집』 제16권. “轅門事重須開府, 鯨海波恬不碍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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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온 송희경(宋希璟, 1376~1446)이 후쿠오카의 하코자키에서 유숙을 할 때 서쪽 큰 바다를 보며 읊은 시다. 섬나라의 서쪽 바다는 우리 바다다.

* 학정(鶴汀)은 학이 서식하는 모래톱.

송희경, 『노송당일본행록(老松堂日本行錄)』 3월 4일, “日月垂鯨海, 風煙接鶴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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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 1396)은 이런 나라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어 했다.

이색, 『목은시고』 제5권, "虓虎風生鯨海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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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태조가 표전문과 관련하여 사신을 억류하고 시비를 걸었다가 권근이 탁월한 수재라 놓아준다면서 3편의 시를 썼다. 이에 답하여 권근은 우리나라에 대한 시를 24편 썼다.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 〈마한(馬韓)〉시, 조선왕조실록. 태조 6(1397)년 3월 9일. 渺渺馬韓地, 區區鯨海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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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이던 권필이 조선해를 보고 지은 시. '명해관도(溟海觀濤, 아득한 바다에서 파도를 본다)'. 풍이(馮夷)는 장자에 나오는 물의 신.

권필, 『석주집』 제 7권. 鯨海茫茫逈接空, 馮夷鼓浪駕雷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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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때 시를 잘 지어 송도삼절로 불리던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명나라에서 친구가 왔을 때 고래바다를 보여줬다고 했다. 그의 시 “해산정(海山亭)”에 나온다. 금강산 앞 바다에 서면 저렇게 보인다. 앞은 고래바다 뒤는 금강산.

차천로, 『오산집』 제2권, 東臨鯨海三千里, 西挹金剛一萬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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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 1432~1492)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자는 구하고 자신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박제상을 그리는 시.

『점필재집』 시집 제 3권, "鵄述嶺頭望日本, 粘天鯨海無涯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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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이 동래현을 설명하며 쓴 글.

『용재집』 제5권, 적거록(謫居錄), "蜒煙籠地墊, 鯨海蹴天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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