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오녀산성이 졸본성이라는 것은 식민사관엥서 나온 것이다.

글: 전우성(관세사, 역사저술가)

 

졸본성으로 알려진 오녀산성 고고학 문헌학 근거 전무

산동성 고구려 평양성이 있던 곳이 고구려 도읍지 졸본성

현재 오녀산성=졸본성은 대륙서 조작되어 이동한 것

▲ 졸본성 이동도
▲ 고구려 초기 도읍지 졸본성 왜곡 이동도

 

[고구려 졸본성 위치 확인]

현재 우리 고대국가인 고구려 초기 도읍지인 졸본성이 한반도 북부 요령성 환인시 오녀산성으로 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이 오녀산성은 이 위치로 설정한 일제 식민사학들의 당시 조사보고서에 의하여도 역사학의 기본 2축 중의 하나인 고고학적 자료를 전혀 확인되지 못하였음이 확인된다.

더군다나 다른 역사학의 기본 2축 중의 하나인 문헌학적인 사료에도 전혀 맞지 않는 설정에 의한 것이 명확하다.

문헌학적 자료에 의하면, 원래의 졸본성의 위치는 현토군 고구려현 위치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래서 우리 고대역사 비정에 의하면 현토군과 고구려 위치는 같이 동반되어 나타나게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확인결과, 중국사서가 고구려와 엄연히 다른 족속인 구려와 혼돈하여 생긴 것이다. 구려의 별종인 소수맥이 탄생한 소요수 즉 현토군 요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을 고구려 건국 위치로 잘못 본 것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설사 잘못된 이곳이라고 하더라도 그 위치는 현재의 한반도 북부가 확실히 아니다.

현토군 요산에서 발원하는 소요수는 요동군 양평현을 거쳐 흐른다.

그리고 이 소요수와 요동군 요대현에서 합류하는 대요수는 요동군 양평현의 서남쪽을 흐른다.

또한 이 소요수와 합류한 대요수는 압록수이자 마자수와 요동군 안평현에서 합류한다.

이 압록수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전』 상의 장성의 북쪽에 있다는 부여의 동쪽에 위치한 말갈의 전신인 읍루 말갈의 백산에서 흘러나온다.

이 말갈의 백산은 지금도 그 이름이 태백산(Taibai Mountain, 太白山)으로 산서성 대동시 영구현에 남아 있다. 요동군의 안평현(Anpingzhen, 安平镇)은 현재도 그 지명이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에 남아 있다.

여기서의 이 요동군 양평현은 산서성 위치의 연나라가 축성한 연장성 구간인 ‘조양~양평’ 구간이다. 이 연장성은 산서성 태행산맥에 연5군의 상곡군이있고 여기에 조양이 있는데 이 연장성은 조양에서 바로 동쪽의 하북성 지역인 양평현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 양평현은 연5군의 요동군 치소이자, 나중의 고구려 요동성이고 더 나중의 안동도호부 자리이다.

모든 사서에 기록된 바대로 현토군, 요동군, 안동도호부는 모두 유주이자 평주이자 하북도 지역으로써 지금의 하북성 지역임이 명백히 입증된다.

그러나 원래 이러한 위치에 있는 현토군 위치도 중국 측은 조작하여 이동시켰다. 현토군과 관련 있는 북진과 의무려산을 아예 요령성 요하 서쪽에 북진시와 이무려산을 조작하여 만들어 놓고 이동시켜 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원래의 하북성 지역의 현토군 위치 기록이 요나라 동경과 함께 이곳으로 왜곡 이동되어 버렸다.

■ 『삼국사기(三國史記)』「卷 第三十七 雜志 第六 地理 四 高句麗」

곧 《주례(周禮)》에서 보이는 북진(北鎭)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며, 대요(大遼)때에 그 아래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곧 이른바 주몽이 도읍한 곳이라고 말하는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아마도 한(漢)의 현도군(玄菟郡)의 경계이고,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이며, 《한지(漢志)》에 이른바 현도(玄菟)의 속현 고구려(高句麗)가 이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령성 요하 서쪽의 동경과 현토군 위치가 아닌 현재의 요령성 요하 동남쪽의 졸본성인 오녀산성은 이러한 왜곡된 위치 기록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한반도 고착화라는 일제 식민사관 논리인 정치적 이데올르기에 의하여 낙랑군을 한반도 평양에 위치시킨 것에 의한다. 이 낙랑군 위치 이웃에 현토군이 있어야 하기에 단지 그 북쪽인 한반도 북부 만주 지방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고구려 건국지와 초기 도읍지 졸본성의 위치는 이 현토군 고구려현 위치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이의 위치는 하북성 현토군 고구려현 위치 인근에 있었던 부여에서 출발하여 그 남쪽인 산동성의 엄리대수인 대수를 건넌 곳으로 확인된다.

이 대수의 남쪽에 있었던 사서 기록상의 백제와의 경계로써 작은 바다인 소해(小海)로 기록된 패수이자 패하의 북쪽에 고구려 평양성이 바로 고구려 초기 도읍지 졸본성이다.

이 졸본성을 흔히 중국사서에서는 하북성 평양성과 혼돈하여 평양성으로 기록하였고, 일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남평양성과, 「광개토태왕비문」상의 하평양성으로 확인된다.

이는 백제의 위치가 바로 이 패수의 남쪽에 있었던 한수 아래의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였던 백제 위치에 의하여도 확인된다.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가 한수 북쪽의 패수와 대수 등 3강이 나란히 평행으로 흐르는 곳에서 역사적 활동을 같이한 사실에 의하여도 명백히 입증된다.

여기서 대수는 지금의 산동성 마협하(Majia River, 马颊河),

남쪽의 소해이자 패수는 지금의 산동성 도해하(Tuhai River, 徒駭河),

다시 이 패수의 남쪽 한수는 지금의 산동성 황하(Yellow River,黄河)인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결국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성은

(1) 원래 위치인 산동성 고구려 건국 지역인 대수와 패수 사이에서

(2) 하북성 현토군 고구려현 지역으로

(3) 요령성 요하 서쪽의 요령성 북진시 의무려산 지역으로

(4) 요령성 요하 동남쪽 한반도 북부 요령성 환인시 오녀산성으로

각각 왜곡 조작되어 이동 설정된 것임이 명백히 입증된다.

앞으로 우리 고대사는 이러한 졸본성 위치에 의하여 역사를 정립시켜야 할 것이다.

 

* 전우성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ancient-history.youtubecreator/videos

   저서: <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 한솜미디어

 

* 위 기사는 본지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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