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이 우리역사를 파괴하여도 진실은 드러난다.

북주시대 왕포 고구려 시에 고구려 강역 하북성 보정시 까지

고구려 모본 태왕시기 산서성 태원까지 한나라 정벌한 기사

태조태왕 때는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아, 고구려 땅 만들어

 

▲ 고구려 강역을 나타내는 역수의 위치.
▲ 고구려 강역을 나타내는 역수의 위치.

시사비평가, 안국진 선생이 고구려 강역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를 찾아 내어 눈길을 끈다. 그는 서기2023.10.10. 자신의 얼굴책에 북주 시대 왕포가 쓴 고구려라는 시에 역수와 연조라는 땅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고구려가 양원태왕과 평원태왕 시기에 하북성 보정시 까지 고구려 영토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삼국사기에 유연제노오월을 정벌한 고구려 백제 기록을 들었다. 이는 중국 측 기록인 남제서에도 나타난다고 추가 근거를 제시하였다.

 안국진 선생의 주장은 다른 여러 사료도 간접 증명된다. 고구려는 초기 모본태왕 때 중국 산서성 중심지, 태원까지 쳐들어가 한나라를 정벌하였다. 이어 태조태왕때는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다고 하였다. 

요서는 현재 요하 서쪽이 아니라 하북성 란하라는 학설이 있다. 이 설은 요하 위치를 서쪽으로 최소한 이동하여 잡은 것이다.

당시 요하는 더 내륙 깊숙히 있었다는 설도 만만치 않다. 고대에는 요하가 현재 하북성 란하라고 하더라도 란하 서쪽에 10개성을 쌓았다는 것은 요하서쪽까지 고구려 땅이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유리묘, 고려영, 신성 등 고구려와 관련된 지명도 북경 인근과 하북성에 남아 있다. 현재 북경의 골동품 시장 이름이 유리창인데 이것도 고구려 유리태왕의 잔영으로 보인다.

다음은 안국진 시사 비평가의 고구려 강역 주장 전문이다. 

전문 

북주(北周) 시대 왕포(王褒, 약 513~576)가 쓴 “고구려(高句麗)”라는 제목의 시에는 “쓸쓸한 역수에는 파도가 일고, 연조 땅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많구나.[蕭蕭易水生波, 燕趙佳人自多.]”라는 구절이 있다. 시를 쓸 당시는 고구려 양원왕(545-559), 평원왕(560-591) 시기인데, 이때 역수와 연조 땅이 고구려 영토라는 말이다.

역수는 하북성 보정(保定)시에 있고, 연조는 하북 땅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와 조나라 땅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하북 지역(즉 황하 이북)까지 고구려 땅이었음을 증명한다. 고구려와 백제가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을 정벌한 기록은 삼국사 권46과 남제서(南齊書) 권58에 나온다. 역사는 왜곡해도 들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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