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와 고구려는 요하 넘어에도 있었다.

글: 전우성(역사연구가,  관세사)

 

 

부여는 진 장성 북쪽에, 고구려는 그 남쪽에 위치

모본왕 2년, 한나라 하북성 상곡, 어양, 태원 토벌

태조대왕 3년 요서에 한에 대비하여 10개 성 쌓아

 

▲ 부여의 위치
▲ 부여의 위치

 

[우리 고대국가 대륙 입증 결정적 자료 3가지]

그중 -1번째-

(1/3편 : 부여와 고구려 위치)

현재 우리 고대국가의 원조격인 부여와 고구려 위치를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켜 놓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사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산서성과 하북성 지역이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중국 정사 기록은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부여(夫餘)

夫餘는 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玄菟에서 천 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高句驪와, 동쪽은 挹婁와,

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방 2천 리가 되며, 戶數는 8만이다.

부여가 당시 장성의 북쪽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확인된다. 현재 이 사실은 현재 역사 체계에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당시 장성인 진장성은 지금의 하북성 북경시에도 못 미치는 하북성 보정시 서북쪽에 위치한다. 이에 의하면 우리 고대국가의 모태인 부여는 지금의 하북성 북쪽인 산서성 대동시 인근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남쪽에 고구려가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 의하면 현재 우리 역사에 의한 한반도 북부 북만주에 있는 부여와 그 남쪽의 한반도 북부 고구려 위치는 전혀 사서 기록에 맞지를 않는다.

현재 중국 측은 동북공정 차원에서 이 장성을 만주지방까지 연장하여 설정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 왜곡을 이용하여 그들의 역사 영역을 확대하고자 함이다.

이 기록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모든 역사학 체계가 달라진다. 이 기록상에서 거론한 다른 사항 역시 현재의 역사와 그 궤를 달리한다.

현재 역사학 체계에서는 고구려를 한반도 북부 지방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의하면 이전부터 고구려 주요 활동사항 중 AD49년 모본왕 시기의 산서성 태원등 공격 사건과, AD55년 태조왕 시기의 요서 10성 축성 사실 등을 해명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인한 사서 기록상의 위치인 산서성 이남의 하북성 사실에 의하면 그 이웃의 산서성과 같은 하북성 요서 지방 공략 사실이 명확히 입증된다.

또한 이 부여의 서쪽에 선비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비가 세운 나라인 삼연 즉 전연, 후연, 북연과 북위의 위치도 현재의 요령성 요하 인근까지에서 재조정되어야 한다.

또한, 이 부여의 동쪽에 읍루 즉 나중의 말갈이 있다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반도 동북부 흑룡강성 일대에 위치한 말갈의 위치는 달라진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탄생하였다는 발해의 위치도 달자진다.

이러한 이 기록 하나만 보더라도 모든 사항은 다른 관련 역사적 사항에 모두 부합되어 그 신빙성시 확인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많은 역사연구가들이 주장하는 대륙 우리 고대국가 논리이다.

이를 입증한 것이 바로 다음 편인 「2/3편 : 남말갈의 위치」와 「3/3편 : 남옥저의 위치」이다.

이들 사실에 의하면 우리 고대사의 중심 위치가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등 대륙 위치가 명백히 입증된다.

■별첨 자료 : 부여와 고구려 위치도 1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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