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천리장성의 위치를 바로잡으면 고구려의 대륙사가 보인다.

 

글: 전우성(관세사, 역사저술가)

 

수나라를 격파하고 세운 경관축조시기 조작

고구려와 신라의 갈등상태로 천리장성 축조

천리장성은 대륙 고구려와 신라의 산동성에

 

▲ 고구려 천리장성 위치
▲ 고구려 천리장성 위치

 

<기고문18>

[고구려 천리장성 조작]

고구려 천리장성에 대하여 현재 편성된 역사에 의하면 요령성 요하 인근에 위치한 채 고구려 서쪽 최대 영역인 요하 서쪽에 위치한 당나라를 겨냥하여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사서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축조 원인]

- 고구려 천리장성 축조(AD631~647년) 원인제공을 한 것은 중국사서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으로 살펴보면 중국의 당나라다.

- 하지만 그 축조원인의 근거인 이전의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하여 고구려가 승리를 기념하여 쌓은 경관의 허문 시기를 천리장성 축조 이전 시기로 사서가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고,

- 축조 당시 고구려와 긴장 상태에 있었던 상대는 당나라가 아니었다. 고구려가 비굴한 정도로 당나라와 지나친 화해 정책을 펼침으로써 나중에 강경파인 연개소문의 쿠테타를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 반면 당나라가 중재할 만큼 고구려와 신라가 상당한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축조 위치]

- 축조 위치가 사서 기록마다 달라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고구려의 동북(부여성)에서 서남(바다)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동북(부여성)에서 동남(바다)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 역사로 설정한 한반도 북부 만주지방에 따르면 천리장성은 동해로 이어지는데 이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와의 갈등 지역이 산동성 최씨 낙랑국과 관련된 남옥저, 죽령 지역이다. 사서 기록상 AD551년 백제와 신라의 연합 공격에 따라 고구려가 빼앗긴 땅을 이후에 온달 장군의 고구려 옛 땅 수복활동을 하였으나 실패하여 전사하였다.

나중에 신라 김춘추의 고구려 연개소문에 대한 연합제의가 이곳 지역 연고권 다툼으로 결렬된다.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한 것으로 알려진 연개소문 집안은 서부대인이 아니라 동부대인인 것으로 확인된다. 연개소문의 출신 지역이 한반도 북부와 요령성에는 맞지 않는다.

- 산동성 고구려의 신라의 서북쪽 위치 그리고 신라의 고구려의 동남쪽 위치와 천리장성의 동북인 부여의 동부여 위치, 그리고 서남이던지 동남이던지 당시 사서 기록상 바다(海)는 현재의 바다가 아닌 지금의 황하강이자 한수를 바다(海)다.

따라서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현재 역사가 설정하는 한반도 북부의 요령성 요하 동쪽에는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산동성 신라의 북쪽이자 고구려의 동쪽에 있었던 신라가 초기에 개척한 지역인 남옥저 죽령 지방을 두고 고구려와 신라와의 갈등이 심하여진 결과 천리장성을 축조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구려 천리장성 축조 대상은 산동성 신라이고, 축조 원인은 남옥저 죽령 지방 갈등에 의한 고구려와 신라와의 긴장 상태에 의한 것임이 확인된다.

고구려와 신라 위치를 한반도 북부 및 한반도 남부로 조작하기 위하여 중국 사서는 천리장성 위치를 조작하였다.

천리장성이 한반도 북부 요령성을 한 것은 경관의 허문 시기와 축조 원인을 당나라로 하기 위하여 긴장 상대를 신라가 아닌 당나라로 조작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서 기록의 왜곡 조작까지도 밝혀내어 우리 고대사를 올바르게 정립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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