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양에 낙랑군을 비정하는 것은 식민사관이다.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한나라 낙랑군은 위만조선이 있던 하북성에 위치

고구려 평양성도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과 겹쳐

산동성은 최씨 낙랑국이 있던 자리, 신라 강역 중복

 

▲ 낙랑국과 낙랑군은 구별되어야 한다.
▲ 낙랑국과 낙랑군은 구별되어야 한다.

 

<기고문17>

[2개의 낙랑]

낙랑은 우리 고대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것은 먼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과 한사군의 낙랑군은 원래의 낙랑땅에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초 낙랑이라는 지역과 이곳에 설치한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은 원래 위만조선의 위치인 하북성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낙랑 위치는 바로 위만조선의 위치이자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의 위치이다. 이는 또한 나중의 사서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평양성 위치이기도 하다. 즉 ‘하북성 낙랑지역 = 위만조선 지역 = 한나라 군현 낙랑군 = 고구려 평양성’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사서 기록에서 확인되는 또 다른 낙랑은 신라와 관련이 있고, 또한 최씨 낙랑국과 관련이 있다.

사서 기록상에 신라가 한나라 때 낙랑 지역에 있다고 하는가 하면 신라왕에게 낙랑군공, 낙랑군왕 등 낙랑 관련 호칭을 봉하는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최씨 낙랑군과 신라와의 낙랑과의 연관성에 의하면 많은 기록상에 백제의 동쪽이자 신라의 서쪽에 있어서 백제와 신라를 수시로 괴롭힌 세력이 바로 최씨 낙랑국인 것이 확인된다.

또한 원래 하북성 위만조선 지역에 있었던 낙랑이라는 명칭이 원래 이곳에 같이 있었던 최씨 낙랑국 세력과 신라의 낙랑이 산동성으로 옮긴 것이 확인된다.

이에 따라서 이들 세력이 같이 내려와서 산동성 지역에 최씨 낙랑국과 신라국이 건국되어져 역사적 활동을 같이 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므로 ‘옮겨진 산동성 낙랑지역 = 최씨 낙랑국 = 신라 지역’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 하북성에는 낙랑군, 산동성에는 최씨 낙랑국.
▲ 하북성에는 낙랑군, 산동성에는 최씨 낙랑국.

 

이는 이미 확인한 “3. 삼국의 형성과 위치(4) 신라” 편에서 신라의 이동과 관련하여 살펴 본 바와 같다.

따라서 낙랑 지역은 하북성 지역과 산동성 지역에 각각 있게 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낙랑 세력으로는 하북성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과 산동성 최씨 낙랑국으로 확인된다.

특히 산동성 최씨 낙랑국은 최씨 낙랑국왕인 최리와 호동왕자가 만난 옥저의 위치에 의하여도 확인된다.

즉 이 옥저는 하북성 위치 즉 사서 기록상 당시 장성의 위치인 산서성 남쪽에 위치한 동옥저나 북옥저가 아닌 북옥저 지방에서 남쪽으로 800여리 떨어진 산동성 지역에 있었던 남옥저 지역이다.

최씨 낙랑국왕인 최리와 호동왕자가 만난 남옥저 위치에 의하여도 이 최씨 낙랑국이 산동성 지역에 백제의 동쪽이자 신라의 서쪽에 있었던 낙랑 세력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최씨 낙랑국을 주류 강단 사학계의 한나라 군현의 한반도 평양 비정을 비판하면서 평양에 설정하는 논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동옥저와 북옥저의 위치가 당시 장성이 위치한 산서성과 하북성 경계지방인 하북성에 동옥저와 북옥저가 위치하고, 그 남쪽인 산동성에 남옥저가 위치하는 역사적 사실에 위배된다.

이러한 논리는 한반도 평양에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이 있다는 주류 강단 사학계의 논리를 비판하면서도 주류 강단 사학계의 옥저 위치에 대한 함경도 동해안 지방 위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순이 있는 잘못된 논리이다.

따라서 우리 고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낙랑에 대하여 이와 같이 사서 기록 전체에 맞게 비정함으로써 우리 고대사가 올바르게 정립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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