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은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이 있었던 곳이 아니다.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왕검조선의 고구려 평양성, 하북성 만성구 보정시

졸본성 남쪽 패수방향 평양성,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

북한 평양은 고구려 평양성을 도읍으로 한 곳 아냐

▲ 사료상 평양성은 두개로 나온다.
▲ 사료상 평양성은 두개로 나온다.

 

<기고문15>

[2개의 평양성]

고구려 평양성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과연 지금의 한반도 평안남도 평양일까?

당연히 고조선의 위치, 연나라의 위치, 갈석산의 위치, 연진장성의 위치, 한사군의 위치, 2개의 패수 위치를 보면 한반도 평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느 곳일까? 어느 곳이 모든 평양성 관련 사서 기록에 맞는 위치일까? 과연 위와 같은 사실에 의하여 맞지 않는 위치로 확인된 한반도 평양 외의 어느 한 곳 위치일까?

이미 2개의 패수가 있는 곳에 평양성이 있다. 중국사서에 산동성 패수 바로 북쪽에 평양성이 있다고 하였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상 남평양성으로 확인된 고구려 첫 도읍지인 졸본성이 고구려 평양성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사서 기록에서 확인되는 평양성일까? 그렇지 않다.

사서 기록상에 분명히 고구려 동천왕 시기에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17 고구려본기 제5 동천왕(東川王) 21년

21년(AD247) 봄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다.

원래 고조선의 왕험성 즉 고조선 평양성이었던 곳에 고구려 도읍을 천도하여 평양성으로 한 것은 당연히 하북성 평양성이다.

그러므로 고구려 평양성은 2개인데 하북성 평양성과 이미 앞에서 살펴 본 2개의 패수 중 산동성 고구려 졸본성 남쪽을 흐르는 산동성 패수의 북쪽에 있는 산동성 평양성이다.

우리 고대사 평양성을 한 개로 보고 한반도 평양에 비정하거나 대륙의 어느 한 곳으로 비정하는 것은 사서 기록에 맞지 않는 오류이다.

강단 주류 사학계가 고구려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성이 한반도 북부 길림성 집안시 일대라고 하는데 이는 고구려 평양성 기록 전체에 맞지 않는다.

강단 주류사학은 북한 평양에 위만조선의 왕검성이 있었고 한나라가 이를 멸하고 한사군의 낙랑군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낙랑군이 서기313년 고구려에게 망하자 대륙으로 낙랑군이 이동했다는 교치설을 주장한다.

평양성이 길림성 집안시 일대라고 한다면 만주 집안시 일대가 위만조선 지역이거니와 나중의 낙랑군 지역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위만조선과 낙랑군 위치는 한반도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다. 심각한 역사적 오류이자 모순이다.

그러므로 사서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 평양성은 2개로써 하북성 평양성은 그 위치상 위만조선 왕험성이 있었던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만성구 지역이고, 산동성 평양성인 고구려 초기 도읍지 졸본성은 산동성 패수인 지금의 산동성 도해하의 바로 북쪽인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 지방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고구려 평양성을 2개로 설정하여 그 위치를 정하여야지 모든 평양성 기록은 물론 모든 우리 고대사 관련 사서 기록에 맞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고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 평양성에 대하여 제대로 정함으로써 우리 고대사를 올바르게 정립시켜야 할 것이다.

▲ 낙랑군 이동조
▲ 낙랑군 이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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