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의 ‘전라도천년사’는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지침을 따른 것에 불과하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전라도천년사’, 벼농사시작 백제시대로 날조

청동기도 서기전 5세기 북방서 왔다고 조작

중견 식민사학자 송호정, ‘고조선은,

발생과 동시에 소멸, 평양은 중국 식민지’

‘평양 지역의 작은 나라, 단군은 신화 불과’

▲ 송호정이 축소 날조한 이른바 고조선 영역.
▲ 송호정이 축소 날조한 이른바 고조선 영역.

 

<전라도천년사>,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6)

고조선은 국가 형성과 동시에 망했고(송호정),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은 <삼국사기> 기록보다 훨씬 후대라는 주류강단 사학의 주장과 같은 흐름이 <전라도천년사>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기전 2,000년에 강리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데도 이 지역의 벼농사는 백제 시대부터였다고 기술한다던가, 서기전 5세기 청동기시대에 북방 이주민 문화가 전라도에 유입되었고, 기원전 2세기가 되어서야 철기문화가 전라도에 들어왔다는 등, 많은 기록이 전라도 지역은 매우 낙후된 지역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남 영암에서는 서기전 2,600-2,300년 경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었고(<전라도천년사> 집필진의 한 사람은 시료가 변해 측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변명한다), 청동기시대 유물이라는 고인돌은 세계 고인돌의 1/4 정도가 전라도에 있으니 전라도의 청동기 문화는 매우 앞섰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청동기시대에 작은 '정치집단'의 산물인 고인돌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전라도에, 서기전 5세기에야 북방에서 청동기 문화가 전라도에 들어왔다는 주장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집필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기술은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에 내린 내부 지침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야마토 왜가 4세기 중엽에 한반도 남반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지배했다는 판을 깔아주는 논리라는 것이지요.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은 '실제 역사적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의 고인돌무덤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인돌 무덤은 단군조선 이전 청동기시대에 발생하여 서기전 2천년기 전반기까지 성행하다가 서기전 2천년기 후반에 들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여, 돌곽무덤이나 나무곽무덤으로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서북조선 일대에서 벗어난 주변에서는 서기전 2천년기 후반기 이후에도 얼마 동안 고인돌 무덤을 썼다고는 합니다.

고인돌 무덤은 같은 청동기 유물일 텐데, 북한학자들이 고인돌 무덤을 서기전 2천년대 후반 이후에 점차 사라지는 유물로 보았지만, <전라도천년사> 집필자는 전라도에 엄청난 고인돌 무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기전 5세기에야 북방에서 청동기 문화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주장하는 내용들이 너무 차이가 커 어이가 없습니다.

▲ 윤내현이 문헌과 고고 유물로 증명한 단군조선의 강역
▲ 윤내현이 문헌과 고고 유물로 증명한 단군조선의 강역

 

이제 우리 역사의 '시기 축소' 문제는 여기까지 보고, '영역 축소'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송호정이 주장한 대로 '고조선은 국가 형성과 동시에 곧바로 멸망'했고, '그 자리에는 고조선을 정복한 한나라의 한사군이 설치'되어 '그중 평양에 설치된 낙랑군은 차후 400년간 사실상 한반도를 지배'했다면, 고조선이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내현은 <고조선연구> 상, 하에서 여러 고증을 거쳐 고조선 말기의 영토가 매우 광대했다고 주장합니다.

아래에 윤내현이 그린 고조선 지도와 송호정이 그린 고조선 지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어쩌면 이토록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까요?

송호정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고조선의 유물일 수밖에 없는 비파형 동검을 세분화하여 만주 지역의 동검은 한반도 동검과는 다른 것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 중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아래에 있는 동검만이 고조선 동검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논리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주 지역의 동검, 특히 홍산문화 지역이 고조선이 아니라 산융과 동호의 유물이라면 홍산문화 유물은 고조선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 실적을 전혀 내지 않고 있는 것은 혹시 이런 송호정의 연구 결과 때문이 아닐까요?

송호정의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고조선은 만주 지역으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억지가 아니겠습니까?

학자도 전문가도 아닌 내가 보기에는, 송호정은 마치 조선사편수회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 연구를 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송호정은 사실 '중국 고고학'에 기댄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므로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연구자라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주류강단사학자들의 주장처럼 고조선이 평양 근처에 있던 조그만 나라였고 나라를 세우자마자 멸망해 버렸다면, 그리고 단군은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단군의 자손도 아니고 고조선의 후손도 아닐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라도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에서는 고조선이라는 명칭 자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가 아니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전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은 고조선 영역이 아니어서 그럴까요?

이러한 영역 축소 문제는 사실 고조선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후 역사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송호정이 '전라도천년사'에다 그려놓은 고조선 위치.
▲ 송호정이 '전라도천년사'에다 그려놓은 고조선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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