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의 원자폭탄 투하는 소련에 대한 경고도 들어 있었다.

글: 안국진(시사평론가)

 

왜구, 1945.01. 이미 완전한 항복 미국과 러시아에 알려

미제 루즈벨트, 왜구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며 거절

원자폭탄 투하는 이미 만들어진 무기 실험, 소련에 경고

조선인 강제 동원 로동자들도 3만명 이상 인명피해 당해

▲ 1945.08.06. 미제의 원자폭탄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 1945.08.06. 미제의 원자폭탄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최소 70,000명의 사망자를 냈다. 1945년 8월 19일 시카고 트리뷴에 게재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 섬나라는 미국,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1945년 1월에 제안했다. (일본군의 완전한 항복, 만주, 한국, 대만 및 모든 영토 포기, 전쟁 도구 생산 중단 및 산업 규제, 전쟁범죄자의 인계 등)

- 1945년 6월 중순 섬나라는 러시아에 평화 제안 중재를 부탁했다.

- 루스벨트는 섬나라가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원자폭탄의 사용은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이자 경고였다.

- 원자폭탄의 사용은 이미 만들어진 무기에 대한 실험이었다.

- 히로시마 이전에 미국은 소이탄으로 도쿄를 파괴하여 100,000명 이상의 민간인을 죽였다.

이런 사실이 밝혀져도 히로시마 시장이나 섬나라 수상이란 자는 한 마디도 못한다. 저자들은 원래 약하면 잡아먹으려 들고 강하면 아래로 기는 자들이다.

그러니 저것들은 정신 못 차리고 핵폐수를 방류하려 하는 것이다. 원폭 투하 당시 최소 7만 명이 죽고, 후발성 후유증으로 70만 명 이상이 죽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저런 짓을 벌인다.일고의 동정도 필요 없는 자들이다.

*참고로 징용 한국인은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500~2000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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