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귀걸이는 북만주, 하북성, 한 땅이 같은 문화권임을 증거가 된다.

 

글: 허성관(전 행정자치부 장관)

 

인천서 북만주 답사 하얼빈 공항까지 1시간 40 걸려 도착

하얼빈은 고조선 장당경, 고구려 발해, 금나라 완안부 지역

우수리강 옆 요하연 소남산, 신석기 유물 집중적으로 전시

출토된 옥기, 중국인은 모르는 우리 선도문화 투영돼 있어

소남산 문화, 서기전 1만 5천 년 것, 우리 환국과 신시 문화

하얼빈 송화강 풍경, 현지 문화는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

 

허성관의 북만주 답사기 2

▲ 북만주 흑룡강성 박물관에서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옥결은 서기전 7000년을 아우른다.
▲ 북만주 흑룡강성 박물관에서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옥결은 서기전 7000년을 아우른다.

 

① 5월 19일(금요일) 인천공항 → 하얼빈 공항 → 흑룡강성박물관

→ 안중근 의사 기념관 → 송화강

* 답사에도 운(運)이 있어야!

8시 50분에 인천공항에서 하얼빈행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6시 30분에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했다. 4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에서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5시 20분에 공덕에서 공항버스를 탔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항상 가벼운 설렘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건강하게 다녀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약속한 시각보다 조금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일행을 만났다.

하얼빈행 비행기는 제주항공인데 다른 항공사와는 달리 자동 수속이 되지 않아 접수대에서 직접 짐을 부치고 좌석을 배정받았다.

소형 저가 항공사이기 때문인가?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구름이 낀 날씨라 하늘 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40분쯤 지나 바다를 건넜다. 비행 항로가 화면에 나타나지 않아 중국 영토 어느 쪽으로 진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려다보니 구름이 걷혔다.

골짜기 사이로 강이 흐르고 군데군데 저수지가 보인다. 골짜기 강가에 드문드문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아직 평원에 진입하지는 않았다.

한참 지나서 내려다보니 평원이 갈색이다. 봄이라 작물이 다 자라지 않아서 녹색 평원은 아니다. 하얼빈 가까이 이르자 온통 물이다. 모내기 철이다. 10시 30분 정시에 하얼빈 공항에 내렸다. 저가 항공이라 중간에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출출했다.

하얼빈은 인구가 1,000만이 넘는 중국에서 10번째 큰 도시로 흑룡강성 성도(省都)다. 북쪽으로 송화강에 면한 도시다. 이곳은 부여와 고구려 옛 땅이고 발해 때는 막힐부(鄚頡府)였다. 고조선 세 번째 도읍이 이곳에 있었다. 장당경(藏唐京)이다.

발해가 망한 후에는 금(金)나라를 건국한 여진족 완안부(完顔部) 거점이었다.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독까지 연장하면서 러시아풍 도시로 발전했으나 1905년 러일전쟁에 패배하고 1932년 일본이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우면서 러시아 영향이 사라졌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총살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현장이 이곳이다. 저 악명 높은 인간 생체 실험 현장 731부대도 여기에 있었다.

▲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를 알리는 알림장.
▲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를 알리는 알림장.

이 큰 도시의 비행장은 참으로 한산하다. 아마도 국제화가 미진한 탓일 것이다. 한 시간쯤 기다려 답사 1진이 탄 버스에 합류했다. 머나먼 이곳 하얼빈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다. 예정한 대로 곧장 흑룡강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2014년 8월 3일 관람한 적이 있는 박물관이다. 주변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변함이 없다. 2014년에 왔을 때 동북혁명열사 공적과 발해 유물을 대대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감동이 컸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니 이번 답사 핵심 유적인 우수리강에 면한 요하현(饒河縣) 소남산(小南山) 신석기 유적 출토 유물을 모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고 소개해 놓았다.

요하소남산유지 출토유물전(饒河小南山遺址 出土遺物展)이다. 사진에서 보는 노란색 굽이는 우수리강이다. 강 오른쪽은 러시아고 왼쪽은 중국인데 소남산 유적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 소남산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돌칼.
▲ 소남산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돌칼.

지난 몇 년 동안 홍산(紅山)문화와 소남산문화 연구에 천착해온 동행한 정경희 교수로서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지금까지 발굴보고서나 사진으로만 보던 소남산 유지 출토 유물 실물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가 답사 여행에서 맞이하는 행운이다.

▲ 소남산  유적에서 나온 옥결.
▲ 소남산 유적에서 나온 옥결.

옥(玉)으로 만든 장신구는 용도로 보아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로 구분되는데 서기전 7200∼6600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홍산문화 옥기 시기가 서기전 3500년까지 올라가니 소남산 옥기는 홍산문화보다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 학계는 요서지역 흥륭와문화(서기전 6200∼5200년)를 홍산문화 옥기의 시원으로 보다가 소남산문화를 시원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남산 옥기의 아름다움이 흥륭와 옥기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중국 학자들은 이들 옥기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정경희 교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전통 선도사상을 투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것이니 우리 눈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옥기는 대부분 하늘에 제사하는 천제(天祭) 때 착용하는 의기(儀器)이다. 옥기 사진은 흐릿하나 실물은 정말 아름답다.

이 옥기의 원석은 요동반도 중부에 있는 수암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수암에서 소남산까지 거리가 지금 기준으로 2000km가 넘는다. 옛 거리 기준으로는 5000리다. 아득한 태고 시기에 두 지역 사이에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소남산 문화는 서기전 1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우리 역사에서 신시 배달국 이전 환국 시대가 전설이 아니고 유물로 증명되는 역사시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교하고 멋진 옥으로 만든 칼과 토끼도 전시되어 있다.

고고학에 문외한인 필자는 박물관 1층 절반을 채운 소남산 출토 유적을 설렁설렁 감상할 수밖에 없다. 정경희 교수와 유태용 교수는 하루도 시간이 모자랄 듯하다.

▲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한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
▲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한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

흑룡강성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걸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2014년 이곳에 왔을 때는 방학 중이라 한국에서 온 학생들로 붐볐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관람객이 우리뿐이다. 전시물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현장이 유리창 너머로 뚜렷이 보인다. 누가 감히 대한민국에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가?

이 자들은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망한 지 오래된 대일본제국 충실한 신민일 것이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을까?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행들은 창 너머 총살 현장을 주시하면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 러시아 시절에 만든 하얼삔 중앙대로.
▲ 러시아 시절에 만든 하얼삔 중앙대로.

만달가일주점(萬達假日酒店)에 짐을 풀고 하얼빈 중앙대로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거른 탓으로 저녁을 달게 먹었다. 하얼빈에는 러시아가 경영하던 시기에 건설한 널찍한 중앙대로 가 남아 있다. 거리가 돌로 포장되어 있다.

대략 2km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송화강이 흐른다. 우리 일행은 밤이지만 송화강으로 향했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 걷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기름에 튀긴 묘한 음식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이 줄을 섰다. 생소하지만 맛이 좋았다.

만주 지역을 다니면서 송화강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오늘처럼 강변에서 송화강 밤바람을 쐬기는 처음이다. 시원하다.

어 그런데 배들이 불을 켠 채 정박하고 있다. 한강 유람선만 한 배다. 우리는 송화강 밤배를 타기로 한다. 강폭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배를 탄 강 한 가운데에 태양도라는 섬이 있고 섬 너머도 강이라 더더욱 얼마나 큰 강인지 알 수가 없다.

하얼빈은 여진족 말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송화강을 중심으로 고기잡이가 성했던 곳임을 알 수 있는 증거다. 배를 타러 가면서 보니 모래밭에 주먹만 한 까만 조개껍질이 널려 있다. 말조개라고 한다. 물고기 조개 곡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지역이니 신석기 시대에도 살기 좋은 지역이었으리라.

강 위로 케이불카가 오간다. 조명이 환상적이다. 우리 일행은 가볍게 노래도 부르고 행복하게 40여 분을 보냈다. 예정에 없던 호사다. 송화강에서 언제 밤 배를 다시 타 볼 수 있겠는가!

▲ 하얼삔의 송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만끽하였다.
▲ 하얼삔의 송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만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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