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문명개화가 아닌 미개함이 지배하고 있다.

 

류돈하(역사평론가)

 

중국 장각, 황건적의 난을 일으켜 후한 멸망

고려 의종 때 영의, 자리 이용하여 국고 탕진

지금도 몽상가 궤변에 지배받는 것은 마찬가지

▲ 사진과 글내용은 무관(無關)합니다. 오늘 기분이 무신의 난(武臣亂)과 비슷하여 영험한 무관[無冠]의 무인[巫人] 한분을 사진으로 올려본 것입니다.
▲ 사진과 글내용은 무관(無關)합니다. 오늘 기분이 무신의 난(武臣亂)과 비슷하여 영험한 무관[無冠]의 무인[巫人] 한분을 사진으로 올려본 것입니다.

도덕윤리의 근간을 뿌리채 뽑으며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고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자가 바로 국적(國賊)이다. 나라 망치는 역적은 속히 토벌하여 그 국법과 국체를 보전하여야 옳다.

역사 속 대표적 국적 중에 장각 그리고 영의가 있었다. 장각은 중국 후한 말 태평도의 교주로서 대현양사 천공장군이란 직함으로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중원을 크게 진동한 이 난은 중국 삼국시절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려 중기 의종때의 내시사령 영의(榮儀)는 사천대 사천감 영상의 아들이다. 사천대는 국가차원에서 천문을 살피며 국가와 황실의 길흉화복을 점치며 자문 역할을 하는 기구였다. 고려 초 꿈해몽에 탁월했던 최지몽이 이 사천대의 관리였다.

최지몽를 비릇한 사천대 관원들은 유교적 소양을 갖추어 필요이상의 기복과 신비한 의식은 지양하였다.

그런데 영의는 정도를 지나쳐 불교와 도교에 풍수지리 등 도참의 요소를 더하여 재앙을 물리친다는 이유로 제사지내는 사찰을 무리하여 짓게 하였다. 국고가 탕진될 정도였다.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은 영의는 백성들을 동원해 각종 궁궐과 별장을 짓는데 골몰하였다.

점쟁이 영의의 광적인 축성사업과 법회개최는 전술한 것처럼 서울 개경은 물론 지방의 재정을 고갈시켰다.

백성들은 공사 부역에 강제동원되었다. 계속하여 민생이 파탄나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만 갔다. 이렇듯 영의는 환관 정함. 백자단 등 국왕의 측근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비선실세였다.

그들의 행각은 결국 무신의 난이 일어나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장각과 영의는 국적이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시차가 천년정도 된다. 그러나 모두 천하를 어지럽히고 나라를 뒤흔들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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