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의기가 80년 독재 매국 식민사학의 아성을 허물고 있다.

 

 

일본서기의 임나 위치 기록은 현재 대마도

정상의 남북한 학자들 통설로 대마도 규정

국내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인 학자 설 추종

천년사는 일왕의 전라도 200년 통치 내용

식민사학의 성명서 발표는 기득권 지키기

호남 발 역사혁명은 시민의 승리로 끝날 것

▲ 국내 매국식민사학세력이 임나=가야로 하고 전라도를 일왕이 지배한 임나일본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본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자료출처: 김명성 얼굴책(페이스북)
▲ 국내 매국식민사학세력이 임나=가야로 하고 전라도를 일왕이 지배한 임나일본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본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자료출처: 김명성 얼굴책(페이스북)

우리민족을 왜구 황국신민으로 개조하려는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을 이어 받아 해방 후 80년 동안 일당 독재로 역사학을 자기들만의  수익구조로 만들어 지배하던 국내 식민사학계가 생존위기에 처하였다.

서기 2015년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독립투사의 역사관을 이어 받은 민족사학계와 식민사학계의 역사전쟁은 산발적이었고 일회성에 그쳤다. 

그러나 서기2015년 들어 이덕일 순천향대 교수와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씨와의 역사논쟁이 김현구씨의 고소로 법정으로 까지 비화되면서 역사전쟁은 전면전 양상을 띄었다.

식민사학계는 이덕일-김현구 재판이 진행되는 시기에 맞춰 여론전을 펼쳤는데, 서기2016년 봄 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동하여 시민강좌로 위장한 식민사관 전파에 열을 올렸다. 이듬해 까지 한성백제박물관과 공모하여 역사시민강좌라는 것을 열어 거듭 포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뿐만아니라 지방에서도 공세를 펼쳤는데 서기 2017년 경남 김해박물관에서 고대사학회가 중심이 되어 또 다시 김현구씨를 비롯하여 전국의 식민사학자들을 대거 동원하여 가야사를 빌미로 김해 시민들을 끌어 모아 식민사관을 주입하였다. 

이덕일 교수가 김현구 씨의 고소에 이겨 무죄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역사전쟁은 소강상태를 보였다. 누리망에서 간혹 소위 '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명명된 기경량, 위가야, 안정준 등이 이덕일 교수를 모독하고 비아냥 거리는 정도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 100대 국정 과제 중에 '가야사 복원' 사업이 추진되자 역사전쟁이 전면전 양상을 띄기 시작하였다. 식민사학계는 가야사 복원사업에 처음에는 정치가 학문에 간섭한다며 반대하는 듯 하다가, 때돈 버는 기회임을 알고 불나방처럼 뛰어 들었다.

식민사학이 해방 후 80년 동안 한번도 역사 권력 교체 없이 역사학을 독식해 온 구조라서 가야사 복원 사업을 할 수 있는 단체나 세력은 식민사학계와 식민고고학계 밖에 없었다.

 이들이 일본서기에 기초하여 식민사관으로 가야사를 덧 칠할 것은 불보듯 뻔하였다. 

예상대로 야마토 왜구가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식민지배하였다는 임나일본부설로 채웠다. 가야가 임나라는 것을 필두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인 일본서기 신공황후 조의 지명으로 경남과 전라도를 도배하였다. 신공황후가 지배한 지명을 그대로 박아 놓은 것이다. 이는 경남과 전라도가 일본 땅이었다는 것이다.

구한말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서기1910년 최종 강탈한 이론을 제공한 것이 이 임나일본부설이다. 당시 왜구는 엽서와 알림장을 대대적으로 찍어내어 뿌려 댔는데, 임진왜란 이후 비로서 고토를 회복하였다는 내용으로 채웠다. 

가야사 복원 사업에 1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가 투입되었다고 하는데 고스란히 식민사학계의 호주머니속으로 대부분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식민사학계의 가야사를 일본에 갖다 바치는 만행에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가 이용중 위원장을 중심으로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바른역사와 식민사관에 눈을 뜬 다양한 계층과 세력이 하나되어 전국적인 조직으로 뻗어갔다.

경남과 전라도를 중심으로 지회까지 구축되었고 바른역사를 알리고 식민사관을 고발하는 강연회와 토론회 등이 경남과 전라도에서 자발적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열리면서 역사전쟁 역량이 커져갔다. 특히 불교계에서도 도명, 지정 스님 등이 중심이 되어 뜻있는 스님들이 봉기한 것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가운데 식민사학 전모를 드러내는 사업이 추가되었다. 가야사 복원 사업이 국회의원들에게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는 의제가 되자, 이번에는 국회의원들까지 뛰어 들어 권역별 역사찾기 법안을 만들어 전국에 걸쳐 지방사 찾는데 예산을 투입하였다. 이 역시 경남과 전라도에 집중되었고 먼저 시행되었다. 

전라도가 전라도 천년 지방사를 만들겠다고 하자 식민사학계가 발벗고 나섰고 지방정부에서 20억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하였다. 서기2018년에 부터 수백명의 소위 전문가란 집단이 달려 들어 만든  '전라도 천년사'가 2022년 12월에 결과를  드러냈다.

결과는 참담하였다. 전라도 천년사를 쓴다면서 상고사 까지 다루었고 상고사에는 당연히 우리역사의 중시조, 단군을 역사로 서술하여야 함에도 유령 취급을 하였으며 벼농사도 백제시기에 시작하였다는 등 이 집단이 과연 역사학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내용들로 가득하였다. 

심지어 식민사관을 관철하기 위해 분명하게 있는 기록도 무시하고 식민사관에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궤변을 늘어 놓은 것이 발각되기도 하였다. 이래놓고 국민에게는 '사료비판'이니 '교차검증'이니 하며 마치 객관적으로 균형잡힌 서술을 한 것인양 선동하였다.

최근에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등 24개 단체 명의로 정당하게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민족사학계와 시민사회 단체를 사이비역사로 비난한 성명서로  '선량한 일반 시민들'은 사이비역사 세력에 속지 말라고 선동을 하였다. 

이에 전라도에서는 박형준 위원장을 중심으로 전라도 천년사 왜곡 날조 저지를 위한 전라도 범시민연대가 발족하여 대응에 나섰다. 시민사회가 들불처럼 일어나 저지투쟁에 나서자, 전라도 천년사를 집필한 집단이 지방정부를 통하여 하려던 편찬 봉정식과 출판을 미루고 출간전에 미리 전라도 천년사를 공개하여 전라도민과 시민사회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였다. 

전자책으로 된 것을 공개하였는데 충격을 넘어 경악자체였다. 전라도를 고스란히 일본 극우파에게 바치는 내용으로 가득하였다. 국조 단군을 없앤 것은 물론이고  일본하고도 상관이 없는 부분 까지 축소 왜곡하였다는 것이 시민사회 검증단의 검증으로 밝혀졌다.

전라도 지방의회와 지역구 국회의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시민사회단체의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이의제기를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면, 폐기하여야 한다고 촉구하였고 중앙언론과 지방언론들도 역사를 일본에 팔아먹는 역사범죄행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에 깜짝 논란 식민사학계가 생존에 위협을 느꼈고, 식민사관으로 결탁한 중앙일간지를 통해 성명서 형식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성명서는 이들의 민낯과 실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들은 학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이권을 위해 활동하는 이익집단이라는 것이고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도 서슴없이 팔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명서는 '내 밥그릇을 뺏으려는 세력은 그 누구도 그냥 두지 않겠다'는 공갈, 협박이었고 탄탄한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자금력이라는 기득권을 이용한 '식민사관 파괴행위를 멈추라'는 대국민 계엄령 선포였다.

성명서를 가장하여 독립투사 역사관을 잇고 있는 민족사학과 시민사회 단체 그리고 식민사학의 실체에 눈 뜬 학자, 언론인, 기업인, 학생,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와 비판을 '사이비역사'로 비난하였다. 

이에 이들의 실체를 고발하는 확성기 논객들과 식민사관 타도 시민연대가  반격에 나섰다. 실체가 드러나 위기의식을 느껴 급하게 뿌린 성명서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버렸다.

왜곡 날조한 전라도 지방 천년사에 대하여 따지고 비판하는데 왜 중앙의 식민사학 집단이 주동하여 사이비 역사 운운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하냐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전국의 지방 역사학과 고고학을 지배,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한 몸임을 성명서가 밝혀 주었다. 

민족사학의 반격이 거센 가운데 최근 식민사학에 뼈때리는 비판을 연이어 쏟아내는 논객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원광대에 출강하고 있는 김명성 전 전주 한국방송 보도국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책에 수시로 식민사학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글을 싣고 있다. 지난 6월 2일에는 '천년사를 찢어야 할 단 한가지 이유', '일본에 있던 임나, 우리 땅에 처박기'라는 제목으로 식민사학을 질타하였다.

그는 먼저 가야사 역사전쟁의 핵심인 임나의 위치를 짚어 주었다. 일본서기에는 임나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임나는 축자국에서 2천여리 떨어져 있다. 북으로는 바다로 막혀있고 계림의 서남쪽이다(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이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 이는 일본서기 숭신기(崇神紀) 65년 기록이다. 축자국은 큐슈라고 모두 인정하고 있으니 기록대로라면 대마도를 가리킨다. 점차 임나의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 당연히 큐슈에서 본토로 뻗어가게 된다." 라고 하여 대마도에 임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최재석 전 고려대 교수가 일본 관련 수백편의 논문쓰면서 밝힌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어 북한 학자들도 일본열도에 임나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는데, " 김석형과 조희승은 큐슈에서 동쪽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간 것으로 고증 끝냈" 고,  "결국 임나는 일본서기 기록에 따라 일본열도의 대마도, 큐슈 일대에서 시작돼 점차 일본의 본토인 동쪽으로 확대됐다." 고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서, "①최재석 ②김석형 ③조희승 ④문정창 ⑤윤내현 ⑥이종항 ⑦윤영식 ⑧김성호 ⑨남창희(인하대) ⑩이덕일(순천향대) 등 이 분야 연구자들의 논증은 끝났다." 라고 상기시켰다. 

그는 "전라도천년사는 임나를 가야로 단정 짓고 그 임나(가야)는 우리 땅이라고 규정한다. 전라도 교수들이 우리 땅으로 결론 낸 이유는?" 라고 하며, 왜 식민사학자들이 이렇게 결론을 내렸는지 근거를 제시하였다. 

조선 침략 목적에 부용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하였다. 임나일본부설을 창작, 발전시킨 일제식민사학자들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주요 인물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반 노부토모(伴信友 1773~1846)

②일본 육군참모본부 임나명고, 임나고수

③칸 마사토모(管政友. 칠지도 발견자)

④나카 미치요( 那珂通世 1851~1908)

⑤구로이다 가쓰미(黒板勝美 1874~1946)

⑥쓰다 소우기지(津田左右吉 1873∼1961)

⑦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 932)

⑧아유까이 후사노신(鮎貝房之1864~1946)

⑨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 保和1904~1992)

⑩미지나 아키히데(三品彰英)

⑪이케우찌 히로시(池內宏1879~1952)

⑫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그는 "이번 전라도천년사 집필에 나선 교수들은 ‘거룩하신’ 일본 어용학자들의 뜻을 받들어 예외 없이 임나가 우리 땅에 있었다고 전제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전라도 역사를 날조하려 한다." 며 식민사학의 비학문성을 꼬집었다.

그는 "뒤늦게 발각돼 손가락질당하고 있다. 그러면 왜 전라도 교수들이 어리석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 한뒤 "자기 스승, 스승의 스승이 모두 일본 입장이니 맹목적으로 졸졸 따라다닌 것이다. " 라며 이유를 들었다.

이어 " 왜 전라도민들이 자기들을 이해 못 하느냐고?" 라고 다시 반문하였고,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일본 천황의 200년 통치 속에 성장한 호남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교수들 빼고 과연 누가 있을까? 길가는 강아지, 길고양이도 그리 생각 않는다. 전라도 천 년사 날조하다 들통난 희대의 사건은 결코 타협될 사안이 아니다." 라고 식민사학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분노하였다.

그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라도민은 명백히 정상인들이기 때문에 교수라는 이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도민들이 왜 분노하는지 모른다면 숨 쉴 자격도 없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다!!" 라고 식민사학자들의 역사 만행에 대한 격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책에 대글로 이 같은 분노에 이어  식민사학의 실체를 고발하며  질타를 이어갔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꺽쇠로 표시하였다. 거친 표현은 위 본문에 이어 순화시켜 다시 썼음을 밝힌다. 

[식민사학의 그물망은 치밀합니다. 절대 천황 이야기 않기, 임나는 가야이지만 임나를 강조하지 말 것, 임나는 무조건 남한 땅으로 쐐기박을 것, 이러한 계획을 유네스코 등재로 전 세계에 소리 없이 공인시킬 것, 기자들은 어차피 진상을 모르니 대충 밥 사주며 자료 넘기고 그대로 베끼도록 할 것, 가장 중요한 공무원은 실무자인 학예사-팀장-과장-국장은 아랫사람 잘 구슬릴 것(통과 시 당신의 평생의 업적이 된다, 승진할 빌미도 된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이죠. 명석한 도지사분들은 생각이 다를 겁니다. 왜 교수들의 권위가 안 통하지?

교수들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일 겁니다. 설령 24억, 100억이 들어간 사업이라도 절대 공인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교수들의 얕은 지적 속임수와 민족의식, 역사의식이 투철한 호남인들의 역사전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겁니다!!

왜? 가 없어요. 핵심은 일본인 논문인데 그것 때문이라 한다면 공분 일으키니. 말은 못 한 채." 사료된다. 생각이 든다, 판단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학계의 통설이다. 대세다" 그렇게 말하는 본심은 일본인 논문 베끼기죠.

지금 벌어지는 역사전쟁은 조선총독부의 호남지부를 강행하느냐 호남지부를 무너뜨리느냐의 대결입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그냥 없었던 일이 됩니다. 그래서 바로 유네스코 등재로 전라도 땅 천황 지배영역으로 굳혀지는 거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기면 전국 어디서도 다 이깁니다. 호남의 승리는 조선총독부가 이제서야 무너지는 계기가 되는 거죠. 지금 교수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호남 발 역사혁명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교수들이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마는 비극을 맞게 된다는 거죠.

함께 성명에 참여한 단체들은 교수들의 연결망에 불과합니다. 한통속인 조선총독부 지점 지사 분소 분점 정도 되는 어설픈 모임들이죠. 이제 우리의 역사 찾기 혁명이자, 조선총독부의 실질적인 궤멸 작업은 시작됐습니다.

전라도 천 년사를 읽어보면 일본 역사 교과서와 똑같습니다. 일본 교과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위대한 천황의 은혜가 우리 땅까지 뻗쳤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라도 역사는 그런 일본의 입장을 확실하게 다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나가 일본의 대마도, 큐슈, 기비에서 벌어진 일본열도 내의 일이고(가야세력,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각축전) 가야, 백제 고구려의 멸망에 따라 점차 백제세력으로 통일되면서 천황 지배체제로 흡수되는 틀로 잡으면 문제가 없지요.

그렇게 되면 전라도 땅은 온전히 마한이든 가야든 백제든 신라든 역사적인 변천이 있겠죠. 멀쩡한 전라도 역사를 1. 일본서기라는 책 아닌 책으로 덮어씌우고 2. 일본열도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 땅으로 꽂아 넣고 3. 도민들이 들고일어나니 백제가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꽁무니 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라도 천 년사가 가야 할 곳은 쓰레기 소각장입니다!!!

이병도가 국사편찬위원회 자리까지 30년 가까이 눌러앉으면서 우리 역사를 모두 난도질했죠. 철저히 조선총독부에 맞춤형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립운동하며 감옥에서 조선상고사 쓸 때 이병도는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직원으로 배 따듯하게 지내고 해방 후에도 서울대 교수에 국사편찬 위에 30년, 학술원장 20년 넘게 지내며 우리 역사의 혼을 일본민족에 맞춤형으로 변질시켰죠.

그래서 철없는 노인네들이 일제가 식민지 기간 철도 놓고 해서 식민지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병도의 몹쓸 짓이죠. 하여튼 그런 역사를 가진 국사편찬위원회이기 때문에 철저히 조선총독부죠. 한국학중앙연구원(정신문화연구원) 역시 같고 전국의 국립박물관 모두 식민사학자들이 휘어잡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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