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권력은 당대는 출세였을지 모르나 역사는 냉혹하게 심판한다.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 조선시대는 권모술수에 터잡은 왕족 간의 골육상쟁으로 점철된 역사가 특징이다(편집인 주).
▲ 조선시대는 권모술수에 터잡은 왕족 간의 골육상쟁으로 점철된 역사가 특징이다(편집인 주).

 

<집현전 학사 신숙주의 변절은 숙명이었나 야합이었나?>

1. 뛰어난 학자요 정치가였으며 책벌레

신숙주(1417 ~ 1475)는 조선 세종 ~ 성종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도 관여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중요한 업적을 이룬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명신이다.

책을 읽으려고 집현전 숙직을 도맡아서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집현전 학자가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들었길래 세종이 자신의 옷(곤룡포)을 덮어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신숙주라고 한다

2. 신숙주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변절하였나?

훗날 세조의 편에서 계유정난과 단종 퇴위를 주도적으로 돕는 등 정통성을 가진 왕위 찬탈에 협조하여

자신을 중용한 세종, 문종의 유지를 배신한 역적으로 자리메겨진다.

신숙주가 변절자가 된 과정은 역시 세조와의 만남이 제일 컸다

세조로 등극하는 수양대군(1417년생)과 신숙주는 동갑이었다.

1452년(문종 2년) 당시 수양대군은 사은사로 중국에 파견되기 직전이었다.

중국으로 파견을 간다는 것은 야심이 큰 대군을 중앙에서 일정하게 격리시키려는 좌천의 의미가 큰 조치 였다

이때 수양대군에게는 어떠한 결단이 필요했다.

1452년 8월 10일 수양대군은 신숙주를 초대해 술을 마시게 되고 둘은 의기 투합했고 함께 명나라 사신으로 가게 된다.

당시 그들은 흉금을 터놓고 국가의 대사를 논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강구했던 ‘구국의 방안’들은 한 해 뒤인 1453년(단종 1) 10월 10일 계유정난으로 구체화되었다.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즉위하고 자신을 도운 공신 중 1등 공신으로 올라선다.

그는 1454년(단종 2) 도승지를 시작으로 40세의 젊은 나이로 우의정(1457년, 세조 3)에, 5년 뒤에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462년, 세조 .

1456년 단종 복위 운동도 발생하는데 신숙주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단종을 서인(庶人)으로 만들 것을 건의했고 단종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후 조선 중기 사림파가 득세하면서 사육신이 복권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절자라는 이미지가 더욱 각인되게 된다.

3. 신숙주가 단종의 아내를 탐낸 것은 역사적 팩트?

* 출처 : 한사경(韓史綮), 조선말 사관 김택영(1850~1927)

신숙주는 주군으로 모셨던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 송 씨를 탐냈다고 한다.

신숙주는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이끌려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조는 이런 신숙주의 요구를 묵살했다. 어린 조카를 죽인 비정한 세조였지만 차마 조카며느리까지 다른사람에게 첩으로 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세조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됐는지 "정순왕후가 정업원(남편을 잃은 후궁이 거처하는 사찰)에 살게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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