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은 구한말에 가장 격렬하게 왜군에 대항한 의병이 일어났다.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신종근의 역사기행, 제천 편1

왜군, 명성황후 시해하자 제천에서 먼저 의병 봉기

유인석 의병, 충주 성, 경기, 충청, 경상 일부 장악

을사늑약, 1907 고종 강제 퇴위 때도 격렬한 봉기

제천 의병에 패한 왜군 제천 초토화 작전으로 대응

영국 기자 멕켄지 참상 전해, ‘지도에서 지워졌다’

충주댐 건설로 제천 5개면 수몰, 청풍호로 불리기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사진는은 을미사변으로 일어난 제천의병을 보도한 영국 데일리메일 멕켄지 기자가 경기도 양주근처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사진은 을미사변으로 일어난 제천의병을 보도한 영국 데일리메일 멕켄지 기자가 경기도 양주근처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2박 3일동안 충북 제천堤川에 다녀 왔습니다. 제가 둘러 본 곳은 배론성지 - 탁사정 - 자양영당(제천의병 전시관) - 점말동굴 - 의림지 - 장락동칠층모전석탑 - 사자빈신사지석탑 - 덕주산성 남문 - 송계계곡 - 덕주사 마애불 - 신륵사 삼층석탑 - 용하구곡 - 황강영당 및 수암사 - 청풍문화재단지 - 청풍호반케이블카 - 정방사淨芳寺 - 상천 산수유마을 등 입니다. 짧은 답사 후기 소개합니다.

1. 자양영당紫陽影堂과 제천의병 전시관

바보들의 도시, 제천

1895년 우리나라 땅에서 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일본은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내정을 좌우하며 단발령까지 내렸다.

조선은 당연히 들끓었고, 1896년 1월 제천 의병으로 봉기한다. 처음엔 경기도 지평의 포수 부대가 주축이었지만, 유인석柳麟錫이 대장을 맡고 장담마을 선비들이 주축을 이루게 되면서 '호좌의진'(湖左義陣, 호좌란 의림지의 서쪽을 뜻한다)으로 단단히 뭉쳤다.

제천 의병은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충주성을 장악하고 친일 관찰사를 처단하였으며, 충북에서 수많은 마을들을 장악하고 경기도 이남, 충청도 남부, 경상도 남부까지 세력을 넓혔다.

1905년 외교권이 박탈되고, 강제합병의 조짐이 확연해지자 주천과 단양에서 원용팔과 정운경을 중심으로 다시 제천 의병이 봉기한다.

1907년 고종이 쫓겨나고 조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도 이강년을 대장으로 제천 의병은 다시금 일어났다.

제천 의병에 혼쭐이 난 일본군은 화풀이로 제천 시내를 무차별 파괴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도륙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아서 멕켄지Arthur Mckenzie 기자가 그 내용을 <조선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써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말에서 내려 잿더미 위를 걸어서 거리로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것을 이전에 본 일이 없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번화했던 거리였는데, 그것이 지금 시커먼 잿더미와 타다 남은 것들만이 쌓여 있을 따름이었다.

완전한 벽 하나, 기둥 하나, 된장항아리 하나 남지 않았다. 이제 제천은 지도 위에서 싹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맥켄지가 썼던 기사 <조선의 비극>에는 당시 의병의 육성이 인용되어 있다. “우리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바보의 모든 것》(Yu Muraoka 지음, 서울문화사, 2014)이란 책에 보면 '세상은 싸우는 자를 바보라고 부른다.'는 말이 나온다.

제천은 숱한 희생을 맨몸으로 감당한 '바보들의 도시'였다. 다른 곳과는 달리, 제천이 지금까지도 번듯한 옛 건물을 거의 보존하고 있지 못한 이유가 1907년 의병에 분노한 일제의 대규모 살육과 파괴에 있다.

2.  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

남한강에 다목적 댐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1978년 6월부터 시작해 1985년 10월까지 계속된 충주댐 공사로 충청북도 일부 지역이 물에 잠기게 된다.

그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제천으로 5개 면, 61개 마을, 3,301 가구가 통째로 물 속에 가라앉았다.

그중에서 청풍면은 스물일곱 마을 가운데 스물다섯 마을이 수몰되고 말았다. 정식 명칭이 충주호인, 이 충주, 제천, 단양을 잇는 대형 인공호수를 제천에서만큼은 청풍호라 부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이 지어지기 직전인 1982년부터 3년 동안, 수몰지구에 흩어져 있는 중요 문화유산들을 해체하여 청풍호가 굽어다 보이는 망월산성 자락에다 옮겨 모아 놓은 일종의 야외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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