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부터 동해는 고래의 낙원이었다.

 

글: 안국진(자유기고가)

 

동해를 고래 바다로 인식한 사람은 신라 때 최치원

중국 송나라 황제, 발해 강역 고래 바다까지 인정

조선왕조실록과 고종 때도 동해를 고래 바다로 불러

송희경, 이행과 김종직, 이정구도 고래 바다로 인식

▲  동해는 이름이 본래 고래 바다였다. 자료 출처: 강효백 얼굴책
▲ 동해는 이름이 본래 고래 바다였다. 청 제국도 경해, 고래바다로 인식하였다. 자료 출처: 강효백 얼굴책

 

일제 때문에 비뚤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저작에 열중인 경희대 강효백 교수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던 바다의 원래 이름이 고래 바다임을 밝혔다.

강 교수의 증명을 살펴보면 그냥 쉽게 동해라 부를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래 바다라 부르고 한문으로는 ‘경해(鯨海)’라고 불러야 함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최치원이 쓴 향약잡영이다. 그중 한 편인 금환(金丸)에서 고래 바다라 부른 것이다. 이는 금색 공을 가지고 노는 곡예를 묘사한 시(詩)다.

“몸을 돌리고 팔을 흔들며 금환을 놀리니,

달이 구르고 별이 흐르듯이 (구경거리가) 눈에 가득 차네.

의료(宜僚)가 있어도 이보다 더 좋으랴

고래 바다 파도가 잔잔해짐을 알겠구나.”

다음으로는 송나라 황제가 발해의 후예 정안국왕(定安國王) 오현명(烏玄明)을 위로하는 조서(977년)에 “경은 먼 나라의 호걸이자 장수이며 명왕의 후손으로서 마한의 땅을 다 차지하고 (우리 땅과) 경해(고래 바다, 한국해, 이른바 ‘동해’)의 사이에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래 바다와 송나라 사이의 땅에 마한이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도 “아득하게 넓은 마한 땅이 곳곳마다 고래 바다가 닿았다”(1397년, 태조 6년 3월 8일)라는 기록과 “만일 다시 이 뒤로 고래 바다[鯨海, 한국해]에서 표류하는 자가 있으면 보호하여 구제할 것이니”(1408년, 성종 11년 6월 7일)의 기록을 비롯하여 “김옥균(金玉均)의 무리를 생포해 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경해(동해) 바다 건너에 출몰하며 도리어 역적의 부류와 내통해서 은근히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일삼았습니다”(1887년, 고종 24년 4월 26일)까지 많은 곳에서 동해가 아니라 고래 바다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울주의 반구대는 고래 사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고래와 밀접한 민족은 없었다. 1849년 독도에 좌초했다는 프랑스 배 ‘리앙쿠르(Liancourt)’호는 고래 바다로 고래 사냥을 온 배였다.

고래 바다라는 기록은 선조들의 글에도 많이 나온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 1396)이 “범이 울어 바람 일으키고 고래가 바다 가로지른다” 하던 땅이 우리나라 땅이며,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인 노계정(盧啓禎)의 묘갈명에 “고래 바다를 편안하게 했다”라고 쓴 이유이기도 하다.

광해군 때 시를 잘 지어 송도삼절로 불리던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해산정(海山亭)” 시에서 금강산 앞 바닷가에 서니 “동쪽으로 삼천리 고래 바다를 굽어보고, 서로는 금강산 일만 봉이 떠 있다” 했으며 중국 친구가 왔을 때도 고래 바다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이행(李荇, 1478~1534)은 동래현을 설명하며, “교룡이 뿜는 안개가 땅을 휘감고, 고래 바다가 위에 뜬 하늘을 찬다”고 했으니 지금 동해라 부른 바다의 원이름은 고래 바다임을 알 수 있다.

김종직(金宗直. 1432~1492)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돌아오지 못한 박제상을 그리는 시에도 “치술령 꼭대기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 바다 끝이 없어라” 한 이유도 이 바다가 고래 바다였기 때문이고, 권필이 바다를 노래하며 “고래 바다 아득하게 허공에 닿았다” 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정구(李廷龜, 1564~1635)가 경상감사인 윤가회(尹可晦)에게 보낸 시에도 윤가회가 가면 “고래 바다의 파도가 잔잔해져 배도 잘 다니리”라고 했다. 이때 윤가회는 경상도에 군영을 설치하는 책임자였다.

조선 전기에 일본을 다녀온 송희경(宋希璟, 1376~1446)이 후쿠오카의 하코자키에서 유숙을 할 때도 서쪽 큰 바다를 보며 “해와 달이 고래 바다에 드리워 있구나”라고 했으니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바다의 이름은 분명 고래 바다다.

우리 바다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자. 동해는 동쪽에 있는 바다란 말이지, 우리 바다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고래 바다, 코리언 씨(Korean Sea), 라 메르 드라 꼬레(la mer de la Corée), 코레아니세스 미여(Koreanisches Meer), 마레 데 꼬레아(Mar de Corea)가 맞다. 키에프는 키이우라 금방 바꿔 부르면서 우리 바다 이름은 엉터리로 불러야 되겠는가?

1) 공을 잘 놀리는 사람. 『장자(莊子)』 시남(市南).

2) 『삼국사기』 제32권 잡지雜志 제1음악[樂] 향악잡영시 금환

3) 『송사(宋史)』 981년. 卿遠國豪帥, 名王茂緖, 奄有馬韓之地, 介于鯨海之表

4) 이색, 『목은시고』 제5권 虓虎風生鯨海橫

5) 채제공, 『번암집』 제 50권, 鯨海晏如

6) 차천로, 『오산집』 제2권, 東臨鯨海三千里, 西挹金剛一萬重

7) 이행. 『용재집』 제5권, 적거록 蜒煙籠地墊, 鯨海蹴天浮

8)김종직, 『점필재집』 시집 제 3권,鵄述嶺頭望日本, 粘天鯨海無涯岸

9) 권필, 『석주집』 제 7권, 鯨海茫茫逈接空

10) 이정구, 『월사집』 제16권. 鯨海波恬不碍舟

11) 송희경, 『일본행록』 3월, 日月垂鯨海

출처: 월간바다낚시 & SEALURE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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