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정부는 민족의 조상신인 한웅천왕 신의 뜻으로 건국하였다.

 

글: 민인홍(민화협 대의원, 대종교 전리)

 

건국 정신을 삼균 제도로 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 추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부와 권력을 고르고 평등하게 함

조소앙, 단군 민족주의로 대한민국임시헌장 토대 구축

단군을 국조로, 민족을 배달민족으로 하고 개천절 기려

▲ 서기1922. 01. 01.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구성원들이 축하 기념촬영을 하였다(편집인 주)
▲ 서기1922. 01. 01.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구성원들이 축하 기념촬영을 하였다(편집인 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에 선포한 첫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의 제7조는 “대한민국은 神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진하야 인류의 문화급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야 국제연맹에 가입함”이다.(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헌장>, 1919. 4. 11.)

여기서 “神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 무엇인지는 1941년 11월 28일 조소앙(趙素昻)이 작성하여 공포된 <대한민국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의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이 명명한 바 「수미균평위하면 흥방보태평」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각층 각급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하리라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공리임”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건국강령>, 1941. 11. 28.)

1919년 4월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은 조소앙과 관련이 깊다. 조소앙은 1904년 황실유학생(皇室留學生)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유학하였고, 1912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일본유학을 마친 뒤 조소앙은 1913년 상해로 망명하였고, 상해와 만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7년 조소앙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가들의 단결을 도모(圖謀)하는 일련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조소앙은 3•1운동 직후 이동녕(李東寧) 및 이시영(李始榮)과 만주지역 대표로 상해에 도착하였고 곧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작업에 참여하였다.

당시 조소앙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직은 물론 <대한민국임시의정원법(大韓民國臨時議政院法)>과 <대한민국임시헌장>의 기초를 작성했었다.( 韓詩俊, 「조소앙의 삼균주의」『한국사 시민강좌』10, 1992, 99∼100쪽.)

조소앙은 일본 유학 중인 1910년 기독교에 입교 하기도 했지만, 1912년 무렵에는 완전한 ‘단군민족주의자’로 변해 있었다. 이후 조소앙은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기까지 ‘단군민족주의자’로 살았다고 볼수 있다.

그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우리민족을 ‘배달겨레’로 지칭하였으며, 망명 시절에 개천절을 기리는 논설을 여러 건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 배달겨레는 단군께서 개천・건국하신 이래 동방에 있어서가장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민족이라고 역설하였다.( 정영훈, 「조소앙의 단군민족주의와삼균사상」『단군학연구』38, 2018, 229∼230쪽)

이러한 조소앙이 1919년 4월에 그 초안을 작성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7조에서 “神의 意思에 依하야 建國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그 당시 그가 지녔던 민족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위에 인용한 1941년의 <대한민국건국강령>에서 조소앙은 “우리나라의 建國精神은 …弘益人間과 理化世界하자는 우리 民族이 지킬 바 最高公理”임을 명백히 밝혔다.

즉 조소앙이 1919년 4월에 초안을마련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헌법에 명시된 “神의 意思에 依하야建國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바로 배달민족의 건국시조인 단군의 건국이념이었던 것이다.

1919년 4월 11일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이 되었고 이후 국무총리와 주석 등의 요직(要職)을 역임한 석오 이동녕은 “우리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다. 단군왕검의 이 나라 개국이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데, 왜 우리가 종교가 다르다고 단군을 배타적으로 보겠는가.

단군은 우상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 단군왕검의 개국과 이어지는 전통을 이어 독립운동의 맥으로 삼아지켜나가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면서 대종교 출신인 신규식, 조완구, 박찬익 등과 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대종교 포교와 그 선양(宣揚)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거의 모든 요인들이 대종교에 대해, 그 종교적 성격보다는 그 민족적 성격과 그가 미치는 독립운동에서의 역할에 동의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공식적으로 '개천절'과 '어천절' 행사를 주관하였고, 각종의 정부 관련 문헌에서 단군을 그 뿌리로 하는 민족주의를 분명하게 천명할 수 있었다.( 이현희, 「제2장 단군인식의 통사적 해석과 향후 과제」『민족사상』1(1), 2007, 6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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