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퍼져 있는 밝사상은 고조선에서 나왔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최남선은 불함문화의 밝사상을 흑해 주변서 찾아

신용하는 구, 신석기시대를 이은 고조선에서 찾아

빙하기에도 고한반도 중부 이남은 사람 살기 좋아

중부지방에 석회 동굴 1천여개 구석기인 생존터전

1만2천년전 따듯해진 기후로 단립벼, 콩, 팥 농사

요하, 대동강, 한강 문화를 잇는 고조선 문명 탄생

▲ 고조선문명을 일으킨 고조선 연방의 최전성기 강역
▲ 고조선문명을 일으킨 고조선 연방의 최전성기 강역

 

텡그리와 부르한 10

최남선은 불함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밝사상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흑해 주변을 들고 있다. 의외다.

불함문화론을 처음 번역한 정재승은, 밝의 발생지는 흑해보다는 바이칼호 주변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남선은 왜 백두산과 고조선 일대가 텡그리와 밝사상의 중심이 된 것인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나는 신용하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신용하는 수메르문명과 이집트문명에 이어 세계 3대 문명으로 '고조선문명'을 들고 있는데, 신용하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따라가다 보면 최남선이 텡그리와 밝사상이 고조선지역에서 가장 왕성하다고 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 구석기인들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채집하여 먹을 것을 얻었기 때문에 아직 인위적 '문명'을 만들 수 없었단다.

구석기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매일 찾아오는 밤의 '어둠'이었는데,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무리는 태양이 솟아올라 밝음이 먼저 찾아오는 동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古)한반도와 연해주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어서 수십만 년에 걸쳐 동쪽으로 이동해 온 구석기 무리의 인류사적 종착역 같은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대만과 한반도가 중국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석기인들은 약 100만 년 전에 처음으로 이곳에 도착하여 계속 살고 있었는데, 약 5만3천 년 전부터 1만3천 년까지 뷔름빙하기가 찾아오자 북위 40도 이상은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북위 40도 이남 동아시아에서 구석기인들이 추위를 피해 살 수 있는 곳은 석회암 동굴이 많은 고한반도였다.

고한반도 중부지역에는 무려 1,000여 개의 석회암 자연동굴이 있어서, 계속 이동해 오는 구석기인들로 인해 세계 최대 인구 밀집지역의 하나가 되었다.

약 1만2천 년 전부터 기후가 따뜻해지자 이곳 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나와 새로운 '신석기시대'를 열게 되었다.

한반도 중부지역에서는 약 1만2천 년부터 단립벼를 재배했고, 약 8천 년 전부터 콩과 팥을 재배했으며, 약 5,000년 전부터 3,600년 전 사이에 청동기문화를 형성하여, BC 30세기에서 BC 24세기 사이에 한강문화 대동강문화 요하문화를 통합하여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뜨는 곳을 찾아 이동해온 무리들은 자연스럽게 태양을 숭배하게 되었고, 고조선의 성립으로 텡그리를 숭상하는 단군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우랄 알타이어족의 조어(祖語)인 고조선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조선은 최초의 기마문화를 토대로 고조선문명을 여러지역에 전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요약하면, 고조선문명은 신석기시대 한족(韓族 - 밝족)의 한강 대동강문화, 맥족의 홍산문화, 예족의 신락문화를 통합하여 약 5천 년 전 고조선이 건국되면서 탄생한 인류 세 번째 고대문명이고,

'우랄어족', '알타이어족', '우랄 알타이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문명의 뿌리이며,

태양과 텡그리를 숭상하는 신앙을 여러 곳에 전파한 문명이라는 것이다.

(텡그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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