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신석기부터 한 땅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개척한 나라이다.

 

중국 양나라 제작 양직공도에 나오는 왜인 모습은 남방계

총독부 식민사학 극복한 남북한 학자들 일본 뿌리는 한국

존 카터 카벨, 월리엄 그리피스 일본인은 우리나라가 뿌리

일본에 가야 시원 구지봉 명칭, 신기삼종 가야가 일본원조

 

▲ 일본의 신종삼기는 거울, 검, 옥으로써 경상, 전라도에서는 숱하게 발굴되는 고고유물이다.
▲ 일본의 신종삼기는 거울, 검, 옥으로써 경상, 전라도에서는 숱하게 발굴되는 고고유물이다.

철기와 기마문화를 가지고 일본 열도로 건너간 가야세력은 일본 토착민인 왜에 대하여 지배 계급이 되었다. 양직공도에서 사신으로 온 맨발의 왜의 모습은 피지배급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이 검고 수염이 많은 것을 보면 이들이 왜(倭)의 토착세력인 남방계 조몬인(縄文人)인으로 보인다.

왜(倭)가 강력하여 가야(加耶)를 점령하고 경남 가야 지역에 임나(任那)일본부나 외교기관을 설치했다는 주장은 이런 기본적인 한·일 간의 문화전파 과정이나 철기, 기마 유물의 상관관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야 사람들이 철기와 기마문화를 가지고 열도로 건너가 철기와 기마문화를 남겼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 학자와 외국인 학자, 일본 학자들이 일본 왕가가 한 땅에서 건너왔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것이 기마민족도래설(騎馬民族渡来說)이다. 이 학설은 동북유라시아계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고 변한(弁韓) 땅을 기반으로 일본 열도에 진출해 들어와, 4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걸쳐 야마토 조정을 세웠다는 것이 골자다.

이 학설을 펼치는 남북한 학자는 김석형, 조희승, 최재석 등 많은 학자들이 이 학설을 펼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있다. 일본에서는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미국은 존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과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데 앞서 제시한 유물, 유적과 문헌 사료의 고증으로도 모두 증명되고 있다.

가야가 기마 민족이라는 사실은 이제 까지 살펴본 고고학 적인 여러 유물은 물론익오 문헌 사료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들은 처음 일본 구주에 도착하여 점차 그 세력 범위를 점점 넓혀 일본 본토로 확대 진출하였다. 이들이 일본 열도의 청동기 중심의 야요이(彌生) 시대에서 철기 중심의 고분 시대(古墳時代)로 바꾼 철기 기마세력이다.

이들이 먼저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지역을 차지하게 되고 이후 혼슈(本州)까지 개척하였고 이후에는 백제가 강성해져 일본 열도에 진출하였다. 이때 가야 왕족과의 혼인을 하면서 세력교체가 일어나게 된다.

이에 관련하여 특히 존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은 그녀의 저서 『부여기마 민족과 왜』 에서 왜를 다스린 초대 여왕 신공황후(神功皇后)를 가야의 무녀(巫女)이자 왕녀(王女)라고 밝혔다. 이 무녀를 서기 369년 한 땅 부산 근처 김해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는 그의 저서 『은자의 나라 조선』에서 “한국을 지배한 모든 왕조의 시조는부여족(가야족)이었으며 이들은 또한 일본문화에 크나큰 발전을 이룩한 한국 이주민의 대부분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한국의 ”일본의 고대 왕들은 한국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총, 균, 쇠’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서기 2019. 11. 27. 제이티비씨(JTBC)방송의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에서 고대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이동한 한국인들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전 일왕 아키히토(明仁)는 서기2001.12. 기자회견을 통해서 칸무천황(桓武天皇)의 어미니 고야신립(高野新笠)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후손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는 일본 왕실 스스로 한반도의 기마민족 후손이라는 것으로 일왕의 뿌리가 도래인(渡来人)이라는 것을 직접 밝힌 것이다.

이는 그들이 백제계 후손인 것에 대해서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지만, 초기 일본 왕가가 가야계라는 사실이 일본의 고대 문헌 사료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일본의 야요이 시대와 고분시대에 일본 열도를 개척하여 정착한 세력이 가야인들이라는 사실은 일본 신화를 통해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고대 문헌 사료인 고사기(古事記, こじき)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된 일왕가의 시조 신화를 보면 그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고사기에는 일본 왕가의 시조라고 여겨지는 니니기노미코토(天津彦彦火瓊瓊杵尊, 邇邇芸命, ににぎのみこと, 니니기)의 천손 강림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신화에서 니니기(ににぎ)가 강림한 곳이 가라쿠니(韓國)를 향하여 있다고 한다. 일본어에서 가라(から)는 가야(加耶)를 의미하는 이를 한자로 ‘韓’ 혹은 ‘唐’ 로도 표기 하고 있다. 즉 가라쿠니(韓國)는 바로 가야국을 의미한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는 가야 개국 신화와 닮은 내용이 나온다.

일본서기에서는 니니가 신성한 이불을 덮어서 내려왔다고 한다. 이는 김수로왕 신화와 동일하며 강림한 곳을 고천수봉(高千穗峯:다카치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고천수봉(高千穗峯)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市流多氣, くしふるたき)라고 밝히고 있다.

이구지후루타케는 바로 가야의 구지봉(龜旨峰)을 의미한다. 구지봉은 김수로왕 금관가야 김해 구산동에 있는 가야의 상징이 되는 봉우리이다. 실제로 구지후루다케(久士市流多氣, くしふるたき) 큐슈 남부에 기리시마(霧島) 지역의 지명이며 그 서쪽에 있는 산이 바로 가라쿠니다케(韓國岳) 가야산이다.

즉 니니기 천손 강림 신화의 내용은 가야계가 큐슈 남쪽으로 이동한 이야기로서 이는 니니기가 큐슈 남쪽으로 이동한 가야 왕족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니니기가 가지고 온 것이 볍씨와 신기삼종(神器三種)이며 볍씨는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논농사가 전래 되었음을 말한다. 신기삼종은 청동검, 청동거울, 곡옥으로서 이는 고조선의 천부삼인(天符三印)과 대응되는 상징물이다. 이 신기삼종은 일왕가의 상징적인 유물로서 현재 새로운 천황의 즉위식 때 아직도 계속해서 후대로 전해지는 왕실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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