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민군대는 군관이 병사에게 존대하고 하급자를 때리는 일 없다.

 

탈북주민 홍강철씨 얼굴책에 북에서 군대생활 일화 소개

전자병으로 근무할 때 전차 운용 금지수칙 호기심에 위반

소화기까지 분사, 전차안 온통 하얀 소화제 가루로 범벅

사고 친 병사 책임보다 향후 재발 방지에 초점 대책 세워

남한에서는 사고 병사에게 고문관, 영창, 구타 등 뒤 따라

 

▲ 6.25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협정으로 북 인민군 여군들이 북으로 송환되고 있다. 출처: 미국국립문서보관소.
▲ 6.25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협정으로 북 인민군 여군들이 북으로 송환되고 있다. 출처: 미국국립문서보관소.

탈북주민 홍강철씨가 북에서의 군대생활 일화를 들려주어 화제다. 그는 29일 자신의 얼굴책에 북에서 전차병(땅크)으로 근무할 때 전차안에 설치된 소화기에 '손대지 말라'는 상급자의 주의와 "소화기를 누르지 마라" 라는 문구를 보고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겼다고 하였다.

소화기가 한번도 작동되는 것을 본적이 없는 홍씨는 호기심이 생겨 누르지 말라고 써 있는 소화기 빨간 단추를 눌러 버렸다.

그랬더니 쏴아하고 소화제가 분사되어 그 안에 있던 병사들이 모두 소화제 흰 가루를 뒤집어 쓰고 전차안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후 이 문제로 소대장을 비롯하여 대대원이 정비장에 집합하였다. 대대장이 왜 눌렀냐고 물었고 홍씨는 누르면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눌렀다고 어뚱한 대답하였다. 

이에 장병들이 모인 정비장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후 홍씨에 소화기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또 홍씨가 해야할 정비를 선임병일 맡았다고 한다.

이 글을 본 독자들이 대글로 북의 군대문화를 읽었는지 '구타를 당하지 않았냐', '그럴 경우 남한 군대에서는 사고친 자를 고문관이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영창감이다', '북한에서는 대대장이 병사에게 존대를 하냐' 등 호기심으로 가득차 이것 저것 물어봤다.

이에 홍씨는 북에서는 구타는 없고 공식석상에서는 대대장도 병사에게 존대를 한다고 알려 줬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독립군이 군대를 창설하였는가, 전직 일본군 출신들이 군대를 창설하였는가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다음은 홍씨의 글 전문이다.

----전문----

[병사시절에 8개월 정도를 땅크병 (장탄수)로 군사복무를 한 적이 있다.

92년 12월부터 93년 7월 27일까지.

땅크를 제일 처음 탄 날,

땅크장(배관성)이 조준수(리경진)랑, 운전수(○정열)와 함께 땅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치지 말라'고 쓴 단추들은 다치면 안 됩니다."

땅크장이 주의를 줬다.

장탄수석에 앉아보니 뒤에 "소화기(누르지 마시오)"라는 표어 밑에 새빨간 단추가 있는 거다.

(소화기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태어나서 그때까지 소화기 쓰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갑자기 궁금해지는 거다.

(저 단추를 누르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손은 단추를 눌렀다.

쏴~~~

땅크 안에 있던 승조원 모두가 하얀 소화제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소대장이 달려오고 온 대대가 우리 땅크 633호 정비장 앞에 모였다.

"그 단추는 왜 눌렀소?"

대대장이 묻는 거다.

"누르지 말라고 썼더란 말입니다."

"그럼 누르지 말아야지."

"누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었습니다."

대대 정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래서 병사생활 첫날 , "소화기"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633호 승조에서

나의 병사시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이후부터 땅크장, 조준수, 운전수가 내가 해야 할 정비까지 도맡아 했다.

또 사고 칠까 봐,

날 시켰다가 사고 쳐서 구대원들이 비판받기 보다 자신들이 좀 더 하고 비판받지 않는 게 나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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