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인들이 일본 열도를 개척하여 일본 역사 뿌리가 되었다.

 

 

일본 열도 야요이 문화 이동로에 가야지명 발견

일본 왕실 무덤서 금관가야 파형동기, 토기 나와

전방후원분 일본 무덤양식 이미 홍산문화서 형성

전남 나주 일대 장고형 무덤이 전방후원분 원형

 

▲ 김해 대성동 파형동기, 가야 토기와 일본 나라현 파형동기, 스에키 토기 비교
▲ 김해 대성동 파형동기, 가야 토기와 일본 나라현 파형동기, 스에키 토기 비교

일본 열도의 구주와 전역에 가야인들이 이주 개척하여 정착한 흔적들이 보인다. 가야계 지명과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이 거북이를 타고 왔다는 묘견신 이야기가 대표 사례다.

이것에 더하여 가야인들은 철기를 가지고 왔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야요이 문화 이동로에 가야의 지명이 발견된다는 것은 야요이 문화가 사실은 가야 문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고분시대의 문화 경로에도 가야계 지명이 발견된다. 이 역시 가야인들이 이동한 길이라는 것을 말한다.

또 가야인들이 열도를 개척했다는 것은 일본 왕실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에서도 확인된다. 무덤에서는 가야의 대표적인 고분 부장품인 금관가야의 파형동기(巴形銅器)와 아라가야(阿羅伽倻)의 굽다리 토기 등이 다수 나왔다.

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라 불리는 토기는 경남 함안군 도항리에서 출토된 것이다. 삼국시대 함안지방에서 크게 유행한 굽다리접시 형태인데 아라가야의 표지 유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스에키(須惠器) 토기라고 한다.

▲ 고분 시대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
▲ 고분 시대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

이러한 가야계 물건의 출토는 고분시대에 가야인들이 일본 열도로 진출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으며 일본 각지의 고분들에서 일관되게 다수 출토되고 있다. 이는 피장자가 가야 계통임을 말해준다.

또한, 일본 고분 시대의 대표 무덤 형태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열쇠 구멍 같은 독특한 모양의 무덤으로 앞부분이 네모지고 뒷부분이 둥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같은 무덤의 형태가 전라도 지역에서도 10기 이상 다수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무덤 양식을 장고형무덤이라고 한다. 이 무덤 양식은 사다리꼴의 네모형, 뒷부분은 원형으로 열쇠 구멍 모양을 한 무덤이다. 또한, 초기 방형인 전방후방분(前方後方墳)과 후기의 원형 형태인 전방후원분으로 세분된다.

▲ 전방후원분 발전 과정(赤塚1995から転載)
▲ 전방후원분 발전 과정(赤塚1995から転載)

이에 일본의 전방후원분이 시기가 더 빠르니 전라도 지역 장고형 무덤은 일본인들 와서 만든 무덤 주장도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왜가 한 땅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고형무덤 양식은 요하지역 홍산문화에서 이미 서기전 5천년 천원지방의 양식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 학자들이 전방후원분의 시작이자 원형(原形)이라고 주장하는 주구묘(周溝墓)가 1996년 충남 보령과 1999년 전북 고창 성남리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원류가 한 땅(한반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보령 관창리의 주구묘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주구묘로서 일본의 야요이 시대에 발견된 3세기의 주구묘보다도 600년 이상 더 앞서고 있다.

▲ 전방후원분의 전파 과정 - 보령 방형주구묘(기원전 4세기), 나주 원방각묘(3세기), 일본 큐슈 사이토바루 전방후원분(4세기)
▲ 전방후원분의 전파 과정 - 보령 방형주구묘(기원전 4세기), 나주 원방각묘(3세기), 일본 큐슈 사이토바루 전방후원분(4세기)

이런 주구묘의 발견은 전방후원분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증거 유적이다. 함평군 만가촌 유적,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옹관묘과 그 중간 단계로 보이는 원방각(圓方角, 원형, 네모형, 각진형)의 형태의 무덤들이 발견되어 주구묘와 전방후원분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유적은 한 땅의 방형주구묘제가 일본 열도로 건너가 고분시대의 전방후원분으로 발전, 전파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에서는 가야 계통의 철제 투구와 철갑옷 등 무수히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가야유물로 판명되었다. 이는 일본 고분의 주인공들이 가야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해 가야가 원산지인 철기 원료인 철정도 발견된다. 결국, 가야인들이 철기를 가지고 열도를 개척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전준호, 「가야의 일본열도 진출과 일왕가의 성립」 논문 요약편집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