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자들은 소고조선론을 들며 우리 역사 깎아내리기에 혈안이다.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대륙 고조선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만 알면 증명돼

역사내전 최전선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 대립

대고조선론, 만리장성 동단이 현재 산해관에 존재

소고조선론, 만리장성 동단은 요동 반도 부근 주장

위만조선, 한사군 만리장성 안에서 일어났다 소멸

 

▲ 이 지도가 대고조선론에 적합하다. 중국 사료 고증으로 밝혀진 단군조선의 강역이다(편집인 주).
▲ 이 지도가 대고조선론에 적합하다. 중국 사료 고증으로 밝혀진 단군조선의 강역이다(편집인 주).

 

『고조선과 21세기』

제1장 고조선의 간단한 개요

2.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 그리고 만리장성의 동단과 낙랑군의 위치

고조선이 한반도 귀퉁이의 한 줌 땅덩어리라는 주장부터 고조선이 중국과 유라시아 전체를 포함한다는 주장까지 수십 수백 가지 잡설들이 난무한다고 말했다.

먼저 이것들을 분류하여 크게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으로 나눈다. 이 개념은 내가 처음 말한 것으로 단지 편의를 위해 설정한 것이다. 개념이 지시하는 그대로 의미는 단순하다.

고조선을 오래되고 큰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론들을 대고조선론이라 하고 고조선을 오래되지 않고 작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론들을 소고조선론이라 한다.

학계에 따라 분류하면 소고조선론의 핵심은 주로 강단사학계이고 대고조선론의 핵심은 재야사학계이다. 다만 윤내현을 포함한 강단 학자들, 즉 윤내현, 신용하는 특별하게 대표적인 대고조선론자들이다. 그들이 그토록 고생하는 이유도 소고조선론의 아성인 강단사학계의 이단적인 강단사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의 개략적 분류는 그렇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남는다. 이론이 그렇게 다양하다면 어디서부터가 대고조선론이고 어디서부터가 소고조선론인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당히 크고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들 사이에서는 구분이 어렵다. 또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여론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헷갈리게 전개하는 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방송에 나와 겉으로는 고조선을 찬란하고 웅대한 나라였다고 칭송하면서도 그 이론은 실상 굴욕적인 소고조선론인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 사이에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럼 그런 것이 있는가? 있다. 한 가지 질문만 기억하자.

'당신은 중국 진시황의 진(秦)나라와 그 뒤를 이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시대의 만리장성 동쪽 끝을 어디로 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더 줄여서 이것을 만리장성 동단(東端: 동쪽 끝)문제라 한다.

여기에 대해서 '그때 만리장성 동단은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현 북경 근처의 하북성 갈석산 부근)에 있었다' 라고 하면 그는 대고조선론자다.

반대로 '그때 만리장성 동단은 최소한 요하(遼河, 지금 산해관으로부터 수백 킬로 동쪽에 있는 요동반도 부근)에 있었다'라고 하면 그는 소고조선론자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학문적으로 따지자면 족히 몇 권의 논서가 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단순화를 강행하는 이유는 고조선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 간단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이렇게 시작하자. 누가 고조선을 이야기하면 첫 번째로 만리장성 동단(東端)에 대해 물어보자.

다른 때도 아니고 딱 그 시기, 진시황과 한나라 무제 시기, 더 줄인다면 딱 한나라 무제 시기에 만리장성의 동단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 말해보라고 하자.

그럼 그걸로 끝이다. 뭐라고 말하든 산해관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99퍼센트 이상 대고조선론자이고 요하 이동(以東: 그 동쪽)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99퍼센트 이상 소고조선론자이다.

그럼 이게 왜 그토록 강력한 기준인지 상식적 차원에서 알아보자.

평범한 사람들이 고조선에 대해 알고 있는 소수의 지식 중에는 고조선을 이은 위만조선이 기원전 109년 한나라 무제의 침공으로 망했다는 것이 있다. 연도나 지역은 잘 몰라도 그렇게 망했다는 이야기는 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시기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산해관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더불어 그때 위만조선이 하필 한반도의 평양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한나라 무제는 대체 무슨 볼일이 있어 그 멀리있는 작은 나라를 침공해야 했을까? 이것은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둘러대려면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반대로 당시 만리장성 동단이 산해관이고 위만조선이 그 옆에 붙어 있었다고 하면 모든게 순조로워진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엄청난 결론이 따라 나온다. 위만조선이 거기 있었다면 위만조선이 망한 후 설치된 한사군(漢四郡) 의 낙랑군(樂浪郡)도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철심같이 박혀있는 낙랑군 평양 위치설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을 나누는 기준으로 만리장성 동단설 이상의 선명함을 주는 것이 낙랑군의 위치이다. 다른 걸 뭐라하건 당시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그는 소고조선론자이고 그게 아니라 한반도 바깥 만주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대고조선론자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그 당시 만리장성 동단(東端)이 중요하다. 따라서 소고조선론자는 그 당시 만리장성의 동단을 동쪽으로 늘리기 위해 기를 쓴다. 동시에 이것이 동북공정에 눈이 먼 중국 정부와 학계의 발악이기도 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대고조선론자는 만리장성 동단의 위치를 현 산해관 부분으로 확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그럼 사실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지금도 논쟁 중인 사안으로 학문적으로 따지자면 끝도 없는 난해함으로 점철되어 있어 평범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상식적인 통찰은 가능하다. 당신이 잘 모르겠거든 한번 상상해 보라. 기원전 2세기 만리장성의 동단이 과연 지금의 산해관보다 동쪽에 있었을까?

심지어 그것이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까지 혹은 그보다 동쪽 흑룡강성까지 뻗었을까? 당시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어도 이는 상식에 어긋난다.

적어도 보통 사람의 눈에는 지금 관광지로 유명한 산해관 부근이 만리장성의 동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문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다. 지금은 이 기준을 명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대고조선론: 당시 만리장성의 동단(東端: 동쪽 끝)은 현 산해관 부근이고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 밖 만주 어딘가에 있었다.

소고조선론: 당시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재의 요하 이동(以東: 그 동쪽)에 있었고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의 평양에 있었다.

출처: 『고조선과 21세기』, 김상태, 2021. 3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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