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그리 문화를 알면 북방초원 민족과 한민족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신화연구가)

 

 

▲ 우리의 한웅천왕을 연상시키는 초원의 게세르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유목민족 유물.
▲ 우리의 한웅천왕을 연상시키는 초원의 게세르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유목민족 유물.

텡그리와 부르한 3

텡그리는 하늘이자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샤먼을 일컬었다.

그런데 부리야트의 '바이칼 게세르신화'에서는 텡그리가 아예 '하늘신'을 호칭하고 있다.

'하늘'이나 하늘의 뜻을 전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에 사는 '신들'을 텡그리라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부리야트에서 하느님은 '후헤 문헤 텡그리'라 부르는데, '영원한 푸른 하늘'이란 뜻이라고 한다.

후헤 문헤 텡그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에세게 말라안 텡그리'가 여러 텡그리에게 그의 뜻을 중개한다.

에세게 말라안 아래에 하늘세계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 텡그리가 거주한다.

그러나 남북의 신들은 지상세계에 관심이 없다. 오직 동서의 텡그리들이 지상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서쪽 하늘에는 쉰다섯의 텡그리가 살고 동쪽에는 마흔넷의 텡그리가 사는데, 서쪽 신들은 선신이나 동쪽 신들은 악신으로 여겨진다.

서쪽은 '한 히르마스 텡그리'를 수장으로 하고 동쪽은 '아타이 울란 텡그리'를 우두머리로 해서 서로 반목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이 신들은 모두 '사간 히르모스 텡그리'의 자손들이다.

결국 하늘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데, 패배한 동쪽 하늘신들이 지상으로 던져진다.

특히 동쪽 텡그리들의 우두머리인 '아타이 울란 텡그리'의 사지가 분할되어 지상에 떨어진 다음, 지상을 괴롭히는 마법사들로 환생하여 인간들을 괴롭힌다.

인간세상이 마법사들 때문에 고통스럽게 되자 하늘세계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하늘신의 아들을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

한 히르마스 텡그리의 둘째 아들인 '벨리그테'는 지상의 하탄 땅으로 내려와, 센겔렌과 나란 고혼 사이에서 인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지상에서 '게세르'라는 이름을 갖게 된 하늘신 벨리그테는 하늘 용사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와, 사악한 마법사들을 응징하고 지상과 우주의 조화와 평화를 복원하는 길고긴 원정길에 오른다.

부리야트의 게세르신화 줄거리를 대충 요약해 보았다.

부리야트의 게세르 신화는 매우 역동적이고 숨막히는 긴장감을 일으키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텡그리와 부르한 4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1927년에 일본글로 발표되었고 우리글로 번역된 것은 2008년이니, 일본글로 발표된 지 무려 80년만에 번역된 셈이다.

중요한 글이 오랜동안 번역되지 못한 것은 최남선이 친일을 했다는 죄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최남선의 모든 저작물이 '최남선 한국학 총서'로 만들어져 모두 구해볼 수 있다.

<불함문화론>이 발표되던 해에 <살만교 차기>(薩滿敎 箚記)도 발표되었는데, 이는 샤먼에 대한 연구서였다. 최남선은 아주 이른 시기에 샤먼 연구도 함께 시작한 셈이다.

<불함문화론>은 스케일이 매우 광대하다. 인류의 3대 문명권을 1.인도 유럽 계통의 문화 2.중국계통의 문화 그리고 3.불함문화로 나누고 있다.

그는 불함문화의 전파를 아래와 같이 상정하고 있다.

흑해→카스피해→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사얀산맥→야블로노이산맥→흥안령산맥→태항산맥이동(以東)→조선→일본→ 유구

여기에는 캄챠카반도와 베링해 및 아메리카 대륙은 나오지 않으나, 최남선은 중국과 인도 문화의 본질을 남방계 문화로 보고 불함문화는 북방계 문화로 상정한 것 같다.

최근 신용하 교수는 <고조선문명의 사회사>에서 고조선문명을 인류의 세 번째 고대문명으로 상정하였는데, 최근에 발굴된 홍산문화를 유력한 근거의 하나로 삼고 있다.

신용하는 한반도(고대에는 반도가 아니라 중국과 연결된 땅)의 문명이 만주를 거쳐 북유럽으로까지 퍼져나갔다고 주장하여 최남선의 주장과 다르다.

이러한 주장들을 일부 학자들은 매우 황당한 주장이라고 무시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신화라는 관점에서 참고할 내용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최남선은 불함 그러니까 '밝'과 텡그리를 동렬에 놓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으나, 내 생각으로는 텡그리가 하늘을 나타내는데 비해 불함은 태양과 빛을 나타내므로 다른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텡그리보다는 '밝'의 범위가 훨씬 넓어 텡그리를 불함 안에 포괄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고 있다.

최남선의 논지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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