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재해(안동대학 명예교수)

 

절도앞에 표자를 붙인 표절은 한번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

연구논문은 자기 글과 남의 글 엄격구분 출처 반드시 밝혀야

독창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각주와 따옴표 등 엄격한 표시요구

김건희 박사학위 논문 단순 표절 넘어 통째로 도적질이고 약탈

드러내놓고 남의 것 마구잡이 털어간 노골적인 강탈 행위 해당

김건희 논문은 표절논문이 아니라 '논문의 탈을 쓴 가짜 논문'

▲ 국민대학에서 받은 김건희씨 박사학위 논문은 논문의 탈을 쓴 남의 통째로 강탈해서 만든 가짜 논문이다(편집인 주)
▲ 국민대학에서 받은 김건희씨 박사학위 논문은 논문의 탈을 쓴, 남의 저작물 통째로 복사해서 붙이는 등 강탈해서 만든 가짜 논문이다(편집인 주).

 

<도대체 표절이 뭐길래?>

표절(剽竊)은 도둑질의 한 종류다. 절도 행위 가운데 특히 남의 글을 몰래 훔쳐서 자기 글인 것처럼 쓰는 행위를 표절이라 한다. 한 마디로 글도둑이다.

남의 시나 소설 속의 글귀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써먹는다면 명백한 표절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글귀가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 창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남의 창작을 자기 창작으로 만드는 것이 곧 표절이자 글 도둑인 셈이다. 창작품을 훔치는 행위인 까닭에 예사 절도(竊盜)와 구분해서 굳이 ‘표절’이라 한다.

절도는 훔친다는 의미밖에 없다. 그러나 표절은 훔친다는 뜻의 ‘절(竊)’ 앞에 사납다거나 위험하다는 뜻의 ‘표(剽)’를 덧붙였다. 왜냐하면 예사도둑은 발각되더라도 돌려주면 그만일 수 있으나, 글 도둑은 드러나서 문제되는 경우 돌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절한 글을 돌려준다고 해서 표절 당한 사람의 창작권이 회복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미 지면을 통해 표절한 글이 확산된 까닭에 지울 수도 없다.

남의 금품이나 재물은 변상이 가능하지만, 글도둑은 저작권이라는 고유의 권리를 탈취한 까닭에 온전한 변상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글도둑을 예사 절도와 구분하여 사납고 위험한 절도로 간주하여 표절이라 일컫는 것이다.

표절을 글도둑이라 했는데, 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을 지닌 모든 창작물을 훔치는 경우를 표절이라 한다.

남이 한 말에서부터 작사와 작곡을 포함한 음악, 그림, 조각, 공예, 디자인, 사진, 연극, 영화 등 모든 작품에 해당되며, 기술과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상품 이름은 물론 가게의 상호까지 상표권을 지닌다. 따라서 상호는 물론 남의 사진 한 장 허투루 쓸 수 없다.

작품은 저작권으로 보호하지만, 아이디어나 기술은 특허권으로 보호하고, 상품명이나 상호도 상표권으로 보호한다. 왜냐하면 모두 지적 재산에 해당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남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는 물론 남의 가게 이름조차 함부로 쓸 수 없다. 남의 상표나 상호를 베끼는 것은 물론 유사하기만 해도 법적 분쟁을 일으킨다.

전통적으로 남의 지적 재산에 대한 표절은 부도덕한 행위로 지탄받는 데 그쳤지만, 근대에 와서는 저작권 또는 특허권, 상표권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 다시 말하면 지적 재산의 표절은 범법 행위라는 것이다.

여러 지적 재산 가운데 '말'은 다른 작품과 달리 기록이 없는 까닭에 저작권을 주장하는 데 근거를 갖추기 어렵다. 그럼에도 예전부터 말의 저작권을 인정해서 남의 말을 함부로 자기 말처럼 가져다 쓰지 않았다.

따라서 남의 말을 이야기할 때에는 반드시 처음 말한 사람의 이름을 밝힌다. 기록으로 남길 때도 마찬가지이다. ‘공자 가라사대’, 또는 ‘맹자 왈(曰)’이라고 하거나 ‘퇴계 말씀에’ 또는 ‘소크라테스가 이르기를’ 하고 이름을 꼬박꼬박 기록하거나, 말을 할 때도 이름을 밝히고 말한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까닭에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고 저작권도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어김없이 이름을 밝혀 말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말한 사람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것이자 지적 재산을 존중하는 것이고, 둘은 말의 권위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공자나 퇴계, 소크라테스가 말한 까닭에 말의 의미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웃집 아저씨가 아니라 예수가 말한 까닭에 널리 인용되는 경구(警句)로서 설득력을 확보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밝혀 인용을 해야 인용한 말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게 된다.

연구논문의 경우에는 남의 문장이나 견해의 인용이 더 중요하고 더 엄격하다. 논문은 자기 연구의 독창적 성과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행연구의 인용을 통해서 자기 논문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삼을 뿐 아니라, 기존 연구를 넘어서는 자기 논문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논문작성의 기본이 자기 견해와 남의 견해를 분별하는 것이다. 자기 견해가 아닌 남의 견해는 문장에 인용 표시를 하고 출처를 각주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자연히 논문작성법의 가장 초보적인 형식이 각주 다는 법이다.

논문의 시작은 으레 기존연구 검토로부터 이루어진다. 기존연구 검토를 시작하려면 해당 연구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서는 논문을 써나갈 수가 없다.

논문의 결론도 기존연구와 다른 자기만의 독창적 연구성과를 서술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연구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논문은 비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논문 작성법에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은 것은 물론, 논문의 목적인 독창적 연구성과를 오롯이 드러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남의 말을 자기 말인 것처럼 분별하지 않고 써서는 아예 논문이 성립될 수 없다.

자연히 논문작성법에는 기존연구를 거론하거나 인용하고 출처를 밝히는 각주 형식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기존연구의 내용을 거론하거나 포괄적으로 소개할 때는 따옴표 없이 각주를 달면 된다.

그러나 문장을 고스란히 인용할 때는 따옴표(“ ”)를 인용문장 전후에 표기해야 하고, 문장을 나름대로 바꾸어서 인용할 때에는 반따옴표(‘ ’)를 써서 각주를 단다. 따옴표를 붙이는 것은 자기 말과 남의 말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양적으로 긴 문장이나 여러 문장을 한꺼번에 인용할 때에는 아예 단락을 바꾸고 글자 크기를 줄여서 별도의 단락으로 작성한다. 일반적으로 3줄이 넘는 문장을 고스란히 인용할 경우는 따옴표를 쓰지 않고 별도의 인용 단락을 만들어서 각주로 출처를 밝힌다.

몇 개의 어절이나 학술용어를 인용할 때는 각주만 붙이지만, 문장을 인용할 때는 따옴표를 붙여서 각주를 붙이고, 여러 문장을 인용할 때에는 별도의 단락으로 작성하여 각주를 붙인다. 이러한 차이는 인용 분량이 많을수록 더 엄격하게 출처를 밝히기 위한 데서 발생한 것이다. 그만큼 남의 말이나 글을 가져올 때는 질과 양에 따라 충분한 배려를 하도록 일정한 형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남의 글을 가져올 때 출처를 반드시 밝혀야 하는 양적 기준도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 5 어절 이상을 가져오면 출처를 밝혀야 한다.

만일 5 어절을 가져오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표절에 해당된다. 따라서 남의 문장을 가져오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명백한 표절이다.

여러 문장이나 단락을 출처 없이 가져오는 경우에는 표절을 넘어서서 아예 베끼기 또는 복사라고 한다. 김건희 논문을 박사논문이 아니라 '복사논문'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 표절논문이 아니라 복사논문이냐 하면, 표절이란 그야말로 남의 글을 티 나지 않게 감쪽같이 몰래 조금 가져오는 까닭이다.

대놓고 남의 글을 표 나게 베끼거나 아예 복사해서 붙이는 일은 무지막지한 도둑질인 까닭에 글 쓰는 작가나 논문을 쓰는 학자에게는 절대 금기이다.

이렇게 써서는 원고를 발표할 수도, 특정 지면에 게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작가나 학자는 모두 양심과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두고두고 문제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남의 글을 단락 채로 고스란히 베껴 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짓은 학계에서나 문단에서나 용납되지 않을뿐더러 금방 탄로 날 일인 까닭이다.

학계와 문단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글을 쓰고 저서를 펴내는 지성인들이다. 표절 작가나 표절 학자로 한 번 알려지면 사계에 얼굴 들고 활동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

글 쓰는 사람에게 표절이 드러나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치욕이자 씻을 수 없는 낙인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원래 각주를 달지 않아도 되는 시의 경우에도 특정 낱말이나 구절을 남의 작품에서 가져왔을 경우 별표(*)로 출처를 말미에 밝힌다.

하물며 학술논문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투고된 논문은 학회에서 심사를 하지만, 우연히 통과되어서 학회지에 게재되었더라도 사후에 표절이 밝혀지면 게재가 철회될 뿐 아니라, 그 사실이 학회 회원들은 물론 표절자의 직장과 연구재단에까지 통보된다.

연구재단에서는 연구목록에 논문제목을 올리면서 표절논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해당 논문을 붉은 글씨로 제목을 밝혀서 누가 보든 표절논문으로 알아차리도록 만든다. 학자로서는 치명적인 조치이다.

이러한 조치에도 몰래 남의 문장을 가져다가 쓰는 것은 교묘한 표절이라서 들키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을 때이다. 이러한 자신이 서지 않으면 표절이란 자승자박의 무모한 행위인 까닭에 삼가기 마련이다.

표절이 드러나면 어떤 경우든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남의 글을 의도적으로 표절한 것이라면 학자적 양심의 문제로 걸리고, 자기도 모른 채 우연히 남이 했던 주장을 하게 되었다면 선행연구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학문적 불성실의 문제에 걸린다. 따라서 알고 베끼면 더 문제이고 모르고 베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러므로 연구자가 노골적으로 남의 글을 무더기로 고스란히 베끼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표절 여부로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김건희 박사논문은 사실상 표절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것이어서 결론은 명백하다.

표절이 아니라 복사논문이라 일컬을 만큼 구연상 교수의 논문을 거의 통째로 베껴 쓴 것은 물론, 남의 특허나 점집 홈페이지 글까지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베껴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자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한 마디로 몰래 한두 문장을 훔쳐온 것이 아니라 통 크게 까놓고 남의 글을 통째로 가져간 것이다.

표절이 야밤에 몰래 남의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이라면, 이 경우는 아예 백주대낮에 큰 트럭을 대놓고 태연하게 남의 살림을 마치 자기 이삿짐 가져가듯이 싹쓸이해 간 떼강도나 다름없다.

다만 무차별 약탈을 했지만 위협을 하지 않았으니 강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상 주인이 알아차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드러내놓고 남의 것을 마구잡이로 털어간 까닭에 사실상 노골적인 강탈 행위나 다르지 않다.

숨어서 몰래 표 나지 않게 가져가는 좀도둑과, 드러내놓고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화적떼는 엄청 큰 차이가 있다.

적어도 글 도둑의 경우는 두려운 마음으로 들키지 않게 숨어서 은근슬쩍 훔쳐다 쓰는 게 고작이지만, 화적떼처럼 막무가내로 무차별 약탈하는 경우는 학계나 문단을 막론하고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김건희 논문의 경우는 표절이라는 말로 나타내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왜냐하면 학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도발을 자행한 까닭에 마땅히 어떤 용어로 나타낼 수 없다. 마땅하게 해당되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요약하여 말한다면 표절논문이 아니라 '논문의 탈을 쓴 가짜 논문'이라 할 수 있다.

남의 재물을 훔치는 일이나 남의 글을 훔치는 일은 모두 도둑질이다. 도둑질은 현재와 같은 성문법이 생기기 훨씬 전인 고대부터 관습법으로 처벌되어온 범죄였다.

글도둑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고대 사서에서도 다른 문헌이나 기록에서 참고한 내용은 출처를 밝혔다.

기록은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나 답사해서 본 사실도 일일이 전거로 밝혔다. 그러므로 재물을 훔친 범죄처럼 글을 훔치는 것도 고대부터 금지되었던 범죄이다.

특히 연구논문의 경우는 학술적인 성과인 까닭에 전거를 밝히는 작업이 더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남의 글은 물론 자기 글도 거듭 사용하려면 출처를 밝히고 인용해야 한다.

자기 글이라고 하여 각주를 달지 않고 멋대로 가져다 쓰면 자기 표절에 걸린다. 연구논문은 늘 독창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에 썼던 논문을 새로 쓴 논문인 것처럼 거듭 발표하는 것도 학문 사기이다. 따라서 자기 논문이라 하더라도 재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육장관 박순애도 자기 표절 논문에 걸려서 넘어졌다. 남의 논문은 물론 자기 논문조차 표절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학술논문이다.

표절이 문제된 시기도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이 처음 쓰여지기 시작할 때부터라 할 수 있다. 남의 논문에 있는 내용을 끌어와 자기 연구성과인 것처럼 위장해서는 연구논문으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문헌에서 인용한 부분은 물론, 참고한 내용까지 출처를 밝히도록 각주를 작성하고 말미에 참고문헌을 붙여서 사실을 고스란히 밝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표절에 대한 금기는 논문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아주 오래된 학문윤리이자, 글 쓰는 이의 기본적 규범이었다.

그럼에도 최근에 교육부에서 연구윤리를 새로 제정함으로써 비로소 표절이 규제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마치 표절이 자유로웠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도둑질을 옹호하기 위한 한갓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문헌을 간행하기 시작한 고대부터 인용 출처를 밝히는 것이 저술윤리였을 뿐 아니라, 학술논문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규범이어서 출처를 밝히는 각주 형식과 참고문헌 양식이 구조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논문이 쓰여지기 시작한 시기, 곧 대학과 학문의 역사가 시작된 중세 이전부터 표절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학부생들의 논문에도 인용 부분은 출처를 각주와 참고문헌으로 밝혀야 한다. 하물며 최고 학위인 박사 자격을 부여하는 학위논문에서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어절이나 문장의 표절을 넘어 단락이나 논문을 통째로 훔쳐다 쓴 것은 학자적 양심 이전에 남의 저작권을 침해한 매우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

표절에 의해 작성된 글은 박사논문은커녕 학부 과제로서도 낙제에 해당된다. 남의 글이나 연구성과를 가져다 쓰면서 출처를 밝히는 것은 학위논문만의 요건이 아니라, 학부 보고서 작성에서부터 요구되는 아주 초보적 요건이다.

김건희의 가짜 논문은 박사학위자격 여부는커녕 학부자격에도 한참 모자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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