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나 국가 소멸 위기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1980년 대 까지만 하더라도 공동체 상징, 상여소리 흔해

대학시절 농활로 연대와 배려 예의와 공동체 문화 나눠

농활당시 농촌은 아이들과 젊은이로 가득, 활력 넘쳐

마을 회관서 아이들과 교류하고 소식도 주고 받던 추억

올해 여름 휴가로 농활한 구례지역 가보니 텅비고 노인만

삶은 편리해 졌으나, 농촌파괴와 물질에 찌든 각자 도생

 

 

▲ 상여소리는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였다. 사진: 경기도 용인에서 개최되는 포은 문화제에서 공연되는 상여행차.
▲ 상여소리는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였다. 사진: 경기도 용인에서 개최되는 포은 문화제에서 공연되는 상여행차.

상여소리

이번 추석에 외삼촌이 ‘상여소리’를 들려 주셨다. 상여소리 들으며 스무 살 때 구례 용방면 죽정리에서의 1982년 농활을 생각했다.

논에서 일하다가 상여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바람결에 크게 들렸다 작게 들렸다 했는데 애절한 가락에 마음을 빼앗겼지.

가뭄이 심했다. 농활이 끝날 무렵 기우제를 지냈고 곧이어 비가 왔다. 기우제가 효과를 보았나 보다.

구례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마구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막걸리에 취한 농활단과 죽정리 형님들이 한데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막걸리 기운에 젖어 자느라고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 긴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청년들과 어울려 술취한 농활대장 태주형은 각설이타령을 부르고 형균형은 농부가를 불렀는데 절창이었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실노동을 통해 절감하면서 관념적으로 갖고 있었던 ‘농부에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 농활을 통해 노동이야말로 세상을 굴려 나가는 신성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운동도 일하는 분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의 농활은 내게 꽤 깊이 있는 가르침을 준 셈이다.

당시 죽정리에는 자체 농악대가 있었다. 장구 담당, 대평소 담당, 꽹과리 담당이 있어 마을회관에서 한바탕 놀면 다들 멋들어진 솜씨를 뽐냈다.

이건 아마도 당시 농촌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으리라. 그때만 해도 농촌마다 전통의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청년들이 많았고 특히 아이들도 많았다. 난 아동반에서 분반활동을 했다. 취학 전 아이들, 초등 4~6학년 아이들이 드글 드글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아주 잘 따라주었다. 일주일 정도 일하고 떠날 때 아이들이 많이 울었다.

과 사무실로 아이들이 보낸 편지가 와서 쌓였다. 어떤 6학년 여자애도 내게 편지를 썼다. 울긋불긋한 글씨로 엄청 정성들여 글을 써 보냈는데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 휴가에 전라도 쪽으로 크게 한번 돌 기회가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연히 그 동네에 들르게 되었다. 겉으로는 동네에 별 변화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용방면 죽정리가 구례읍에서 한참 남원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어 오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바로 뒷산에 고속도로가 새로 뚫려 교통이 매우 편해진 듯 했다. 그 외에는 외관에 거의 변화가 없다.

하지만 실은 큰 변화가 있었으니 무엇보다 아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동네를 관통해 흐르던 천변에 작은 정자 하나가 있는데 할머니들이 몇 분 모여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3년 연속 가서 묵었던 마을회관도 지금은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40년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에 농촌 마을에선 청년과 아이들이 사라지고, 농악대가 사라지고, 수백 년 동안 망자를 위로하고 남은 사람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전승되어 왔을 ‘상여가’가 사라졌다.

그리고 요즘의 대학생들은 각설이타령, 농민가를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활도 가지 않는다.

그것들이 사라진 대신에 전국 산과 강을 직선으로 가로 지르며 거미줄 같이 뻗어나간 도로가 들어서고, 자동차가 들어서고, 돈과 돈으로 교환되는 합리의 정신이 도시와 농촌 불문하며 유포되었다.

동네 청년들이 천렵하던 곳에는 물고기 키우지 못하고 사람 접근 허용하지 않는 오탁수(汚濁水)가 흐른다.

상여가가 사라진다는 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예의, 연대,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개천에서 물고기 씨가 마른다는 건 사람이 기대어 살아갈 자연이 망가진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건 이 체제의 미래에 젊은이들이 절망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농촌을 찾지 않는다는 건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식과 공동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이 되었든 이 나라의 현재가 내장(內藏)한 내일의 모습이 사람 살만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이런 얘기하면 혹자는 분명 나의 회고 취향과 현재에 대한 비현실적 감각을 지적하겠지. 하지만 세상이 속절없이 타락하면 과거가 담은 긍정적인 모습과 지금의 모순이 담은 미래의 낙관적 가능성이 현재에 대한 평가와 비판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나의 회고 취향을 변호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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