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남북한만 이념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격동의 서기 1970년대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된 역사
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으로 10.26 사건 구도 완성돼
월남전 자유 진영 패망으로 한국은 학원 병영화 구축
76년 8.18 도끼 만행, 군사분계선 시멘트 선 만들어
<격동의 70년대 8월 : 8.15 영부인 피격, 8.18 도끼 만행사건 등>
1. 1974년 8월 15일 문세광,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29회 광복절 경축사를 하던 도중 다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
한발은 영부인(육영수)이 맞고 한발은 여고생 목을 관통하였다.
저격범 재일한국인 문세광(1951~1974)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12월 2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는 북한이 영향력을 뻗치고 있던 조선총련의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경호실장 차지철, 중정부장 김재규가 등장하여 10·26사태의 인적구도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난 날은 서울시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날이었다.
2. 1975년 4월 30일 월남 패망 직후
여의도광장 멸공 궐기대회(140만 명)가 개최되었고, 긴급조치 9호 (75.5.13, 유신헌법 비방 및 데모금지 등)가 발동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학원 병영화와 감시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학도호국단 부활(75.9월 : 49년 창설, 60년 폐지), 교련교육시간 확대, 문무대 개소, 교수 재임용제 등도 이루어졌다.
3.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
원래 판문점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아 말 그대로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이었다.
애초 이 지역에서는 쌍방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은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근데 76년 8월 18일, 남측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도중 북측의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후부터 양측간 충돌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MDL: Demilitarized Line)이 공동경비구역 내 시멘트 라인으로 설정되었는데, 높이 15cm, 너비 40cm이다.
경비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북한군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일부 사병들은 안면이 있는 북한 병사와 수시로 대성동 마을 부근과 판문점 내 감시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담배와 술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만 백만 관객을 넘게 동원했던 영화 JSA의 소재(2000년, 박찬우 감독)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