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곳곳에 보이는 서낭당은 마을, 고을 단위로 하늘에 굿을 올리는 터였다.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마고시대를 알리는 부도지 곳곳에 '소리音' 가 중심 이뤄

우주삼라 만상의 현상계가 천음인 8려소리에서 나온 것

부도는 지금까지 내려오는데 천부삼인과 계불의식이 핵

이성계 조선이 성인으로 받들던 요순은 부도 배신한 자

기화수토의 부도를 엎고 멋대로 잘못된 음양오행설 창조

홍대용, 박지원, 음양오행설 비판, 자주 역사관 돋보여

 

▲ 이성계 조선에서 중국 요순을 성인으로 받들어 통치와 삶의 모범으로 가르쳤으나 실상은 마고시대 이래 단군의 다스림을 받던 단군의 일원이었다(편집인 주).
▲ 이성계 조선에서 중국 요순을 성인으로 받들어 통치와 삶의 모범으로 가르쳤으나 실상은 마고시대 이래 단군의 다스림을 받던 단군의 일원이었다(편집인 주).

 

마고 여신 8

이제 우리의 시조라는 황궁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천산주로 간 황궁은 근본을 회복(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그는 첫째 아들 유인(有因)에게 인간 세상의 일을 밝히라고 명하고,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모든 주(洲)를 돌아다니게 하였다.'

훨씬 뒷날 신라 화랑들이 산천을 순행하던 모범인 셈이다.

'그리한 후 황궁은 곧 천산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간 세상의 어리석음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쟁취하였다.

이에 유인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받으니 이것이 곧 천지본음을 본뜬 것으로,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조음이니 천지본음이니 하는 말이 반복하여 나오는 것은, 마고가 소리에서 스스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유인이 천 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재앙을 없애는 굿(계불-禊祓)을 전수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김은수 선생은 환인 환웅 환단고기(桓因 桓雄 桓檀古記)를 한인 한웅 한단고기라고 번역하였다.

'이렇게 황궁 유인 한인 3세가 3천 년 동안 하늘의 도를 닦아 실천한 결과, 햇빛이 고르게 비치고 기후도 순조로워 생물이 편안함을 얻게 되고 사람들 역시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한인의 아들 한웅은 천부삼인을 계승하여 계불의식을 행하고, 웅대한 하늘(천웅-天雄)의 도를 수립하였다.

한웅은 여덟 나라의 말과 두 개의 글을 익히고 역법을 정하고 의약술을 수업하며 천문과 지리를 저술하니,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였다(弘益人間).

한웅의 아들 임검(壬儉) 역시 천웅의 도를 닦아 계불의식을 행하고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천부를 비추어 수신하고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맹세하며 부도(符都) 건설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이 멀고 소식이 끊어져서 종족들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달라졌기 때문에 천부의 이치를 분명히 익혀 서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임검은 동북쪽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자방-磁方)에 부도를 건설하였다.'

부도는 '천부의 도시'라는 뜻으로 마고성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단군조선의 수도인 부도는 태백산 밝은 땅 정상에 천부단을 짓고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바로 마고성을 그대로 본딴 것이다.

이처럼 마고의 이야기는 단군에게까지 이어지는데, 단군이 세운 부도가 마고성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었고, 홍익인간의 이념 역시 마고시대를 회복하고져 하는 황궁의 복본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래 사진들은 김산호라는 분이 고대 신화 역사 인물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마고여신 9

황궁의 후예들은 6만 명을 부도로 이주시키고, 여러 곳에 사는 종족들을 초청하였다.

'종족들이 차례로 모여들자 박달나무숲에 신시(神市)를 크게 열고, 계불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의 모습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를 밝히고 천부(天符)의 음에 따라 말과 글을 정리하였다.

그들은 신시 조시(朝市) 해시(海市)를 열었을 뿐 아니라, 전역에 성황(城隍)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신시는 아마 상소도(上蘇塗), 조시나 해시는 중소도, 성황은 소소도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 곳곳에 만들어진 성황은 씨족이나 부족 단위가 제천을 하던 장소였을 것이다.

천산주의 유인 시대, 한인의 적석산 시대를 거쳐 태백산의 한웅 시대 말에 임검이 이루어낸 일이었다.

이처럼 단군은 마고의 뜻을 복원하여 나라의 기틀로 삼았고, 박제상이 쓴 '소부도지'에는 그 전통이 신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만 중국에 대해서는 매우 혹독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요순우(堯舜禹) 3대를 모두 적대시했다.

'도요(陶堯)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났는데, 맨 먼저 마고성을 떠난 무리들의 후예였다.

요는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五中 - 동서남북'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며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게다가 엉뚱하게 역(曆)을 만들고 천부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간 세상의 두 번째 큰 변이었다.'

말하자면 '오미의 변' 때문에 사람들은 마고성에서 쫓겨났는데, 요는 하늘의 뜻에 따른 '부도의 역'을 거역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임검은 유인의 손자인 유호(有戶) 부자를 보내 요를 깨우치려 하였으나, 요는 유호의 아들 순(舜)을 두 딸로 유혹하여 순을 포섭해 버렸다.

이에 유호는 둘째 아들 상(象)을 시켜 당도를 혁파하게 하였는데, 요는 갇혀 있던 중 죽고 순은 창오의 들에 도망하였다가 우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우는 도읍을 옮기고 유호에게 항거하면서 자칭 하왕(夏王)이라 칭하였다는 줄거리다.'

중국 요순우시대에 대한 아주 색다른 시각이다.

중국 최초의 왕조라는 하나라의 건국도 부도의 뜻에 어긋나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처럼 마고신화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건설로 이어지고, 이러한 전통이 연면히 이어져 신라로까지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을 사대(事大)하던 조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부도지>는 '허실기화수토'(虛實 氣火水土)설에 입각하여 중국의 음양오행설을 몹시 황당한 설로 치부하고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오행의 다섯이라는 수는 원래 정해져 있는 수가 아닌데, 술가들이 이를 조술하고 하도 낙서의 이치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고 주역의 상사(象辭)로써 이에 천착하는데, (중략)

결국 아무런 이치도 없는 것이오."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도 홍대용의 영향을 크게 받은 북학파의 한 사람이다.

박지원은 안정복이나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 선비들과 역사 인식이 매우 달랐다.

그는 <열하일기>를 통해 만주를 바라보는 매우 주체적인 시각을 드러냈고, 열하에서 만난 청나라 학자들에게 아주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홍대용과 박지원이 중화사상에 찌든 조선 시대에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음양오행설을 강하게 비판한다거나 만주에 대한 주체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천부 사상이 발현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마고여신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명나라를 어버이이로 숭배하고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역사마져 중국에 갖다 바친 조선 유학자들을 비판한 박지원은 한사군이 우리나라에 없었다고 일갈하였다(편집인 주).
▲ 명나라를 어버이이로 숭배하고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역사마져 중국에 갖다 바친 조선 유학자들을 비판한 박지원은 한사군이 우리나라에 없었다고 일갈하였다(편집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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