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 때문에 남북 현대사가 달라졌다.

 

글: 지승룡(민들레 영토 대표)

 

남북한 현대사의 비극은 미 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 때문

전범국 일본인보다 더 피해국 한국민을 더 증오한 하지

“사나운 고양이 같은 종자, 세계서 가장 멍텅구리 인종”

여운형에게는 일본에서 돈 얼마나 받아먹었냐고 위협

상해임시정부인사들 인천에 모아 중국 상해로 추방시도

하지 중장, 한국의 역사, 사람, 행정 등 아무것도 몰라

 

▲  미 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이 백범 김구와 우남 이승만을 웃음을 띤 가운데 만나고 있다.
▲ 미 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이 백범 김구와 우남 이승만을 웃음을 띤 가운데 만나고 있다.

 

<8.15 특집>

여론조사에서 국정 동력이 상실하는 것을 넘어 대통령 하야 분기점은 부정평가가 70% 긍정평가가 20% 아래로 진입하는 것이다. 부정평가는 이미 진입을 했고 긍정평가는 아직 5%가 정도가 남았다.

담 주 5%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국민의 힘 김성원 의원 망발에 윤석열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며 김성원을 아마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부정평가 70% 선을 표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윤석열 정부가 국정 동력을 상실된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윤석열 정부의 동력은 소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에 의한 국가와 시민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해방 후 3년간 미 군정청 점령 하지 사령관이 묘하게 유사성이 있다.

실언

하지의 어록이 비밀로 되어있지만 하지는 날마다 실언들이 많았다. 한국에 도착해서 미군 앞 연설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교활한 종자(The Koreans are the same breed of cats as the Japs)다”

"일본 주둔 미군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세 가지다. 첫째 설사, 둘째 성병 그리고 한국인이다. 일본인도 나쁘지만, 한국인은 더 교활하다.”

"일본 왜놈들은 다루기 쉽다. 그러나 한국인은 사나운 고양이와 같은 종자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약탈당하고 매를 맞았다고 떠들지만, 증거가 거의 없다. 한국인은 최고의 멍텅구리들이고 세계에 찾아볼 수 없는 인종이다. 한국인들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회만 있으면 강간하고, 강탈하고, 살인했다. 한국인들은 사람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는 당시 최고의 민족 지도자 여운형에게 "쪽바리(Jap)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지?" 라고 조롱하고 김구는 암살범이라고 하며 총을 겨누고 이승만 없는 곳에서는 이승만을 늙은 개새끼라고 욕했다.

정세와 정무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는 아시아정세지식도 없었고 특히 한반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깡 무식이었다. 강경 군인으로 있다가 한국을 점령하여 한국을 지배한 혐오스러운 군인에 불과했다.

당연히 정치는 뒤틀리고 민주 인사들은 암살되고 하지 스스로 상해 임시정부 인사를 인천에 불러 전부 중국에 추방하려고 추진했는데 측근들이 간신히 말렸다. 경제는 어려워 대구 등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조선총독부의 질서로만 한국을 지배하려고 한 못난 인물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제임스 매트레 교수는 하지를 남코리아 미 군정 사령관으로 선임한 것은 실책이었다. 하지는 한국역사나 한국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로 없었고, 행정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조직을 이끄는 일에는 문외한이었다. 결국, 한국인들과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이끌 만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주한 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하지는 단지 수송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약 2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의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선택된 인물이며 정무감각이 좋은 육군 대장 조지프 스틸웰를 내정했다면 한국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은 불운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도 미국에 돌아가서 “남코리아 군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는 나의 최악의 직무였다. 내가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1년에 100만 달러를 줘도 그 직책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조선을 위해 일본과 싸운 것이 아니고 우리 조선인이 싸운 것이기에 일본의 패망은 임시정부에 의해 국권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미국의 이익을 위해 남코리아 근현대사는 이리 못난 굴곡이 된 것이다.

하지가 3년간 살던 관사인 조선총독부 관사를 윤석열 정부가 다시 복원하려고 했는데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이 부정의견을 표함으로 국정 동력이 상실되어 막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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