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파괴를 가장 심하게 하는 지식인들의 변절이다.

 

글: 전집현(역사연구가)

 

이광수 민족개조론, 조선인을 버리고 일본인 되자는 것

윤치호, 동양과 세계 정원, 축복받은 일본에서 살고 파

김동인, 반도 민중의 황민화-징병제에 적극 동참 권유

최남선, 역사 말살 조선사편수회 부역, 학병지원 연설

배정자, 이등박문 수양딸로 밀정활약 매국에 적극 나서

 

▲ 춘원 이광수. 3.1혁명 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변절하여 일본정신으로의 민족개조론을 주장하였다.
▲ 춘원 이광수. 3.1혁명 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변절하여 일본정신으로의 민족개조론을 주장하였다.

 

<일본강점기 친일파들은 어쩔 수 없이 친일했는가?>

1. 이광수(李光洙 : 1892~1950)

이광수는 1922년 5월호 월간 잡지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기고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 민족의 열등감이 민족의 패배감으로 나타나서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한국 민족의 성격적 결함이나 인종적 열악함을 과학 등을 동원해 제시해 한국 민족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 역시 한국 민족의 잘못임을 지적했다.

(민족개조론)

우리 민족의 성질은 열악합니다.

나는 생각하기로 30년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지금보다 배 이상의 피폐에 달하여 그야말로 일어날 여지가 없이 되리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구제할 길은 무엇인가. 오직 민족개조가 있을 뿐이니 곧 본론에 주장한 바외다.

2. 윤치호(尹致昊: 1866~1945)

그는 한말 개화파로 1898년 8월 독립협회 제2대 회장이 되어 그해 10월에 1만여 명이 참석한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1912년에 일제가 민족 지도자를 말살하기 위해 날조한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검거되어 3년간 수감 생활을 겪었다.

근데 1920년 이후에는 일제의 통치 정책에 이용된 친일 단체와 모임에 깊이 관여하는 등 친일 활동을 펼쳤다.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상무 이사와 국민 총력 조선 연맹 이사로 친일 활동을 하였다.

1941년 친일 세력을 총망라한 조선 임전 보국단의 고문과 1945년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그의 일기장에

"인종차별 심한 미국, 냄새나는 중국, 악마 같은 정부가 있는 조선이 아니라 동양의 정원이자 세계의 정원인 축복받은 나라 일본에서 살고 싶다."

▲ 국어책에 실릴 만큼 문학가로 알려졌으나 일제에 부역한 악질 민족반역자였다.
▲ 국어책에 실릴 만큼 문학가로 알려졌으나 일제에 부역한 악질 민족반역자였다.

 

3. 김동인(金東仁, 1900~51)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등을 저술하였다.

물려받은 거액유산을 사치, 도박, 기생 등으로 탕진하고 대동강 수리사업에 몰방했으나 알거지가 되자 이혼당했다.

1938년 중일전쟁 이후 변절하여 내선일체와 황민화 선전 등 일제에 협력하는 글쓰기를 하였다.

1944년 1월 20일에 조선인 학병이 첫 입영을 하게 되자, 매일신보에 '반도 민중의 황민화-징병제 시행 수감(隨感)'의 제목으로 학병 권유를 연재하면서 선동했다.

4. 최남선(崔南善 : 1890~1957)

1903년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는 한반도의 지형을 조사한 후 한반도의 모양이 토끼와 닮았다고 주장했다.

최남선은 1908년 "소년지" 창간호에서 나약한 토끼가 아니라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라고 이 주장에 대항한 바 있다.

1919년 3.1운동 때는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1920년 가출옥하였다

그 후 최남선은 변절하여 친일행적을 뚜렷이 남겼다.

1928년에는 총독부가 식민사관을 유포하기 위해 만든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위원이 되었고,

1937년에는 중추원 참의가 되었으며, 1938년에는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만주 건국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다.

또한, 귀국 후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로 건너가기도 했다.

▲ 삼일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할 정도로 독립투쟁에 나섰으나 변절하여 일제침략을 적극 동조하였다.
▲ 삼일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할 정도로 독립투쟁에 나섰으나 변절하여 일제침략을 적극 동조하였다.

 

5. 배정자(裵貞子 : 1870~1951)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어 수영·사격술·변장술 등 철저한 밀정 교육과 사상적 세뇌(洗腦)를 받았다.

조선의 일본공사관에 근무하면서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의 내막을 일본에 보고하여 고종퇴위를 유도한 바 있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면서 독립운동 감시·밀고. 위안부를 모집해 일본에 송출하였다.

▲ 사극에 나오는 배정자의 실체.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섰고, 왜정치하에서는 독립군 잡는 밀정 노릇까지 하였다.
▲ 사극에 나오는 배정자의 실체.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섰고, 왜정치하에서는 독립군 잡는 밀정 노릇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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