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과 유물로 증명되는 가야 허왕후 기사는 역사다.

 

부산 채스에서 허왕후 혼인기사의 실증적 해석 펼쳐

부산청년들과 교류의 장 열려

『가락국기』 에 근거하여 망산도의 잘못된 위치비정 수정

허왕후 혼례길을 부산시 관광산업화해야

▲ 도명스님이 지난 7월 10일 부산 채스아트센터 3층에서 가락국기의 허왕후 기사를 풀어내고 있다.
▲ 도명스님이 지난 7월 10일 부산 채스아트센터 3층에서 가락국기의 허왕후 기사를 풀어내고 있다.

지난 7월 10일(일), 부산 달맞이 고개에 있는 채스아트센터 3층에 도명스님과 십여명의 부산 청년이 교류회를 가졌다. 인원은 적었으나, 청년들에게 허왕후 도래길을 설명하고 이에 따른 가락국기의 올바른 해석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도명스님은 허왕후와 김수로왕은 실존인물이며, 이에 따른 지명비정, 관련사찰, 고려시대까지도 행해지던 풍습 등이 있음을 설명하였고, 또한 추석 차례의 기원 또한 팔월 보름날 수로왕께 차를 올리는 예법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 허왕후의 가야 도래 요약
▲ 허왕후의 가야 도래 요약

이에 대해 가락국기를 해석하며, 가락국에 다다른 3일간 허왕후의 행적을 자세히 묘사하며 이에 따라 실증적인 경로추적을 시도하였다. 주요 지명은 망산도, 승재, 종궐, 만전, 주포촌, 능현, 기출변 등이 있는데, 선행연구자들의 연구를 정리한 뒤 독자적인 지명비정을 실시하였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근거로는 1872년 영남지도에 있는 웅천현(현재의 진해 용원) 지도를 지적하며 이에 ‘만산도’가 표기되어 있음을 근거로 삼아 이를 망산도로 해석하였다. ‘만산도’는 경상도 방언이 고착화된 것으로 보았다.

이를 현재의 지도에 대입한 결과, 기존에 알려져 있던 망산도가 아닌 현재의 ‘견마도’가 망산도임을 확인했고, 이 위치에서 바라볼 때 가덕도를 돌아 나타나는 배가 정확히 남서쪽에서 나타남을 확인했다.

다만 현재의 견마도는 부산신항 개발과 녹산공단건설 등으로 절반이 잘려져 나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 허왕후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주요지점
▲ 허왕후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주요지점

또한 가락국기를 근거로 하여 가야불교의 추적을 확인하였는데, 현재 김해 장유사에 모셔진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영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부산, 경남 일대의 30여 곳 이상의 연기사찰 및 창건설화, 김해 지역과 김해 김씨 문중에 남아 있는 전승과 설화,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인 파사석탑과 가야불교의 특징인 링가와 요니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링가는 힌두교 신앙에서 유래된 신물로 가야불교의 영향을 받은 부은사, 모은암, 흥국사, 장유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물증 등을 통해 허왕후 도래길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으므로 진해 용원과 부산신항 부근의 유적지를 지금이라도 보존해야하고 관광산업화해야 함을 주장하였으며, 또한 이를 통해 일본의 임나일본부를 격파하고 우리의 자랑스런 가야사를 임나로 주장하는 어떠한 학설에도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상의 연구는 도명스님의 저서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도명스님과 강연을 듣는 젊은 시민들
▲ 도명스님과 강연을 듣는 젊은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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