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한국서 태어났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적대관계 해소에 목숨 걸었을 것이다.

 

글: 한설(예비역 준장, 국립순천대 초빙교수)

 

아베, 집권 기간 내내 평화헌법 개정시도 정상국가 추진

메이지 유신의 지사적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은 정치인

미국에 지나치게 굴종, 친미한 것은 수단, 개헌이 목적

분명한 역사적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관되게 정책 추진

한국은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에 외에 역사적 사명감 부재

윤석열 친미는 목적, 아베의 친미는 목적 달성위한 수단

기성 정치 세력에는 희망 없어, 새 정치세력 등장해야

 

▲ 윤석열 정권의 친미정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아베신조 자민당 정권의 친미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있다(편집인 주).
▲ 윤석열 정권의 친미정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아베신조 자민당 정권의 친미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있다(편집인 주).

 

< 아베 인물 평가, 그리고 윤석열과 비교 >

(아베 인물 평가)

아베 전 일본 총리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그의 죽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향후 일본 정치가 흘러가는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치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적어도 한국민에게 있어서 아베는 결코 긍정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아베 암살 이후 안중근 운운하는 평가가 뒤따르는 것을 보면 한국민들에게 아베는 마치 이토 히로부미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원수와 같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영웅이다.

일본인들은 과연 아베 전 수상을 어떻게 평가할까? 나는 아베를 민족주의적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아베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는 전후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일본을 독자적인 정상국가를 만들려고 했다는 점에서 메이지 유신의 지사적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은 정치인이다.

아베는 평화헌법을 바꾸어 정상적인 국가로 만드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했던 정치인이다. 이를 위해 아베는 친미정책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일본에 평화헌법을 강제한 것은 미국이었다. 같은 패전국이지만 독일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과 일본에 대한 접근방식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독일보다 일본에 훨씬 가혹했다. 미국이 일본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마도 태평양지역에서 다시는 일본이 미국에 도전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일본은 전후 복구에 나선 이후 경제발전에 전력을 가했다. 한때 일본은 “No”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으나 미국의 영향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플라자 합의도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기본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전후 체제 총결산을 주장하고 독자적인 일본을 추구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물러나게 된 1970년대 중반의 록히드 사건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록히드 사태 이후 일본 정치인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국의 영향력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성장과 함께 일본은 점점 더 독자적인 노선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 출발점을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발돋움이라고 본 것이다. 아베는 그런 역사적 사명감을 스스로 짊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베는 지나치게 저자세라고 할 만큼 미국 일변도의 정책을 통해 미국의 의구심을 해소하고 정상국가로 나가기 위한 평화헌법 개헌을 추진했다고 할 것이다. 거의 성공 직전에까지 갔으나 개헌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베에게 한국과의 역사문제는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베의 한국의 역사문제 제기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은 역설적으로 그가 정상국가로의 발돋움이라는 과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자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한국민들이 아베의 몰지각한 역사관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베의 죽음 이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은 일본정치의 향방이다. 앞으로 일본정치는 어떻게 움직일까?

필자는 두 가지 방향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첫째는 아베 죽음 이후 정상국가라는 목적 달성을 포기하고 미국의 영향력 내에서 안주하는 방식이다. 아마도 미국은 이런 일본을 가장 희망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베의 죽음은 일본의 역사적 사망신고나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일본이 아베 죽음을 계기로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는 노력을 한층 더 가속하는 것이다. 일본은 미·중패권과 우크라이나 전쟁과정을 겪으면서 미국의 영향력 내에 남아 있다가는 자국의 이익을 손상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하기 위한 평화헌법 개헌으로 급속하게 나아갈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일본 여당이 개헌선을 넘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베는 죽음으로 일본을 자신이 달성하고자 했던 평화헌법 개정과 정상국가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베와 윤석열 비교)

아베에게서 친미적인 태도보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정상국가로의 발돋움이라는 것을 먼저 보아야 한다. 굴종적이기 까지 했던 친미적 입장은 수단이었고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정상국가는 목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아베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감히 질타하는 바이다. 민족적 역사적 사명감을 자각한 한국의 정치인은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이외에 누가 있었을까? 지금 한국의 정치인들은 아베와 같은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일신 양명과 출세라는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하는 짓이 모두 조폭 아니면 양아치와 같은 것이다.

아베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미국이 강제했던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한국의 소위 자칭 보수정치인들은 독자적인 국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에 스스로 종속되기 위해 전작권 전환을 반대한다.

아베는 자주적인 일본을 위해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미국에 굴종했고, 한국의 윤석열은 자주적인 한국을 거부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반대하면서 미국에 굴종했다. 아베와 윤석열 모두 미국에 굴종하지만, 그 목적이 다른 것이다. 윤석열이 아베 문상을 간다고 한다.

죽은 아베가 문상 온 윤석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정신 차리고 너네 나라 위해 고민 좀 하라고 했을 것이다.

< 일본 정치인과 한국정치인의 차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필요성 >

윗글에서 아베와 윤석열의 차이를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이 문제를 좀 더 부연해서 다뤄야 할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 수준이 너무 한심해서 이를 좀 더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같은 한국정치인들 수준으로는 절대로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민들이 현 한국정치인을 완전하게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한국은 다시 19세기 말과 같은 신세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개헌 발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일본은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정상국가가 될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두고 중국과 한국은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정상국가가 된 일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하겠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오로지 평화헌법의 굴레를 벗고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 진력해왔다. 전후 정치 총결산이란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보통국가, 그리고 정상국가 되는 것이었다. 일본 자민당은 그런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된 노력을 해왔다.

만일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근본적으로 한일관계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일본은 별로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면 한국은 일본과 위상이 달라진다. 한국은 전작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비정상인 종속적인 국가지만, 일본은 정상적인 자주적인 국가가 된다. 자주적인 국가와 종속적인 국가 간에는 분명한 차이기 있는 것이다.

일본이 종속적인 국가에서 자주적인 국가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치인 덕분이다. 한국이 종속적인 국가에서 자족하고 만족하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인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과 한국정치인은 이렇듯 질적으로 다르다.

일본은 지도층들이 국가를 이끌어간다. 정치인들도 세습한다. 한때 한국은 일본보다 정치적으로 선진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국이 일본보다 정치적으로 선진적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일본은 신념에 가득찬 지도층이 국가를 이끌어간다. 여전히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정신적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인민들은 엘리트 정치인들을 따라간다.

한국은 신념에 가득한 인민들이 있지만, 정치지도자들은 오합지졸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가에만 관심이 있는 소인배에 불과하다.

일본의 인민들은 무력하다. 한 번도 혁명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분명한 신념과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정반대다.

한국의 인민은 강력하다. 혁명과 변혁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신념과 장래성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이용했다.

친미를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정치인들은 그 목적이 다르다. 일본 정치인들에 친미는 수단이고 한국정치인에게 친미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친미를 통해서 뭔가 얻어먹으려 하는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친미를 통해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려고 하고 한국정치인들은 친미를 통해 비자주적인 국가에 머물려고 한다. 일본이 친미를 주장하는 것과 한국이 친미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한국의 친미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서로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친미정치를 주장하기 때문에 아베와 같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아베와 윤석열은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념의 차이가 있다. 만일 아베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남북관계 개선과 적대관계 해소에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일본은 아베 죽음 이후 세계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평화헌법을 개헌한다면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올지 아직 알 수는 없다.

문제는 한국은 그런 일본의 변화에 아무런 문제 인식도 없고 준비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일본의 친미와 한국의 친미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는 무지한 지도층들만 있을 뿐이다.

여당이 무능하면 야당이라도 제대로 견제하여야 하는데 야당에 대한 기대는 난망이다. 야당 정치인들도 거의 다 시정잡배 수준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익에 비해 국가의 운명 정도는 사소하게 여기는 자들이다.

일본의 정상국가로의 회복에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정치인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혁명이 일본의 개헌에 대비한 가장 시급한 과업이다.

국민의 힘이나 더불어민주당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새롭게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여당이나 야당 정치인들 모두 하나같이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탐할 뿐이다.

앞으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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