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죽음으로 일본 극우 세력은 전쟁 국가로 치달을 것이다.

 

글: 김상수(감독, 작가, 화가)

 

피격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평소 혐한감정 드러내

서기 2022.07.08.선거 유세하다 전 자위대원에게 피격 사망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 꿈꾸다 끝내 피격으로 일생 마감

에이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아베 신조에 정신적 영향 크게 줘

서기 1997년에는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 성매매가 일상적이고

위안부 활동도

이런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망언

이번 선거 거리 유세에서는

"강제 징용이나 강제 성노예 그런 일은 없었다,

한국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또 망언

집권 내내 일제 침략과 만행 부정으로 일관, 우리 국민 분노 촉발해

 

▲ 전 일본총리대신, 아베신조가 서기2022. 07.08.  자민당 지원 유세중 전 해상자위대원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편집인 주).  자료: 문화방송 보도 화면 발췌. 
▲ 전 일본총리대신, 아베신조가 서기2022. 07.08.  자민당 지원 유세중 전 해상자위대원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편집인 주).  자료: 문화방송 보도 화면 발췌. 

"내가 한국인을 강제 추방시키겠다", "일하지 않는 외국인은 일본을 떠나라, 일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국인은 추방해야 한다"

최근 아베가 선거 거리 유세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떠든 말이다. 아베가 지칭하는 "일하지 않는 외국인"이란 생활 보호 수급을 받는 80세 이상 연로한 재일 한국인을 가리킨다. 아베가 총리 퇴임 이후부터 극우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번 참의원 유세 때는 그의 단골인 한국인 혐오 감정을 노골적으로 일본 대중들에게 부추겼다.

그런 아베 신조(安倍晋三, 1954년 ~2022년)가 오늘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가? 내일모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나라시(奈良市)에서 집권 자민당 선거유세 연설 중에 전 해상(해군)자위대 대원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 42)가 쏜 총 2발을 맞고 죽었다.

한발은 심장에 한발은 목에 겨누어졌다. '야마가미 테츠야'는 경찰조사에서 「죽이려고 생각해 노렸다」라고 말했다. 아베를 죽인 이유는 사실대로 밝혀질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사상적 동기였다면 당연히 사실대로 밝히지 않을 것이고 '정신적 질병으로 또는 이상 심리로 저격했다'라고 발표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해상 자위대 대원이었던 자를 정신이상자로 몰고가기에는 일본 정부도 고민스러울 것이다.

아베의 죽음은 그가 입버릇처럼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 "이름다운 나라 일본"으로 헌법 9조를 개헌하겠다는 필사적인 그의 이상과 꿈은 일단 깨졌다. 그러나 아베의 죽음이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우익의 전열을 한데 모아 절대다수 의석을 자민당 공명당 연합이 차지하고 합법 9조 개헌으로 곧장 향할 확률도 더 높아졌다.

아베는 2006년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였으나 이듬해 지병으로 사임한다. 이후 2012년 12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5년 3개월 만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재취임했다. 이후 2017년 10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9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 2018년 9월 20일에 있었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여 3선 연임에 성공, 2020년 8월까지 총리직을 맡으며 일본 역사상 최장 임기의 내각총리대신이었다.

아베는 한국과 무수한 악연(惡緣)을 남기고 죽었다.

오늘날 일본 국민 대중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을 혐오하는 혐한(嫌韓) 이념을 깊숙이 넓게 퍼트리고 그는 죽었다.

아베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국수주의적 역사관과 극우 일본 국가주의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는데, 그에게 정치관에 영향을 끼친 외조부가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다. 아베가 최장 총리가 되기 이전인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외종조부(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데, 부친은 1979년 한국에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과 절친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 康弘) 내각에서 1982년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다.

▲ 아베신조 전 일본총리대신이 피격돼 쓰러져 있다(편집인 주). 자료: 국민일보 발췌. 
▲ 아베신조 전 일본총리대신이 피격돼 쓰러져 있다(편집인 주). 자료: 국민일보 발췌. 

이렇듯 세습 정치 가문에서 성장한 그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밝힌 아베.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라는 별명이 있는 기시 노부스케,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를 점령했을 때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 정부에서 산업계를 지배하다가 1939년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 만주국「산업 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였다.

나중에 한국의 군사반란자 박정희가 만주국군관 장교로 인연이 되어 1961년 반란에 성공, 도쿄에서 기시를 만나게 된다. 박정희가 존경했다는 인물인 기시 노부스케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에서 내각의 상공 대신 및 군수성 차관으로 있었다.

일본 전쟁 패전 후 극동 국제 군사재판에서 도조 히데키와 같이 A급 전범 용의자로 3년 반 투옥 되던 중에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의 일본 점령 정책이 전범국 일본 권력 해체에서 다시금 일본 권력을 적극 사용하는 방향으로 틀면서 결국 기시는 기사회생, 1957년 총리가 된다.

이 기시의 영향을 받고 자란 아베는 핏속에 일본 국가주의 팽창주의 사고로 무장되어 일본의 총리로 최장기 집권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한국인을 깎아내리는 망언은 1997년 한 강연에서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 성매매가 일상적이고 위안부 활동도 이런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발언이 유명하다.

총리 시기 한국, 중국, 러시아 등과 끊임없는 영토 분쟁, 일본 재무장화 군사 대국으로의 일로 매진을 획책하던 그는 드디어 2016년 6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총리로 출석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눈에 띄지 않았다”라는 2007년 일본 각의 결정서를 언급하며 “그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아베는 일본군 성노예(위안부)는 군이나 관에 의한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고 부인한다. 일제의 위안부 동원이 민간 사업자 주도하에 이뤄진 자발적인 참여였다는 과거의 입장에서 달라지지 않았음을 말했다.

이는 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 공식 문서로 발표한 일본군 성노예 한국인 동원 일본군 강제성을 확인한 '고노 담화',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담화 (河野洋平 内閣官房長官 談話)를 뒤집어 엎는 '자기 역사 부정'으로 한일관계 파탄을 일으킨다.

아베는 또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일본 정부는 미국에 패전했다고 말하지 않는다)을 맞아 1995년 8월 15일,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 富市) 내각총리대신이 내각회의의 결정에 근거하여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까지 말로는 계승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또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 후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공동선언한 '김대중 오부치 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식민지배로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드린다"라는 일본 정부의 공식 선언도 역시 말로만 따르겠다고 했지, 아베의 행각은 이를 부정했다.

아베는 2015년 박근혜와 합의했다고 발표한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이번 합의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가)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는 철저한 사실 왜곡이고 거짓에 기초했으며 ‘자기 정부 공식 발표도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박근혜-아베 한일 합의 때 외무대신으로 합의 당사자였다.

당시 기시다는 해외 언론들이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로 표기하는 것과 관련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표현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한일 합의에서도 “이 문제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로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는 설명을 한다.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합의 이후 국내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박근혜는 “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 “최선의 결과”라고 주장해왔지만,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마저 부인하면서 한일 합의의 굴욕적인 결과가 드러난다.

박정희 딸 박근혜의 엉터리 합의는 일본의 외교 당국이 소녀상 철거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등을 요구했고, 아베 총리는 이번 위안부 문제 한국 정부와 합의가 “최종적·불가역적인” 것이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양국이 이번 타결 내용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실행해가야 한다”고 한국 정부를 몰아세웠다. 잘못된 한일 합의는 한국 정부에는 족쇄가 됐다. 도독이 매를 든다고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런 경우란 없다.

일본 정부는 박근혜와의 성노예 문제 합의를 외교적인 성과로 자평하면서 일본 국민에게 "한국과 한국인에게 언제까지 잘못을 말할 것인가?"라면서 “한국 식민지배가 나쁜 것이라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은 이제 버려야 한다”면서 기염을 토하고 일본 대중으로부터 인기는 급상승한다.

그러면서 아베는 "위안부 문제는 모두 끝이다. 더 사죄하지 않는다”며 “이렇게까지 한 이상 한국이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아베가 저지른 대한(對韓) 외교를 거부하고 한국의 대(對) 일본 외교를 새롭게 펼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원칙에 부합되는 외교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강제성노예 문제에서 일본 총리 아베와의 비밀 협상은 근본에서 틀렸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는 문 대통령의 대(對) 일본 외교는 정당했다. 이는 국가 자존과 정체성을 왜곡시키는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외교와 역사 정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윤석열 ‘친일본우익 검찰 정부’는 자칫 이 국가 외교 원칙을 파괴할 우려가 보여 크게 걱정스럽다.

일본 우익 극우에 기울어진 윤석열 무리의 대(對) 일본 외교는 박근혜 때 그르친 외교 협상과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할 거 같다.

1965년 일본군 장교 출신 군사반란 수괴 박정희의 부당한 한일협정, 2015년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성노예 비밀 협상으로 인한 불의(不義)한 반인륜 협상, 박정희 박근혜 이 부녀(父女)가 대(代)를 이어 저지른 대(對) 일본 협정 협상의 공통점은 국민을 속이고, 일제식민지 시기 자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이면(裏面) 합의에 특징이 있었다. 자국민을 속인 일본과의 협정 협상은 오늘과 내일의 족쇄가 되고 있다.

아베는 기시다 일본 총리의 상왕(上王)으로 한국 정부에 일방의 굴복과 투항을 요구했다. 윤석열은 민족반역자 손자인 정진석을 한일정책협의회 단장으로 일본으로 보내 아베를 '알현'하고 일본에 투항하는 식으로 외교 방식을 이끌고 있다.

윤석열이 임명한 외교부 장관 박진은 일본 정부에 얕잡아 보이는 행태로 몹시 서둔다는 인상이다. 마치 아베가 죽기 이전에 뭔가 일본에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미친 강박'으로 한일군사정보협정 '지소미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잘못된 말을 하기까지 했다.

일본 아베의 일방적인 무역 전쟁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에 제동을 걸었다. 아베가 말하는 "한국 정부는 국가 간 약속을 안 지킨다", "한국 정부는 신의가 없다"라고 혐한론을 유포시키는데, 그런 국가 그런 정부와 무슨 군사정보협정을 계속하겠다는가? 아베와 지금 총리 기시다의 공공연한 착란이다.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의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에 한국민 70% 이상이 찬성했다. 대다수 국민이 '비정상'이었기에 "정상화"하겠다는 망발을 윤석열 무리는 지금 하는 것인가?

만약 “정상화”하겠다면 일본 아베가 강제징용 문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계속해서 호도하고, 심지어는 “강제성이란 없었다”라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다가 오늘 죽기 직전 며칠 전까지도 거리 유세 연설에서 "강제 징용이나 강제 성노예 그런 일은 없었다. 한국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까지 나간 것이다.

아베가 2019년 7월 한국 경제에 타격을 가하겠다고 무역 전쟁을 일으켜 수출 규제 3년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혐한 외교’ 중단을 공개 표명해야 함에도 아베는 덜컥 그만 오늘 죽었다.

윤석열 무리가 아무리 친일본 우익 극우 정부라고 해도 국가 역사 원칙과 국가 정의 원칙을 외면하고, 반인륜에 동조하는 협상을 일본과 밀실로 벌인다면 윤석열의 국힘당 정권은 <한국인>들로부터 즉각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베는 오늘 죽었다. 일본을 다시 군사 대국화시켜 망하는 길로 달려나가겠다는 아베는 오늘 죽었다. 그러나 아베는 죽었지만, 일본 정부의 우익 극우 세력은 가일층 세력이 신장하고, 여전히 한국과 한국인 혐오를 퍼트리고 있다.

일본 경제를 살린다고 아베노믹스를 펼쳤지만, 일본 경제까지 아베는 망쳐놓고 오늘 오전 11시 30분, 전 해상자위대 대원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 아베신조 일본 총리대신으로 있을 때인 서기2013년 만주국의 생체실험 부대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전투기에 탑승하고 있다(편집인 주).
▲ 아베신조 일본 총리대신으로 있을 때인 서기2013년 만주국의 생체실험 부대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전투기에 탑승하고 있다(편집인 주).

사진 설명-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013년 5월 12일 미야기(宮城)현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동체에 ‘731’이라고 적힌 자위대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73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하얼빈에 주둔했던 생체실험 세균전 부대인 일본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미국·중국 매체도 이 사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조종석 바깥 동체에 영문으로 ‘리더 S.아베(Leader S. ABE)’라고 적혀 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5월 5일에는 일본의 재무장화를 촉진하겠다고 헌법 96조 개정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등번호 96번인 유니폼을 입고 도쿄돔 야구장에 나오기도 했다.

일제 식민 침략 시기 만주 731부대는 일본 제국 육군 소속 관동군 예하 비밀 생물학전 연구로 악랄한 생체실험으로 유명하다.

아베가 왜? 731이란 숫자가 표시된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총리로 사진을 찍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 세균전 부대'를 연상시키는 자위대 항공기를 타고 사진을 찍자, 중국 외교부는 "또 한 번의 역사 왜곡"이라고 항의하였다.

미국의 정보지 넬슨 리포트는 "아베 총리의 사진은 독일 총리가 나치 친위대 유니폼을 입은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미 다트머스대의 제니퍼 린드 교수는 "이 사진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의 눈을 불타는 꼬챙이로 찔러버리는 것"이라며, "지독하게 도발적"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일본 731부대는 패전 전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주둔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 등을 상대로 해부와 냉동 등 각종 생체실험을 벌인 세균전 부대다.

아베 총리는 탑승 전 준비된 비행기 8대 '730', '805', '804' 등의 식별 번호 중에서 731기를 골라 탔다. 나중에 문제가 되자. 우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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