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빈부격차가 프랑스 혁명 당시보다 더 깊다.

글: 한설(시사평론가, 예비역 준장)

 

한국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외국 노동자보다 더 빈곤

외노자 본격 이주 촉진 이민청 설치는 한국 붕괴 촉진

기업들의 싼 임금 외노자 선호는 돈에 눈먼 이기주의

빈부격차로 프랑스 혁명 발발, 극우 인종주의 발호 가능

하층 노동자, 외노자와 역차별, 북한 주민보다 더 못살아

이대로 가면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아도 스스로 붕괴

▲  한 기업에서 노동자를 해고하여 노동자들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고 있다(편집인 주).
▲ 한 기업에서 노동자를 해고하여 노동자들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는 언제나 약자다(편집인 주).

 

< 이민청과 극우 인종주의, 그리고 한국의 붕괴 >

앞으로 우리나라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은 하층 노동자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빈부격차가 프랑스 혁명 당시보다 심하다는 것은 이제는 지금 같은 한국의 발전모델이 유용하지 않다는 의미다. 인구가 격감하고 있는 것도 한국적 모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의 부자와 자본가 경영인들은 싼 임금을 찾는다. 그래서 외국 노동자들을 데려오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반영한 것이 이민청이다.

눌리다가 터지는 것이 혁명이다. 난 한국에서 혁명이 발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재벌과 관변학자들과 언론,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치인들은 혁명과 같은 정치적 격변을 오히려 재촉하는 것 같다. 지금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북한 주민의 삶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깊어지면 한국체제의 정당성은 무너진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인종주의 정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그 사회의 불안정을 반영한 결과다. 사회주의는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혁명적 가치를 창출한 프랑스에서도 극우 인종주의가 발호했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르펭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갔다. 프랑스 혁명의 좌우명인 자유, 평등, 박애에서 박애란 다른 국가에 대한 우애라는 협의의 뜻을 넘어 다른 인종에 대한 관용과 사랑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 혁명과 사회주의의 발상지에서 프랑스에서 극구인종주의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혁명 프랑스에서 극우인 종주의 정당이 발호할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한계 상황에 봉착하면서 이민 노동자들과 생존 투쟁을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르펭의 딸 르펭이 당을 주도하면서 인종주의적 측면은 완화되었고 주로 노동자들의 생활권 향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런데도 그 출발은 극구인종주의였다.

한국은 극우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위한 조건이 너무 잘 갖춰져 있다.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은 이미 해외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은 그 경쟁에서 많이 밀려나고 있다. 지금보다 상황이 조금만 더 악화하면 극우 인종주의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수밖에 없다. 일단 광풍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간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인구가 부족하다고 해외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이민청 설립 운운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한동훈이 차기 지도자로 촉망받기 때문이다. 그런 지도자감이 되는 사람의 인식이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고 만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한국에서 극우 인종주의가 발생하게 되면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교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중국에 대한 의존이 매우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활로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제삼지대가 될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국가들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한국에서 극우 인종주의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당연히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중국 의존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개척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개별 기업과 경영자들은 싼 임금이 당장에 좋을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거시적으로 보면 그러다가 대외교역 여건이 급격하게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동남아 및 중앙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극우 인종주의가 발호하게 되면 그들 국가 국민이 한국 상품을 사줄 리 만무다. 당장 한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싼 임금으로 상품을 생산해도 무의미하다.

이민청을 도입해서 싼 임금으로 상품을 만들겠다는 1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금 이민청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한국경제가 질적 향상과 생산성 증대가 아니라 오로지 싼 임금에만 기댄다면 미래는 없다.

한국의 진보들도 해외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수용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해외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수용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한국의 하층 노동자들과 해외 이주노동자들의 갈등이 한계선을 넘었다고 본다. 싼 임금 생각하다가 훨씬 비싼 사회적 갈등을 대가로 내게 될 것이다.

나는 민노총이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 노조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하청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진다. 하청기업은 한국 노동자들로는 채산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들을 쓰려고 한다.

이미 대기업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으로 편입되었다. 민노총은 기득권 노동자가 아니라 하청기업과 계약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하나의 조직에서 기득권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모두 대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둘 다 지키려면 둘 다 잃는다. 항상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운동은 약자를 위한 것이지 기득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기업 노동자들과 임직원들도 자신들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한국은 무너진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아도 무너진다. 스스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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