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다는 끝이 좋아야 세상은 그를 기린다.

글: 임재해(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제자의 죽음을 죽음의 굿판이라고 능멸한 김지하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 투쟁한 공적 사라져

경기도 지원받은 생명문화운동도 의미 퇴색

2012년 대통령 선거 시 박근혜 지지로 변절 굳힘

▲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지하가 서기 2012년 12월 1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지하의 원주 자택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사진: 오마이뉴스(사진공동취재단) 발췌
▲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지하가 서기 2012년 12월 1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지하의 원주 자택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사진: 오마이뉴스(사진공동취재단) 발췌

 

<끝도 아름다웠다면! >

-김지하의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였던 모양이다. 나들이 중에 뉴스를 보고 그야말로 오랜만에 그의 이름 김지하가 떠올랐다. 그의 시가 있었고 그의 투쟁이 있어서 타는 목마름을 달래던 시절을 생각하면, 높이 기릴 만한 행적의 회상은 밤새워 이야기해도 한참 모자랄 것이다.

개인적으로 늘 존경하는 관계로 만났지만, 제자의 죽음 앞에서 굿판을 은유한 그의 조선일보 칼럼은 나 스스로 반론의 칼럼(영균이의 焚身을 헛되게 말하지 말라)을 써서 언론에 투고할 만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사적인 관계는 접어두고 좀 냉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그의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

민주화 운동의 우상이었던 김지하가 다리 뻗고 잠잔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오적(五賊)’ 이후 공안으로부터 줄곧 쫓기는 처지에 놓여 있다가, 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조선일보 칼럼 이후 이번에는 거꾸로 운동 진영과도 불화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또 다른 이유로 잠자리가 불편했을 것이다.

문민정부에 접어들어 2003년부터 세계생명문화포럼을 개최한 이후 몇 년 동안 마음껏 생명철학의 뜻을 펼쳤다. 경기도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아름다운 모심, 힘찬 살림’을 표방하며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생명문화’를 기치로 국제학술행사를 4년 거듭했다. 이때 김지하는 생명운동의 대부로 칭송받았다. 포럼 대표로서 국내 발표자들로부터 면전에서 칭송받는 것은 사실상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포럼으로 그의 생명 사상과 존재감이 생명 운동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계적 명성의 현장운동가와 이론가들이 생명 운동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이는 구심점 구실을 감당했다.

하지만 자력적으로 추진된 소박 하되 알찬 포럼이 아니라, 경기도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타력적 포럼이자 지나치게 거대한 규모의 포럼인 까닭에 지속하기 어려웠다. 구조적으로 굵고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명분의 독점화가 빚어낸 지나친 우상화도 단명을 자초하는 데 한몫했다.

죽음의 굿판 칼럼 이후 다시 드리워진 정치적 그림자는 2012년 대선후보로 나선 박근혜 지지 표명으로 꼭지점을 찍었다. 뒤에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가 가열차게 일어나던 시점에 와서 비로소 박근혜 지지를 잘못된 판단이라며 뉘우쳤지만, 이미 우상화의 명성은 빛이 바랜 뒤였다. 이 시기에는 보수세력들조차 박근혜 탄핵에 가담하였으니까.

‘타는 목마름으로’ 빛났던 이름 김지하의 명성은 잘못된 권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빛을 잃었다. 끝이 아름다워야 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처음의 지조와 다른 방향으로 끝이 꺾인 것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변절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하려고 해도 몇 가지 선입견이 장애물 구실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깃발을 내려놓고 영면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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