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침략을 부른 일본서기로 가야사를 날조하는 식민사학은 학문이 아니다.

 

부산 복천동 박물관 전시장에 버젓이 일본서기 지명 새겨

이는 일본 고대역사에 가야사를 팔아먹는 것으로 매국행위

유네스코에 가야지명을 일본서기로 등재하는 것과 맞 닿아

 

▲ 서기 2022.05.06. 현재 부산 복천동 박물관에서 가야관련 전시를 하는데 합천이 과거 일본서기에 나오는  다라 라고 표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차유리 회원
▲ 서기 2022.05.06. 현재 부산 복천동 박물관에서 가야관련 전시를 하는데 합천이 과거 일본서기에 나오는 다라 라고 표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차유리 회원

부산 동래구 복천동 박물관에서 ‘가야유적 발굴의 최전선’이라는 주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발굴한 가야 유물과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서기 2022.05.03.에서 07.24. 까지다.

박물관 측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발굴한 가야 유물을 주제별로 전시하되 이번에 발굴한 가야 무덤으로, 부산 고촌리 무덤, 함안 말이산 75호 무덤, 고령 연조리 무덤, 창녕 퇴촌리 토기 가마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30호 무덤이라고 설명하였다. 창녕 퇴촌리 토기 가마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가야토기 가마터라고 하였다. 또 고령 연조리 무덤 떼는 대가야의 의례 시설이라고 규정하였다. 함안 말이산 75호 무덤에서는 청자가 나왔다고 전하였다.

문제는 이런 우수한 유물을 모두 식민사관으로 덧칠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안 가야리 유적을 토성이라고 하면서 왕궁지로 추정하였다. 그러면서 이 지역을 아라가야로 단정하고 “조사 성과를 보았을 때, 아라가야 왕성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것 볼 수 있다.”라고 써 놨다.

▲ 부산 복천동 박물관이 가야 유물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자료: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 부산 복천동 박물관이 가야 유물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자료: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본지에서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지만 발굴단은 경상도 일대와 전라도에서 발견되는 신라, 가야 등의 유물과 유적은 거의 서기 5~6세기를 넘어가지 않는다. 과학적인 측정 방법인 탄소동위원소 측정법 등 이 있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하였다.

무조건 5~6세기로 박아 놓고 있다. 얼마든지 발굴 무덤에서 탄소 성분을 채취할 수 있음에도 눈 감고 있다.

이는 임나일본부설과 관계있다는 것이 민족사학계의 중론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서기 4세기 말부터 6세기 중엽까지 약 2백 년간 우리나라 가야 남부지방을 야마토 왜 가 임나일본부라는 식민 통치기관을 설치하여 식민지배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에 5~6세기 이전에 가야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국이었다면 당시 아직도 철기를 만들지 못하던 야마토 왜 가 가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가야 유물 유적이 왕국 규모를 나타내는데 최대한 유물 유적의 연대를 낮춰 잡아야 이전에는 국가가 아닌 촌락 수준이었으므로 임나일본부가 통치할 수 있다.

위 가야 무덤 떼를 아무런 근거 없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것이라고 하면 이전에 야마토 왜 가 아직 국가 규모도 아닌 가야를 비롯하여 남부지역을 식민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 백제문화권의 청자를 중국제로 단정하여 소개하고 있는 복천동 박물관 전시회. 자료: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 백제문화권의 청자를 중국제로 단정하여 소개하고 있는 복천동 박물관 전시회. 자료: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이러한 노림수가 부산 복천동 박물관이 소개한 가야 지역명에서 보인다. 임나일본부설은 황당한 이야기를 기록한 <일본서기>에 터를 잡고 있다.

<일본서기> 신공 황후 조와 다른 부분 모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야마토 왜의 통치를 받는 속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야=임나로 규정하고 임나일본부가 가야를 지배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천동 박물관이 그려놓은 가야 일대의 지명 중에 경남 합천지역을 <일본서기>에 나오는 ‘다라국’이라고 써놨다. 이는 이 지역이 고대에 일본 야마토 왜의 임나일본부가 식민지배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전시회는 함안 말이산 75 무덤에서 철기는 물론이고 말 갑옷, 말투구, 재갈, 발걸이, 안장, 기꽂이, 말띠 꾸미개가 대량으로 나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청자도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자는 대부분 백제권역에서 나왔다며 강서성의 홍주요 중국제라고 못 박았다. 연대도 중국이 서기 420년에서 474년으로 절대연대로 부여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청자는 당시 백제의 22담로를 나라 밖에서 운용하고 있었고 백제 강역이 <구당서>에서 남으로는 오월에 이르렀다고 한 것 등을 볼 때 백제 문화권의 작품일 가능성도 짙다.

그런데도 대륙 백제를 부정하는 식민사학, 식민고고학계는 이를 무시하고 중국제라고 하며 교류의 산물이라고 식민사관으로 덧칠해 놓고 있다.

▲ 가야 유물과 유적은 거의 5~6세기에 한정시켜놓고 있다. 아무런 과학적 측정법을 사용하지 않은 그냥 추정일 뿐이다.
▲ 가야 유물과 유적은 거의 5~6세기에 한정시켜놓고 있다. 아무런 과학적 측정법을 사용하지 않은 그냥 추정일 뿐이다. 자료: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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