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살아야 대한민국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글: 이범주(자유기고가)

 

우리 집안은 본관이 전주 이씨로 왕가의 후손

오래전에 벼슬 끊겼고 집안은 몰락하고 가난 대물림

할아버지가 자갈 논 평생 개간하여 ‘옥장골 논’ 소유

아버지가 ‘옥장골 논’ 다시 헐값으로 팔아 다시 가난

하층민들에게 농토는 생명이고 대를 이어주는 모든 것

현대인처럼 갖고 있으면 언젠가 떼돈 버는 수단 아냐

농촌 홀대하는 정부, 이러다간 대한민국도 사라질 것

 

▲ 김홍도의 조선시대 농촌의 타작도. 농촌은 전통적으로 나라를 지탱해주는 먹을 것을 생산하는 중요한 터전이었다.
▲ 김홍도의 조선시대 농촌의 타작도. 농촌은 전통적으로 나라를 지탱해주는 먹을 것을 생산하는 중요한 터전이었다.

 

땅과 노동

내 주위 친구들, 비록 그들 지금 생활은 팍팍해도 아버지나 할아버지 좀 더 직계로 증조까지 올라가면 적어도 한 분 정도는 큰 부자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그 富로 인해 배다른 자식이 많았거나 노름하는 분이 계셨고 그로 인해 그 많은 재산 남김없이 해 드셔서 지금의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게 거의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내 姓의 본관은 전주, 아버지의 굳은 믿음과 전해지는 족보에 의하면 그야말로 왕가의 후손 되겠다. 그런데도 내가 아는 한 고조까지 올라가 봐도 부자였다는 분이 단 한 분 없다.

아버지는 그 이 전 할아버지 대에서 벼슬이 끊겼고 그 이후로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내가 아는 우리 직계 집안은 그야말로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삶을 대대로 이어 살아왔는데 설상가상의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분이 증조할아버지셨다고 했다. 증조할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의 와중에도 투전을 즐기셨다.

결정적으로 몰락한 가세를 회복하고 쌓인 빚을 갚으려 할아버지는 만주로 가셔서 품을 파셨다.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간신히 빚을 갚으셨다는데 그리 힘들게 사셨으니만큼 할아버지의 땅에 대한 집념과 집착, 땅을 갖지 못한 데 대한 통한이 크셨으리라 짐작한다.

어머니는 앉았다 하면 할아버지의 ‘옥장골 논’을 수 없이 말씀하신다. 하천이 범람하면 물에 쓸려나가는, 자갈과 돌로 가득한 하천부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 땅을 개간하면 당신의 것으로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는 오로지 당신의 몸으로만 그걸 개간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 할아버지의 가장 막역한 벗, 소를 가지셨던 ‘원생원’ 할아버지와 함께 기어코 자갈 반, 돌 반이었던 그 땅을 개간해서 논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옥장골 논’이이었다.

말아웃 지기, 즉 한 마지기 반 정도의 농토였는데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고 정성을 기울여 농사를 지으셨던지 소출도 많이 났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눈물겹게, 집념으로 개간하신 그 땅을 아버지는 단 한 번의 사로고 시원하게 말아 드셨는데 그게 안타까워서일까? 어머니는 틈만 하면 아마 삼백 번은 했음 직한 그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시는 것이다.

옛날에 농사짓는 분들에게 땅은 어떤 의미였을까. 땅이 없으면 땅 가진 사람들한테 땅을 빌려 소작을 해야 했고 소출의 70%를 지주에게 뜯기기도 했다.

그 나머지로 가족의 생계를 도모해야 했었으니 땅 가지지 못한 그 설움과 한이 얼마나 컸겠는가. 땅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재산이자 삶의 터전이었을 터이다.

그 땅에 심은 작물로 이듬해 일 년을 먹으며 생명을 잇고 또 그걸 팔아 일상에 필요한 일용품을 사서 썼을 것이다. 땅은 그분들에게 일터, 생계수단, 사회 경제적 지위의 결정적 요소였다. 말하자면 삶과 생명 그 자체였을 것이다.

지금 사회는 땅을, 사람 먹을 곡식과 채소를 생산해 내는, 사람의 생명 이어주는 지극히 소중한 가치를 지닌 어떤 것으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갖고 있으면 언젠가 개발 대상지로 선정되어 어느 날 갑자기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 언젠가는 값이 올라 상당 정도의 매매차익을 벌어들일 수 있게 하는 것, 기껏해야 전원주택 지어 편안하고 쾌적한 노후 삶 살게 해주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한 이야기인가? 아닌 것 같다. 70~80이 넘도록 아직도 땅 지키면서 농사짓는 소수의 농민들을 국가가 대하는 태도와 국가가 농업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이런 식의 냉소적인 평가도 그리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기야 농민만 그리 대하는가. 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니 이 나라는 성실한 노동으로 나라를 지탱해 온 사람들에게 참으로 일관되게 야박하다.

풍운아로 일관하신 아버지한테 유감 많은 늙은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버지가 헐값에 넘겨버린 ‘옥장골 논’을 말씀하시고 어머니보다 덜 늙은 아들은 그 얘기 들으며 골방에서 땅과 노동의 의미를 생각한다.

비록 골방에서의 사유지만 이런 식으로 땅과 농업과 농민들, 더 나아가 일하는 인민들을 이리 야박하게 대하다간, 이 나라의 미래가 실로 암울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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