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돈이 강의한 식민사학은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 이념이었다.

 

단군 조선을 부정하는 노태돈, 있는 사료는 유령 취급

드러난 유물도 단군 조선 부정하는 식민사관으로 덧칠

하가점 하층문화는 단군조선의 유력증거임에도 무시해

북한 고성리 대령 강변 성벽 만리장성으로 보려 애써

일제가 조작한 유적 유물로 북한을 한나라 식민지화

식민사학은 학문이 아닌 반국익 집단, 국보법 적용해야

 

▲ 서기2022.04.14. 부산 문화공간 봄이 주최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노태돈 씨가 서기전 2333년에 개국한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조선총독부식민사관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서기2022.04.14. 부산 문화공간 봄이 주최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노태돈 씨가 서기전 2333년에 개국한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조선총독부식민사관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이 완화되어는 2022년 4월 14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고조선 왕험성의 위치와 그 변동’ 강연이 있었다. 식민사학의 태두인 이병도를 이은 저명한 역사학자 노태돈이 강의를 맡았다.

그는 고조선에 대해서는 사료가 매우 적음을 강조하며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그에 따라 고조선의 성립 시기는 부정확하다고 강조하였다.

관자나 산해경 등의 중국 서적에 고조선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서적의 편찬 시기도 불명확하고 B.C. 7세기로 추정되는 것도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고조선 중심지에 대하여는 재요령성설, 이동설, 재평양설 등을 언급하였는데, 재요령성설에 대하여는 홍산문화와 연관지어 설명하였다. 홍산지역에 1500년대 하가점상층문화라는 청동기 문화가 일어나는데, 이 문화가 고조선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대목에서 일부러 하가점하층문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유적 측정 연대가 2410±140BC로 측정됨에 따라 실제 연대가 더 올라갔기 때문이다. 고의로 고조선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을 감추려고 한 것으로 보였다.

노태돈의 주장에 따르면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나오던 공병식 비파형 동검이나 비수식 비파형 동검이 점점 한반도 쪽으로 전파되면서 단경식 비파형 동검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단경식 비파형 동검은 대릉하 유역에서는 나오지 않는 식으로 모습이 바뀌며 이것이 남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 노태돈씨는 중국의 만리장성의 동단이 중국 모든 사료에 하북성의 갈석산에서 일어난다는 기록을 모조리 무시하고 저 그림처럼 제멋대로 연장성 등을 그려 놓고 만리장성을 북한까지 끌어 들이려는 욕심을 드러냈다.
▲ 노태돈씨는 중국의 만리장성의 동단이 중국 모든 사료에 하북성의 갈석산에서 일어난다는 기록을 모조리 무시하고 저 그림처럼 제멋대로 연장성 등을 그려 놓고 만리장성을 북한까지 끌어 들이려는 욕심을 드러냈다.

한반도 이남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이러한 비파형 동검도 세형동검으로 모습이 바뀌며 한반도의 남단인 부여 송국리 및 창원 다호리 지역에서도 골고루 출토되는 형태가 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유물의 변경과 동시에 고인돌 무덤 분포와 미송리형 토기 분포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는데, 고인돌은 요하 아래 지방에서만 출토되며, 미송리형 토기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고조선 요령성설에서 제기하고 있는 고조선 지도도 설명하였다. 이는 모두 만리장성 끝이 산해관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현재 있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지어진 것이며, 위쪽으로 진나라와 연나라 때의 장성도 있고, 이것을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한다고 힘 주어 말하였다.

1960낸대 북한에서 고조선 중심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에 이러한 점을 정찬영이라는 학자가 주장하였지만 재요령성설 중심학자들이 무시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북한 평양의 단군릉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평양의 단군릉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동국여지승람 작성 이후이며, 단군과 동국여지승람 사이에는 3500년 이상의 간극이 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또한 북한에서 실시한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단군유해의 5011년 설은 믿을 수 없으며, 그 이유는 전자상자성공명법은 만년 단위의 연대를 사용할 때는 의미가 있지만 천년단위의 연대는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이날 노태돈씨는 북한에 있는 정체불명의 흔적만 남은 성을 만리장성이 아닌가 조사해 봐야 된다며 한국 역사는 모조리 중국사라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드러내 놓고 두둔하였다.
▲ 이날 노태돈씨는 북한에 있는 정체불명의 흔적만 남은 성을 만리장성이 아닌가 조사해 봐야 된다며 한국 역사는 모조리 중국사라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드러내 놓고 두둔하였다.

영변 고성리에 있는 대령강 장성도 설명하였다. 그는 북한학계에서 이 성이 만리장성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나올 까봐 장성발표를 중단했다고 하였으며, 이런 발굴작업에 대해 중국학자들이 복한학자들과 함께 발굴에 참여하여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어디인지 연구해 보아야 한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만리장성이 평안도에 아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단언하며 중국 동북공정의 만리장성 북한 평안도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쯤 되면 어느나라 사람인지 국적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그는 자신의 반도식민사관에 따라 고조선 재평양설을 강조하였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식민사학의 경전인 수경주와 낙랑출토 호구부, 점제현 신사비 및 낙랑고분 흉노 출토 유물을 예로 들고 있었다. 수경주는 고조선의 패수와 고구려의 패수를 같은 것으로 보고 이 두 가지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였다.

그가 고조선 평양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낙랑 출토 호구부가 있는데 식민사학계가 이것을 금과옥조로 숭배하고 있다. 이 호구부는 문성재 박사 저서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에서 가짜임을 증명하였다.

호구부에 나오는 현별은 당시 중국에서 산하 현을 표시할 때 속현(屬縣) 등의 용어를 쓰지 ‘현별’(縣別)이라고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별(別)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쓰던 일본식 한자라는 것이다. 이는 왜정 때 식민사학자들이 평양지역을 낙랑군으로 꾸미기 위해 묻어 두었다는 해석이 올바르다.

노태돈이 제시한 고조선 북한설의 근거인 점제현 신사비도 마찬가지다. 이미 가짜로 판명 난 바 있다. 2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누구도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일제가 우리 땅을 점령하고 나서 일제식민사학자가 발견하였다.

점제현 신사비는 이미니시 류가 찾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비석은 성분이 화강암인데 북한 고고학계는 현지에는 화강암이 없다고 밝혔다. 또 점제현 신사비 바닥에 시멘트가 묻어있는 것 또한 당시 현지주민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 이날 노태돈씨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원활하게 통치하고자 조작한 점제현 신사비를 버젓이 내놓으며 북한지역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임을 보여주려 애썼다. 사진은 점제현 신사비.
▲ 이날 노태돈씨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원활하게 통치하고자 조작한 점제현 신사비를 버젓이 내놓으며 북한지역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임을 보여주려 애썼다. 사진은 점제현 신사비.

그는 낙랑고분에서 나왔다는 금제 허리띠 잠금쇠의 성격에 대해서는 소설을 써나갔다. 평양의 고분이 낙랑고분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하에 이 잠금쇠가 기원전 3~2세기 것으로 못 박고 흉노 지역과 동맹을 맺은 증거라는 것이다.

당시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현재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뻗어있던 흉노세력과 연합하여 중국세력을 견제하였고, 외교정책의 실패로 한나라와 전면전을 벌이면서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재요령성설과 재평양설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는 모습으로 중심지 이동설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는데, 그 중심지는 해성, 개주 일대로 될 수도 있다고 발표하였다.

▲ 위 자료는 북한이 공개한 낙랑군 호구부. 북한은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 북한 평양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아니라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노태돈씨를 비롯한 남한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추종자들은 이것을 낙랑군 재평양설의 전범으로 떠 받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제가 조작한 것으로 문성재, 김종서 등 여러 학자들이 밝혀냈다.
▲ 위 자료는 북한이 공개한 낙랑군 호구부. 북한은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 북한 평양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아니라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노태돈씨를 비롯한 남한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추종자들은 이것을 낙랑군 재평양설의 전범으로 떠 받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제가 조작한 것으로 문성재, 김종서 등 여러 학자들이 밝혀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식민사학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들이 등장했다. 첫 번째 질문인 고조선 건국연도에 관하여는 “그것은 신화 상의 숫자일 뿐”이라며, 요임금 시대와 동시대라는 그런 말은 신화 상의 말이며, 요임금 시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어지는 “그럼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 신화 상의 역사가 실제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며 동북공정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 번째로 식민사학을 근거로 중국이 북한 붕괴 시 철령 이북의 땅을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는 “철령 이북은 중공과의 영토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며, 주권국가의 영토를 침범하면 단호하게 전쟁뿐이며, 역사적인 어떤 근거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며 현재 중국이 진행 중인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에 대한 위험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노태돈은 왜정시기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근거를 비판 없이 수용하며, 다른 학자들이 그 근거에 대한 비판된 내용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대령강 유역의 일부 서역을 만리장성 일부로 보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국가존립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을 하였다.

이는 자신이 동북공정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의 동북공정, 하상주단대공정, 문화공정의 위험성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중공 첩자에 준하는 활동이며, 미래 북한영토의 온전한 확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라도 저지되어야 한다.

한국의 주류사학계에서 만리장성이 한반도 국내로 들어와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면 이는 중공국에 영토를 내어주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국가보안법에 근거하여 처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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