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보다는 돈에 집착하는 한국 불교 조계종은 각성해야 한다.

글: 송필경(치과 의사)

 

베트남 불교 승려는 소신공양으로 의를 위해 싸워

꽝득 승려 불길에 타들어 가도 15분 동안 요지부동

‘압제자에게 경종’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소신공양

며칠 전 열반한 틱낫한,

“우리가 도를 따르는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지,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한국 조계종 절 이익에만 군침,

권력 지향하는 권승(權僧)에 놀아나는 천박한 작태

 

▲ 틱 꽝득(Thich Quang Duc) 승려가 서기 1963년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의 압제에 항거하여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을 하였다(편집인 주).
▲ 틱 꽝득(Thich Quang Duc) 승려가 서기 1963년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의 압제에 항거하여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을 하였다(편집인 주).

 

지난 20세기에 한 개인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성(聖)스럽게 만든 인물이 있었다. 1955년 베트남은 어떤 정당한 이유도 없이 남북으로 분단 당했다.

1963년 5월 남베트남 정부의 혹독한 독재에 불교도들이 항거하자 군이 장갑차로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불교도를 비롯한 전 인민이 더욱 가열 차게 맞서자 미국은 군사개입 할 채비를 차렸다.

이에 한 노승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나, 비구 꽝득은 관태음사 주지입니다. 우리나라 불교가 고난의 때임을 보고,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불교가 멸망해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이 한 몸 불살라 불교를 지키는 공덕을 행할 수 있기를 기꺼이 청합니다.…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안락하기를 기도합니다.

눈을 감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감히 응오 딘 지엠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박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국민을 위해 종교 평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그리하여 영구적으로 나라를 지키도록 말입니다.

나는 승려와 불교도들에게 진심으로 청합니다. 불법을 지키기 위해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나무아비타불

1963년 6월 4일

비구 꽝득 올림"

꽝득 스님(틱 꽝 득; 釋廣德 Thich Quang Duc; 1897〜1963)은 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남베트남 정권의 독재와 미국의 개입에 항의하는 분신을 감행했다.

사이공(현 호찌민시) 시내 한 네거리에 앉아 후배 스님이 온몸을 적시게 부은 휘발유 불길에 휩싸이면서 15분 동안 미동도 없었다. 숯덩이가 된 후에 천천히 하늘을 향해 쓰려졌다.

스님은 분신의 목적을 단 한 줄로 적었다.

"우리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려고 스스로 이 몸을 불사른다."

이 모습의 동영상이 언론을 타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가 경악했다.

서양인들은 분신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 행위로 볼 수밖에 없었다. 불교의 분신이 의미하는 커다란 사랑과 희생적인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신공양은 불교의 행위 가운데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꽝득 스님의 희생은 대승불교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만이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의미를 갖는다.

▲ 틱낫한. 그는 베트남 출신의 승려로 불교를 현대에 맞게 적용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지난 22일 열반에 들었다(편집인 주)
▲ 틱낫한. 그는 베트남 출신의 승려로 불교를 현대에 맞게 적용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지난 22일 열반에 들었다(편집인 주)

 

꽝득 스님을 스승으로 존경한 낫한 스님(틱 녓 하인 釋一行Thich Nhat Hanh; 1926〜2022)은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에게 편지를 썼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이해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저항 행위도 아닙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세계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목적입니다.』

불교의 분신 즉 소신공양(燒身供養 burn one's body for sacrifice)은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낫한 스님은 서구 세계에 그 의미를 전달했다.

꽝득 스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시대를 성스럽게 했으며,

낫한 스님은 꽝득 스님 희생의 고귀한 의미를 전 세계에 알렸다.

7년 뒤 남한에서는 노동자 전태일의 성스러운 분신이 있었으며,

영혼의 동료 조영래는 전태일 희생의 온전한 의미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낫한 스님은 남베트남 정부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반전 평화운동에 매진했다. 그 후 프랑스에 망명해 여러 불교 명상 마을을 세우고 100여 권의 저서를 출판하여 불교 교육자로서 종파를 떠나 세계적인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조계종에서는 박애와 자비의 모습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승려대회’를 지난 21일 개최했다.

다음날인 22일 낫한 스님은 95세로 입적(열반)하셨다.

낫한 스님의 많은 말씀 중 하나다.

"우리가 도를 따르는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지,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 한국 조계종이 절 이익에만 군침을 흘리고, 권력을 지향하는 권승(權僧)에 놀아나는 천박한 작태에 꽝득 스님과 낫한 스님의 모습이 겹치며 내 낯이 몹시 뜨거워진다.

*베트남어 틱(釋)은 스님이란 뜻이다. 그러니 틱낫한(釋一行) 스님이라 하기 보다 낫한 스님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낫한(一行)도 베트남 원어에 가까운 발음은 ‘녓 하인’이다.

바른 표현은 틱낫한 스님이 아니라 ‘녓 하인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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