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무속을 천시하면서 절박할 때는 찾는 위선을 벗어야 한다.

 

글: 신평(변호사)

 

대통령 선거철에 등장하는 무당 굿, 금기 위반 범죄자 취급

무속은 이 땅에 역사가 시작된 이래 민족의 뿌리 문화 기능

샤머니즘으로 통하는 무속은 세계인류의 보편적 기층 정서

역대 대통령 후보들 대부분 절박함 속 무속신앙에 호소해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도 ‘점쟁이’가 성업 중

유독 한국에서만 천시하고 미신 취급, 사대주의 근성의 발로

 

▲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페루 리마에서는 페루 무당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중 누가 뽑힐 것인지 점을 치는 굿판을 벌였다. 위 사진은 미국 대통령으로 뽑힌 조 바이든에게 무당들이 축복을 주고 있는 장면이다. 자료출처: https://www.dailystar.co.uk/news/world-news/shamans-predict-coronavirus-pandemic-disappear-23246210
▲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페루 리마에서는 페루 무당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중 누가 뽑힐 것인지 점을 치는 굿판을 벌였다. 위 사진은 미국 대통령으로 뽑힌 조 바이든에게 무당들이 축복을 주고 있는 장면이다. 자료출처: https://www.dailystar.co.uk/news/world-news/shamans-predict-coronavirus-pandemic-disappear-23246210

 

[무속신앙과 정치인]

지난 5일 국민의 힘 1차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그와 역술인과의 관계를 퍼런 날이 선 어조로 강하게 추궁하였다.

그 며칠 전 윤 후보의 손바닥에 쓰인 ‘왕’(王)자 글씨가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이와 관련된 문제로 왁자지껄하다. 유 후보는 그 질문을 통해 윤 후보가 비과학적인 무속신앙에 경도된 인물로서 국가지도자로 부적합하다는 세차게 호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래로 무속신앙이 민중의 기층신앙으로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모든 종교가 아편에 불과하다는 가혹한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도 ‘점쟁이’가 성업 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 아득한 고대에 중앙아시아의 바이칼호에서 시작하여 중국 북부로 하여 한반도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생존의 근거를 마련했던 종족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한 인종에 속한다.

훈족, 거란족, 부여족, 몽골족, 예맥족 등이 띄엄띄엄 중국의 사서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과 우리 사이에는 공통된 인종적 특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세상에서 한국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는 일본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약 1만 년 전 분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총·균·쇠’의 저자 재럿 다이어몬드(Jared Diamond)가 현대언어학의 이론을 구사하여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최근세에 사라진 만주어는 조선인이 만주에 가서 2주일 정도 지나면 말이 자연스레 통했다고 하니 거의 방언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북방민족들이 갖는 하나의 공통점은, 신(神)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대행자와 중재자로 자리 잡는 샤먼(Shaman)이 집단의 중심이 되는 원시종교인 샤머니즘을 신봉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속신앙이 이에 해당하는데, 지금 몽골이나 북아시아 일대에 남아있는 ‘텡그리’(우리의 ‘단군’과 같은 어원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인다.

우리가 삼국시대, 신라 시대의 불교국가를 거쳐도 아직까지 어느 절에나 ‘산신각’이 남아있다. 조선조 500년의 완강한 유교 집중국가에서도 귀한 자식들 혼인할 때 사주단자를 반드시 보내었으며, 또 풍수지리는 왕가를 포함하여 묫자리 선택에 필수였다. 이처럼 불교나 유교에 포섭될 수 없는 광범한 기층민중의 신앙이 살아남았다.

대한민국이 되어서도 정치인들이 부상하면 지관(地官)들이 먼저 그 선조의 묘들을 방문하여 진단하는 것이 관례화되었고, 몇 분은 지관의 조언에 따라 이장(移葬)의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홍준표 후보의 눈썹 문신도 아마 어느 관상가의 조언에 따른 것일 거다. 그리고 유승민 후보의 집에서도 지난번 대선이나 이번의 경선과정에서 속 타는 마음으로 소위 사주보는 이나 점쟁이를 찾아갔으리라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1980년에 전두환 일당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소위 ‘서울의 봄’이 잠깐 찾아왔다. 그것은 우리 세대에게는 눈물겹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해 1월에 나는 며칠간에 걸쳐 절친한 친구인 이석현 형과 함께 낮에는 막걸리를 퍼마시고, 밤에는 미아리 점집을 훑었다. 미래의 창백한 비전에 비틀거리는 청춘들이었다.

당시 김대중 선생이 귀국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석현 형이 다니던 현대건설을 때려치우고 김대중 선생을 보필하러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을까 하고 물으니, 어떤 점집에서는 그게 좋다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여하튼 그는 동교동으로 들어갔다. 나보고도 같이 가자고 했으나, 연로한 부모님의 가냘픈 기대를 배반하고 고시 공부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두 상반된 점괘가 어쩌면 다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 후 5.18이 터져 석현 형이 동빙고동에 끌려가서 발가벗긴 채 매달려 비참하게 두들겨 맞았으니 이를 보면 동교동에 가지 않은 것이 나았다.

그러나 그래도 이를 인연으로 하여 국회의원을 5선이나 하며 국가의 중요 공직을 맡아왔으니 그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주명리학이라는 것을 정식으로 몇 달간 대구 영남일보 문화강좌에서 배우기도 했다. 다들 잘 들어맞는다고 하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적어도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나타나는 사람의 성격이나 적성은 어김없이 맞다는 말이 많다. 다른 이유가 아니고, 세상에 더없이 소중한 내 아이들이 자라나며 곤경에 처할 때 내가 이 지식으로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심정으로 배웠다.

한 번은 아는 문인들과 함께 영천 지방에 갔다가 어느 길거리에서 점을 보는 이를 만났다. 관상도 본다고 했다. 청년 위관 시절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나 관상을 보고, 그가 장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다고 하였다.

나를 보고는 이렇게 한가로이 나다닐 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조상묘가 좋지 않아 그 나쁜 기가 미치는 것 같다고 하였으나 무시했다. 그런데 얼마 후 미국에 가 있는데, 그가 어떻게 내가 사는 미국 집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왔다. 부재중이라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은 폐암으로 이제 몇 달 못사는데, 내 부모 묘를 꼭 보고 그곳이 흉지임을 확인한 뒤 이장을 시켜 내가 주어진 소임을 다하도록 자신의 마지막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간곡히 말하였다. 하지만 역시 무시하고 그에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 탓에 이렇게 촌에서 농사나 지으며 한가롭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 팔자가 좋은 팔자이다.

지금은 가톨릭 신앙에 조금씩 더 들어가고 있다. 매일 절대 하루도 빠질 수 없다는 듯이 엄격한 태도로 묵주기도를 바친다.

예민한 성격이라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필리피 서간 4장 13절의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I have the strength for everything through him, who empowers me.)라는 구절을 영어로 반복한다.

이렇게 더는 사주명리학에 기대지 않는다. 점쟁이를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우월의식을 갖지는 않는다. 미신이라고 깎아내리지 않는다. 현대과학으로 규명되는 현실은 극히 일부분이다. 양자물리학을 생각해보라.

3차원의 우리가 4차원을 생각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11차원까지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중우주(multiverse)에서 우리는 여러 곳의 우주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도 한다.

무속인을 만나고 사주명리상의 해설을 듣는 이들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장구한 전통을 생각해보라. 어찌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고? 그럼 도대체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하나?

현대과학을 반드시 절대적인 진리로 따라야 한다면, 현대과학이 규명하지 못하는 방대한 영역은 어떻게 하나? 공인된 현대종교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면, 이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민주사회에서 해서는 안 되는 강요가 아닌가?

그리고 과연 우리 국민 중 누가 풍수지리, 사주명리, 관상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그래서 무속신앙과 접한다는 이유로 퍼붓는 거친 비난은 우스운 일이고, 역시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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