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전쟁의 중심, 대종교, 제대로 조명해야... 대종교의 업적 정당한 대우 받아야...

기사수정: 서기2016.09.27. 10:45

 

 

홍암 나철 서거 100주년 추모 학술대회 열리다.

 

“순수한 것을 도라고 하고 첫째가 정성이다. 일을 과장되게 꾸미지 말며 밖을 장식하지 말라. 도란 고요함이요, 정성이란 검소함이니 스스로 속이지 않을 때 통한다.”

 

왜구난동기 독립전쟁은 크게 3갈래로 전개되었다. 무장투쟁, 의열투쟁, 역사전쟁이다. 무장투쟁은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된 군관들이 중심이 되어 왜구난동기 만주에서 승리한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의열투쟁은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이 주도하여 윤봉길의사가 홍고우 공원에서 왜구 침략자, 장성 등을 폭살시킨 것과 왜국 섬나라 동경에서 일왕에 폭탄을 던진 이봉창의사의 의거가 대표사례다. 또한 역사전쟁, 즉 사상투쟁은 신단실기, 신단민사를 쓴 무원 김교헌과 한국통사, 독립운동지혈사 등을 펴낸 백암 박은식, 조선상고사를 쓴 단재 신채호, 조선사연구를 쓴 위당 정인보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러한 독립전쟁의 뿌리에는 대종교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원 김교헌은 소중화 조선말 대학자로서 대종교 2대 교주였다.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을 주도한 백포 서일은 대종교의 3대 교주다.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는 대종교 교인이었다. 이와 같이 왜구난동기 우리민족의 독립전쟁의 중심에는 대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독립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나라가 망한 것은 중화사대주의 세계관에 따라 5백년동안 우리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가지고 역사를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들도 이미 유교적 질서 속에서 나고 자라란 터라 이 틀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물속에 사는 고기가 자기가 물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소중화 조선말 의병전쟁이 여러 번 있었다. 을미사변, 을사늑약, 군대해산, 경술국치 등 굵직한 비극의 역사가 진행될 때 마다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의병을 일으킨 내용을 보면 상당수가 생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세우자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 중화가 없어진지 오랜 이래 그 중화를 대신하여 이성계조선이 소중화를 이제까지 지켜왔는데 이제 왜구에게 나라가 망함을 당하여 소중화를 다시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생민과 민족, 나라를 생각해서 의병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이 일으킨 의병투쟁이 대표적이다.

▲ 홍암 나철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추념식 및 학술대회를 마치고 대종교 인사들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강고한 유교질서 속에서도 선각자들이 우리 정신을 회복하여 이를 바탕으로 독립전쟁에 나선 것이다. 중화사대주의 세계관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사람 중의 하나가 홍암 나철이다. 홍암은 2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받을 정도로 유교적 질서 속에 물들어 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 것에 눈을 뜨는 개벽이 일어난다. 우리 것은 한인-한웅-단군으로 이어지는 나라와 세상 그리고 정신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대표되는 우리의 원형세계다. 홍암 나철이 우리 것에 눈을 뜨게 해주는 일화가 전해진다. 서기1905.12.30. 밤에 서대문역 앞길에서 백두산의 단군교에서 온 두암 백전이 <삼일신고>와 <신사기>를 홍암에게 전해 준 것이다. 이후 홍암은 단군교에 입교하여 국권회복투쟁을 하였고 경술국치 이후 왜구의 탄압을 피하고자 단군교를 대종교로 바꾸어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서기1916.8.15. 무원 김교헌에게 교통을 전하고 순명조천殉命朝天한다.

서기2016.9.10. 대종교는 홍암 나철 서거 100주기를 맞이하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학술대회를 가졌다. 독립운동단체, 민족정기확립관련단체, 민족종교관련 단체 등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3.1운동기념관설립 추진위원회 이종찬위원장,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도천수 공동대표, 순국선열유족회 김시명회장 등이 추념사와 시국진단 그리고 독립운동기념사업성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홍암 나철 서거 100주기 추모 학술대회는 나철의 독립운동이 아닌 그의 사상과 종교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독립전쟁은 이를 가능케 한 원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동안 외부에 드러난 투쟁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는 홍암의 사상을 탐구함으로써 독립투쟁의 정신을 바로 알자는 취지로 열린 것이다.

학술대회 주제 발표는 박광수 원광대학교 교수, 최윤수 대종교 삼일원장, 최경주 대종교 교화사, 김정철 대종교 종학연구원,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순으로 이어졌다. 발제자들은 홍암의 수도과정과 수도를 통해서 홍암이 얻은 체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한 홍암의 사상체계를 소개하였다. 홍암이 득도하고 제천의례를 진행하였는데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전해 오던 우리 고유의 방식에 따라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팔관재, 구서, 삼법 등을 실천한 것에서 확인된다. 특히 목욕재계하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지금도 무당이 중심이 되어 행하는 각종 마을굿, 고을굿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낭당에 금줄을 치고 굿날을 받고 준비를 하는 기간에 관련 당사자들은 일체 고기를 먹지 않고 성교를 하지 않으며 날마다 찬물로 목욕을 한다.

홍암이 제천의례를 이와 같이 한다는 것은 그가 우리의 고유전통문화를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그가 전라남도 보성의 출신이라는 점에서 유교를 버렸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겠는가는 짐작이 간다. 전라도 지역은 평야지대가 많아 태곳적부터 물산이 풍요롭다. 이에 따라 하늘을 섬기고 땅에 보답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잔치풍습이 풍성하게 이어져 왔다. 대보름날에는 잔치의 절정을 이룬다. 마을 소단위 구석 구석까지 퍼져 있는 풍성한 풍물굿 장단은 우리고유문화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홍암이 유교를 버렸을 때 우리 고유의 것이 보인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장단은 저절로 도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신명나게 만들어져 있다.

▲ 황해도 구월산으로 가는 길에 사리원에 들러 기념촬영을 하였다. 아래 왼쪽에서 두번 째가 홍암 나철.

홍암을 독립투쟁으로 이끈 사상적 뿌리는 백두산에서 온 백전신사가 전해준 <삼일신고>와 <신사기>다. 특히 <삼일신고>는 홍암으로 하여금 유교를 완전히 버리고 우리 정신으로 돌아서게 한 경전으로 보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삼일신고>가 끝없이 언급되었다. <삼일신고>에 터잡은 홍암의 수행과정과 그 결과물을 보면 홍암은 다른 종교의 득도한 인물들과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홍암은 ‘도는 고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순수하다’고 하였다. 고요하다, 순수하다 이런 체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인들이 내놓은 것과 같다. 예수도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하였다. 이는 그가 체험한 바를 표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언행을 하면서 상相을 남기지 말라고 한다. 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은 사념의 먼지가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곧 각성된 상태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조계종에서는 ‘할’을 얘기한다. 벼락같은 할을 내지르는 순간 어지럽게 날뛰던 사념이 비록 순간적이지만 끊어져 버린다. 할을 하는 자도 듣는 자도 ‘지금여기’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 자리는 고요하고 순수하다.

홍암 나철의 사상과 정신은 이와 같이 불교와 기독교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득도의 정점은 <삼일신고>에 가 닿는다. <삼일신고>는 백두산의 백봉신사가 백전을 통해서 전해준 것이다. <삼일신고>는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전하는 최치원이 말했다는 ‘풍류도’의 내용과 통한다. <삼일신고>는 하늘, 한알님, 한알궁, 우주론, 진리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격신, 비인격신, 이 둘을 뛰어 넘고 있는 하늘, 그리고 인간완성의 길을 과학적 논리로 치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말하는 풍류도는 유교, 도교, 불교를 다 품고 있다. 결국 대종교는 오늘날 풍류도를 재현한 종교로 요약할 수 있다.

▲ 홍암 나철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학술발제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광수 원광대학교 교수, 최윤수 대종교 삼일원장, 최경주 대종교 교화사, 김정철 대종교 종학연구원, 김상일 박사.

한편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박사)는 ‘인류는 멸종할 것인가, 홍익인간 할 것인가?’를 가지고 발표하였다. 앞서 발표한 발제자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김박사는 인류가 멸종할 위기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먼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사건을 인류멸종의 한 징조로 보았다. 이 사건은 국가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중동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밀려오자 ‘난민을 왜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하냐’며 이를 거부한 것이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이며 이것이 국가이기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처럼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이는 결국 인간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박사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예언을 끌어와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김박사는 서양의 여성관을 언급하였다. 서양은 처음에는 여성을 마녀로 만들었고 다음에는 아름다움을 찬양하였고 지금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김 박사에 의하면 이에 대한 반동으로 서양에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고 이 풍토가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여성의 권리가 비대해졌다. 그 결과 여성들이 편리성만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결혼과 출산기피로 나타났다. 결국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부터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최근의 초등학생 및 대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통계자료를 제시하였다. 결국 차별하지 않는 대등을 추구하는 홍익인간사상이 이 인구멸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는 홍암 나철의 사상과 같다고 하였다.

이날 학술대회가 끝나고 대종교 측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한편 대종교측은 홍합 나철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9월15일까지 이어 진다. 10월 3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문화제 등이 예정되어 있다. 한편 대종교 측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독립투쟁의 결과인데 이 독립투쟁의 구심점이 대종교라고 하였다. 이어 대종교가 오늘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당국이 각성하여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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