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권력의 통제받지 않는 사법부를 혁파해야 한다.

글: 김상수(작가, 감독, 화가)

 

사법살인 저지른 박정희의 사산아 전두환도 사법부 짓밟아

김재규 사형 반대 소수의견 낸 대법원판사 고문, 사표 받아

강제로 사형판결 내리게 한 뒤 김재규 나흘 만에 처형 돼

180석의 민주당 양승태 사법 농단 100명 판사 탄핵 안 해

 

▲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한 뒤 체포, 구금된 상태로 군사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한 뒤 체포, 구금된 상태로 군사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군사반란 독재자 박정희는 판사들을 동원해 공공연한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박정희 사산아(死産兒) 전두환은 10.26 박정희 처형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재판을 서둘렀다.

김재규 부장을 "내란 목적 박정희 살해"로 몰고 가는 전두환 측 주장에 반대해 소수의견으로 “내란 목적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는 피고인 김재규 부장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다"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이 판사들은 민문기 대법원판사, 임항준 대법원판사, 서윤홍 대법원판사. 김윤행 대법원판사, 정태원 대법원판사 양병호 대법원판사 등이었다.

대법원 심리를 전후해 전두환이 지휘하는 계엄사, 보안사 등 군부 측에서 대법원 측에 노골적인 압력을 가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던 양병호 판사는 2명의 기관원에게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다음 날 서일교 법원행정처장은 한 군인이 가져왔다는 흰 봉투를 이영섭 대법원장 앞에 내놓았다.

양 판사의 자필로 된 사표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이걸 원장님께서 수리해주셔야 양 판사가 나올 수 있답니다.” 대법원장은 양 판사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양 판사가 대법원장실에 나타났다.

그는 처음에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더니, 마시던 커피가 흘러내려 목덜미와 가슴을 적시는 것도 모른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이 풀려 있었다. (<법조 50년야사> 법률신문사 2002, <역사 속의 사법부> 사법발전재단 2009)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굽히지 않은 양 판사는 8월 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밀폐된 공간에서 고문을 받고 사표를 강요당했다.

‘당신이 옷을 벗어야 일이 된다’고 해서 백지에 사표를 썼다. (1996년 7월8일, ‘12·12 및 5·18사건’ 20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진술)

김재규 처형을 반대했던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원판사들은 법원을 떠나야 했다. "김재규 처형" 다수의견’을 냈던 판사들은 출세의 길을 달렸다.

다수의견을 주장한 대법원판사는 이영섭, 주재황,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나길조, 김영철, 유태흥 등 8인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나흘 만에 김재규 부장과 그를 따르던 부하들은 일제히 사형이 집행됐다. 대법원판사 유태흥, 김용철, 이일규 등 3인은 연이어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사회 민주주의 시민들은 법원의 판결 독립과 사법 정의 실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주동한 박근혜 측과 밀실 재판 담합 거래도 명징하게 처벌할 것과 100여 명의 사법 농단 판사의 국회 탄핵도 요구했다.

하지만 180석 집권 민주당은 딱 1명 판사만 탄핵했다. 민주당 당 대표 이낙연이 사법 개혁을 방해했다.

2021년 오늘 법원은 박정희나 전두환의 군사정권이 판사를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고 강박해서 재판을 부당하게 이끌었던 시대를 민주주의 시민들은 분연코 일어나 끝냈다.

그러나 오늘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판사가 스스로 사회 흉기(凶器)가 됐다. 판사가 사법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이 사태를 민주주의 시민들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