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의 통역정치가 친일파 세상을 만들었다.

 

 

1945.8.9. 남쪽 38선 이남으로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

남쪽 조선인들은 미국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크게 환영

미군은 남쪽의 일본군 무장해제와 신탁통치가 점령목적

남쪽은 미군이 직접통치, 북쪽은 소련군이 배후 간접통치

 

▲ 서기1945.09.08. 서울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태평양방면 제24군 사령관 하지 중장 등이 조선총독, 아베노부유키와 항복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 서기1945.09.08. 서울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태평양방면 제24군 사령관 하지 중장 등이 조선총독, 아베노부유키와 항복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미군점령과 친일파 중용

지난주 미국 점령군과 친일파에 관해 대권 주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자 권민철 CBS 노컷뉴스 워싱턴 특파원이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해왔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미국 외교문서를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공부하고 보도해온 기자더군요.

남한 학자/전문가들은 미군의 남한 ‘점령’과 관련해 매카써 (Douglas MacArthur)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 (the Commander-in-Chief, United States Army Forces, Pacific)의 1945년 9월 포고문을 많이 인용해왔습니다. “나의 군대는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occupy the territory of Korea south of 38 degrees)”거나 “나는 38도 이남의 조선에 대한 군사통제를 확립한다 (establish military control over Korea south of 38 degrees)” 등의 위압적 구절들이죠.

권민철 특파원은 이에 앞서 미국 ‘국무부-전쟁부-해군부 조정위원회 (the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가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에게 보내는 미군점령 조선지역의 민사행정에 관한 기본 초기 지시 (Basic Initial Directive to the Commander in Chief, U.S. Army Forces, Pacific, for the Administration of Civil Affairs in Those Areas of Korea Occupied by U.S. Forces)”라는 제목의 문서를 저에게 보내주더군요. 참고로 당시 전쟁부와 해군부는 1947년 지금의 국방부로 통합됐습니다. 10여 쪽의 문서엔 ‘군사점령 (military occupation)’과 ‘점령군 (occupying forces, occupational forces)’이란 말이 수없이 등장하고 일본인들과 친일파를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이 애기했습니다.

“1945년 9월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 논쟁하는 건 부질없다. 둘 다 된다. 미군은 자신을 스스로 점령군이라 규정했고, 한인들은 그들을 고맙다며 해방군으로 생각했다. 미군이 점령군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한국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선거에 악용하기 위해 억지부리며 왜곡하는 것 아니겠는가.

미군이 들어온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본군 무장해제와 한반도 신탁통치 준비. 미군은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까지 3년간 직접 통치했다. 미군정 (US military government)이다. 소련군은 조선인 지도자들을 앞세워 뒤에서 지원하는 형식의 후견제 (tutelage)를 취했지만, 미군은 한국인 지도자들 배제하고 자신들이 앞에서 직접 통치한 것이다. 미국이 1943년부터 장기간의 한반도 신탁통치 (trusteeship)를 주장했지만 소련은 소극적으로 응하고 후견제를 제안하며 1945년 12월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 신탁통치를 결정한 과정과 비슷하다.

1945년 9월 갑자기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들이 조선의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화 등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점령과 통치를 위해 두 종류 사람들이 필요했다. 첫째, 영어 좀 아는 사람. 둘째, 행정경험 있는 사람. 일제하에서 영어 좀 하고 행정경험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친일파 아니었을까. ‘통역정치’가 실시되고 친일파가 처벌되거나 척결되기는커녕 중용됐던 이유다. 역사 공부하기 어려우면 쉽고 재미있는 10쪽 안팎의 단편소설이라도 읽어보면 된다. ‘통역정치’에 대해서는 채만식이 1946년 발표한 <미스터방>, 친일파 고용 및 승진에 대해서는 채만식의 1946년 <맹순사>, 전명선의 1947년 <방아쇠> 등.”

공부하는 기자 권민철 특파원이 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멋진 기사를 썼더군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미군 남한 점령 비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58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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