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20.5.31 일 20:45
상단여백
HOME 시대별 주제 상고사
갈석산, 갈석산아, 조선(단군)의 대륙강역을 말해다오(2)중국의 고지도와 문헌기록은 압도적으로 대륙의 단군조선을 말한다.
김봉렬 | 승인 2016.09.21 11:43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나라 식민통치기관, 낙랑군,

그속현인 수성현이 갈석산에 있다는데...

결코 현재 북한 평양이 아닌데도, 강단주류식민사학계는

일제가 심어놓은 마수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림 4> 『기주협우갈석도』를 현대지도에 옮긴 지도

 

▲ <그림 5> 『기주협우갈석도』

갈석산의 위치가 역수에서 바다로 들어온 후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산이 오른쪽에 있다고 하였다. 역수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를 흐르는 거마하이다. 갈석산은 거마하의 하류 서쪽에 위치하므로 오늘날의 백석산이 분명하다. 참고로 『기주협우갈석도』는 오른쪽이 북쪽, 왼쪽이 남쪽으로 그려져 있으므로 왼쪽으로 90도 회전하여 보아야 <그림 4>의 필자가 현대지도에 옮긴 것과 같아진다. 
 
이와 같이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에 그 위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중국 5대 명산 중의 북악인 항산과 동북쪽으로 접하여 있으므로 그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고지도인 <그림 5>의 『기주협우갈석도』를 통해서도 그 위치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갈석산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다’는 사실인데, 오늘날 현대과학은 시대별 황하 하류의 흐름과 해수면의 높이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의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산’의 위치를 과학적으로도 찾을 수 있다. 
 
<그림 1>에서 보았듯이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원전 602년 이전의 고대 황하는 그 하류의 흐름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로 흘렀다. 당시에는 해수면의 높이도 지금보다 높아서 보정시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던 갈석산’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은 현 중국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는 태행산맥이 시작되는 산이라고 하여 ‘태행의 머리(太行之首)’로 불리고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10개에 이르고, 해발 2,000M 이상인 봉우리도 5개나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를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으로 부른다. 산에 하얀 돌이 많으며, 배열된 것이 병풍과 같다. 
 
산 자체가 회백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백옥, 초백옥이 많이 나서 백석산으로 불리고 있다. 오래전부터 백석산은 세계지질공원, 국가지질공원, 국가삼림공원, 국가A4급 유람풍경구 등의 명성을 쌓아왔다. 백석산은 황산, 장가계, 내몽골의 초원, 용경협의 협곡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중국 비경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4. 갈석산은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하였다
 
지금까지 『서경』「우공」에 나오는 본래의 갈석산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동쪽 지맥인 낭아산)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과 고조선의 중심부인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하였던 갈석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에서『서경』「우공」에서 살펴본 ‘도이는 가죽옷을 입고,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황하로 들어온다’는 구절(사료 B-1)은 『사기』「하본기」에도 나오는데, 이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에 대하여 『사기색은』은 아래와 같이 주석하였다(사료 B-2).

“『지리지』는 말하기를 ‘갈석산은 북평군 여성현 서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또 『수경』은 말하기를 ‘요서 임유현 남쪽 물속에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갈석산은 두 개 인듯하다.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구절의 갈석은 당연히 북평군의 갈석이다.”

『사기색은』의 저자 사마정은 당나라(618~907) 시대의 사람이다. 사마정은 갈석산을 두 개로 보고 있는데, 이 주석으로부터 갈석산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비롯되었다.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마정이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구절의 갈석은 당연히 북평군의 갈석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과 북평군 여성현 서남쪽에 있는 갈석산은 동일한 산이다. 그런데 갈석산이 두 개라고 하였으므로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는 갈석산은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과 동일한 산인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는 갈석산과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이 동일한 산이 되려면, 백석산 주변에 수성현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였는지 여부와 그곳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D-1 “수성현은 옛날의 무수현이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遂城古武遂也. 秦築長城之所起.  『通典』卷一百七十八, 州郡八, 古冀州 上, 易州

D-2 “광신군 치소는 수성현으로 전국시기 무수현의 땅이다. 진秦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라 하여 수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조(송나라)가 군을 세웠다. 동쪽으로 20리에 안숙군이 있고, 서쪽으로 10리에 장성이 있다. 남쪽으로 15리에 안숙군이 있고, 서남쪽으로 약 90리에 북평군이 있으며, 서쪽으로 70리에 북역주가 있다.”
廣信軍, 治遂城縣, 戰國時武遂縣地. 秦築長城所起, 因名遂城. 本朝建軍. 東至安肅軍二十里, 西至長城一十里,南至安肅軍一十五里,西南至北平軍約九十里,西至北易州七十里. 『武經總要』卷十六 上, 邊防, 定州路


다행스럽게도 백석산 동편에는 수성遂城이라는 지명과 만리장성의 유지가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통전』은 이곳 수성遂城이 옛날의 무수현武遂縣으로 진나라 만리장성이 일어난 곳이라고 하였다(사료 D-1). 뿐만 아니라 중국 송나라에서 편찬된 사서인 『무경총요』에는 이곳 수성현이 전국시기 무수현의 땅으로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수성遂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였다(사료 D-2).
 
전국 시기 무수현武遂縣의 땅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라는 것은 학계의 이론이 없다. 그러므로 사료 D-1과 D-2의 기록을 통하여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 주변에는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였으며,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에는 장성의 유지도 지금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로써 『태강지리지』에서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고 기록한 갈석산이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과 동일한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강지리지』에서 나오는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고조선을 평정하고 그 중심부에 설치한 한나라 낙랑군과 동일한 곳이다. 그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는 갈석산을 찾음으로써, 한민족 상고사의 최대 쟁점이라 할 수 있는 한사군의 위치와 고조선의 중심지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고조선의 중심부에는 갈석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산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아름답고 웅장한 백석산이었다.

이제 사료 B-3에서 『사기색은』이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에 대하여 주석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사기색은』은 갈석산을 두 개로 보았는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북평군 여성현 서남쪽에 위치한 갈석산’과 ‘낙랑군 수성현에 위치한 갈석산’은 동일한 산으로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이다. <그림 1>의 ‘갈석산 1’이다.


그러면 자연히 『수경』이 말한 ‘요서 임유현 남쪽 물속에 있다’는 갈석산은 본래의 갈석산과는 다른 산이다. 이 갈석산은 바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렸다고 하는 상상속의 산이다. <그림 1>의 ‘갈석산 2’로 다른 갈석산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착오 갈석산’이다.<다음호 계속>

글쓴이 : 김 봉 렬『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김봉렬  mukto@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조선사(주) | 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로7길 17, 네스빌 609호  |  대표전자우편: mukto@naver.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홍
발행인 : 나한엽  |  편집인 : 오종홍  |   등록번호 : 서울 아03803  |  등록일자 : 서기2015.06.22.
Copyright © 2020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