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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석산아, 갈석산아, 대륙조선(단군)을 말해다오(1).현재 진황도시의 갈석산은 지명이동에 따른 것에 불과...
김봉렬 | 승인 2016.09.19 09:31

 

중화패권주의와 일제식민사관은 현재의 입장에서 천 수백년전의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고 있어...

지금 나라땅이 넓고 국력이 커졌다고,

마치 그때도 그런 것인양 지금에 맞춰 왜곡, 날조하고 있다...

 

 

낙랑군 재하북성설의 10가지 핵심 근거(다섯 번째)

5. 고조선의 갈석산은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이다(제2회)


   3. 고조선의 갈석산은 하북성 백석산이다. 
 
갈석산에 대한 모든 논의의 핵심은 아래 사료 B-1의 『서경』에 나오는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있었다’는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을 찾는 일이다. 이 본래의 갈석산을 알고 나면 나머지 ‘착오 갈석산’과 ‘가짜 갈석산’들은 저절로 알게 되어있다.

B-1“도이는 가죽옷을 입고,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황하로 들어온다.” 島夷皮服, 夾右碣石,入于河. 『書經』夏書, 禹貢第十‧十一章

B-2 “『사기집해』: 공안국은 말하기를 ‘갈석은 해변가의 산이다’ 하였다. 서광은 말하기를 ‘해海는 하河로도 쓰여 있다’고 하였다.
『사기색은』 :『지리지』는 말하기를 ‘갈석산은 북평군 여성현 서남쪽에 있다’ 하였다.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하였다. 또 『수경』은 말하기를 ‘요서 임유현 남쪽 물속에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갈석산은 두 개인 듯하다.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온다’는 구절의 갈석은 당연히 북평군의 갈석이다.”
集解孔安國曰:「碣石,海畔之山也.」 徐廣曰:「海,一作『河』.」 索隱地理志云「碣石山在北平驪城縣西南」. 太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又水經云「在遼西臨渝縣南水中」.蓋碣石山有二,此云「夾右碣石入于海」,當是北平之碣石. 『史記』卷二, 夏本紀第二

B-3 “견산에서 물을 인도하여 기산을 거쳐 형산에 이르며, 황하를 넘어 호구와 뇌수로부터 태악에 이르며, 저주와 석성으로부터 왕옥에 이르며, 태행과 항산으로부터 갈석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게 하였다.” 導岍及岐于荊山, 逾于河 ; 壺口雷首至于太岳 ; 底柱析城至于王屋 ; 太行恒山至于碣石, 入于海. 『書經』夏書, 禹貢第八十四章

B-4 “『사기집해』 : 공안국이 말하기를 ‘이 두 산은 멀리 이어져 동북쪽으로 갈석산에 접하여 창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사기색은』 : 태행산은 하내 산양현 서북쪽에 있다. 상산은 항산으로 상산군 상곡양현 서북쪽에 있다.” 集解孔安國曰:「此二山連延,東北接碣石,而入于滄海」. 索隱太行山在河內山陽縣西北. 常山,恆山是也,在常山郡上曲陽縣西. 『史記』卷二, 夏本紀第二

B-5 “안사고가 말하였기를 ‘태행산은 하내 산양현의 서북쪽에 있다. 항산은 상곡양현 서북쪽에 있다. 두 산이 멀리 이어져 동북쪽으로 갈석산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師古曰:「太行山在河內山陽西北. 恆山在上曲陽西北. 言二山連延, 東北接碣石而入于海.                『漢書』卷二十八 上,  地理志第八 上

그러면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관건인데 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공갈석’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라는 그 시․공간의 좌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과학은 시대별 황하 하류의 흐름과 해수면의 높이를 모두 알고 있으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본래의 갈석산이 기록된 『서경』은 유학의 주요 경전이므로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의 자세한 연구가 있었다. 이들 기록을 통해서도 본래의 갈석산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서경』에는 사료 B-1외에도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또 다른 구절이 나오는데 사료 B-3이다.

“견산에서 물을 인도하여 기산을 거치고 형산에 이르며, 황하를 넘어 호구와 뇌수로부터 태악에 이르며, 저주와 석성으로부터 왕옥에 이르며, 태행과 항산으로부터 갈석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게 하였다.” 『서경』하서, 우공 제84장
 
위의 내용은 하나라(기원전 2070?~기원전 1600?) 우임금이 산맥을 따라 황하를 치수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현 중국 섬서성에 위치한 견산에서 시작하여 현 중국 하북성에 위치한 태행산과 항산을 거쳐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서기 1209년 중국 남송 시대에 제작된 고지도인 <그림 3>의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서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 <그림 3>『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

 

『서경』에 기록된 사료 B-1, B-3의 내용은 『사기』「하본기」와 『한서』「지리지」에도 각각 실려 있는데, 태행산과 항산 및 갈석산에 대하여 사료 B-2, B-4, B-5과 같은 자세한 주석이 붙어있다. 이 주석들을 통하여 본래의 갈석산인 ‘우공갈석’의 위치를 찾아보자. 
 
사료 B-4과 사료 B-5에 의하면 ‘두 산(태행산과 항산)이 멀리 이어져 동북쪽으로 갈석산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항산의 동북쪽에 갈석산이 접하여 있으므로 항산의 위치를 찾으면 갈석산의 위치는 저절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항산은 예로부터 중국 5악 중의 하나인 북악으로 너무나 유명한 산이다.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정주시 곡양현에 위치한 대무산(大茂山, 일명 신선산, 해발1,898M)이다. 
 
갈석산은 이 대무산과 동북쪽으로 접하고 있으므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북악을 현 중국 산서성 혼원현에 위치한 항산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명나라 만력 14년(1586)에 항산의 명칭이 대무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그림 4> 참조).

▲ <그림 4> 계현(연나라 수도), 백석산(갈석산), 대무산, 항산의 위치

‘우공갈석’은 전국시대 말기 연나라의 수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료 C-1에서 『한서』와 안사고의 주석에 의하면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였던 계현薊縣은 발해와 갈석산 사이에 위치하였다. <그림 4>에서 연나라 수도인 계현과 당시의 발해 해안선을 참고하면 갈석산이 백석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사료 C-2에서 청나라 건륭(1735~1796) 연간에 편찬된『흠정일하구문고』는 『보춘추후어』를 인용하여 전국시대 연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연 소왕이 갈석산 앞에 황금대를 세웠다고 하였다. 연 소왕의 황금대는 현 하북성 보정시 역현을 흐르는 북역수北易水 남쪽에 위치하였으므로, 갈석산이 백석산(또는 동쪽 지맥인 낭아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C-1 “계薊는 남쪽으로 제나라‧조나라와 통한다. 발해와 갈석 사이의 고을이다.”
“안사고가 말하기를 ‘계현은 연나라의 수도이다. 발勃은 발해이다. 갈碣은 갈석이다’ 하였다.”
薊, 南通齊趙, 勃碣之間一都會也. 師古曰:「薊縣, 燕之所都也. 勃, 勃海也. 碣, 碣石也.」 『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C-2 “『보춘추후어』: 연 소왕이 말하였다. ‘어찌하면 어진 선비를 얻어서 제나라에 원수를 갚을 수 있겠는가?’ 곽외가 말하기를 ‘왕께서 갈석산 앞에 누대를 세우고, 저를 높여 스승으로 삼으시면 반드시 천하의 어진 선비들이 스스로 찾아올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누대를 지어 금옥을 쌓아두고, 황금대라 불렀다.” 補春秋後語 : 燕昭王曰, 安得賢士以報齊讐, 郭隗曰, 王能築臺于碣石山前, 尊隗為師, 天下賢士必自至也. 王如其言, 作臺以金玊崇之, 號黄金臺.   『欽定日下舊聞考』卷八

C-3 “기주의 북쪽에서 공물을 운반하려면, 고수․역수․탁수․요수로부터 바다로 들어온 후 서쪽으로 대하상류를 향하여 멀리 기주의 도읍지로 도달한다. 이때에는 구하(황하)가 바다와 구분되지 않으므로 갈석이 똑바로 하구에 있다. 그 황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이 오른쪽에 있으므로 ‘갈석을 오른쪽으로 낀다’고 말한다.” 冀之北貢 自沽易涿遼水入海而後 西向以上大河永達冀都 此時九河未熟於海而 碣石正在河口 於其遡河西上則 碣石在右故 曰夾右碣石 『冀州夾右碣石圖』

그리고 이 갈석산을 상세하게 그려놓은 중국 고지도가 있다. 중국 남송 시대인 1177년에 제작된 아래의 <그림 5> 『기주협우갈석도』이다. 이 지도는 갈석산을 중심으로 주변을 흐르는 강과 연나라 5군인 상곡군·어양군·우북평군·요서군 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연 5군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표시된 최초의 지도이다. 참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로 향하는 보물섬 지도라 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들이 가득 담긴 지도이다. 
 
이 지도를 통하여 고대의 요수가 현 중국 북경시 동쪽을 흐르는 조백하이며, 요서지역이 현 중국 북경 지역이며, 고대의 요동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도에는 사료 C-3과 같이 갈석산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도 기록되어 있다(계속 이어짐).

글쓴이 : 김 봉 렬『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김봉렬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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