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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신의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박정신 교수의 역사강의 ① 연재를 시작하며
박정신 | 승인 2015.09.10 14:58

우리 시대의 역사학자인 박정신 교수의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를 앞으로 30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박정신 교수는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한국사학회회장, 한국인문사회과학회회장,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했습니다. 평생 역사교육에 전념하신 박정신 교수의 역사강의를 통해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가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정말 오랫 동안 ‘역사학’이라는 큰 바다를 항해해 왔다. 대학에서도 대학원에서도, 그리고 미국에 가 공부할 때도 오직 외길, 역사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난 다음 14년 동안 미국 대학교수로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00년 귀국하여 2014년 은퇴할 때까지 이 땅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글을 써왔다. 아니 은퇴한 지금도 역사학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나는 역사학이란 넓고 깊은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처럼 살아왔다. 그렇다, 한평생 넓디넓고 깊디깊은 역사학이라는 큰 바다를 향해하면서 이 항구 저 항구를 오가며 수많은 역사학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역사철학, 시각 그리고 방법론을 듣고 나의 역사학에 대한 생각, 시각 그리고 방법론을 이야기 하였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어 우리의 지적 대화는 화기애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언짢은 얼굴로 헤어지기도 했다. 사실 한 시각, 한 방법론, 한 결론에 모두 공감하여 동의한다면 학문한다는 것이 얼마나 따분한 일이고, 지식사회가 얼마나 건조한 세계인가. 한 시각, 한 방법론, 한 결론을 물려받아 외우고, 오고 있는 세대에게 전해주며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외치는 것이 학문한다는 사람이고 교육하는 이라면 나는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 터이다.

학문이라는 끝 없는 바다를 향해하겠다고 나서면서 나는 줄곧 나의 생각, 나의 시각, 나의 방법론, 그래, 나의 역사학을 언제인가 정리해 우리 지식사회에 내어놓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역사학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단순한 지식 장사꾼이거나 단순한 지식 전수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었다. 아니 역사학에 헌신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는 자기의 학문을 내 것이라고 내어놓는 것을 마땅히 하여야 할 ‘책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이 믿음 때문에 끝없는 학문의 바다를 ‘즐겁게’ 지금까지 향해해 왔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즐겁게’ 쓰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구체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우리 지식사회에 만연한 ‘서구중심주의’에서 ‘해방’되자는 성찰이다. 전통시대 이 땅의 지식인들이나 학인들은 중화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의 관심, 그래, 중국 지식사회나 학문세계에서 나온 담론, 논의나 토론, 그들의 시각과 방법론 따위가 고스란히 수입되어 우리 전통 지식사회와 학문세계의 담론이 되고 우리의 논의와 토론의 주제가 되었으며 우리의 시각과 방법이 되었다. 이른바 선진학문에 문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는 지적, 학문적 호기심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우리 지식사회의 안방을 스스로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전통시대 이 땅에서 일어난 여러 문제들, 이를 분석하고 해결하여야 하는 우리의 지식사회와 학문세계에서는 우리의 담론, 우리의 시각, 우리의 방법론 보다, 그들 (중국 사람들)의 것이 판을 쳐 우리의 주체적 지식사회의 발전을 방해 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의 지적, 학문적 ’노예‘가 되었다. 다른 ’소리‘나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다른 소리를 하면 ’체제의 이념‘을 옹호하며 권력을 가진 잘 먹고 잘 사는 ’체제의 지식인들‘이 사약을 내려 죽인다. 사람도 죽이고 그의 생각의 싹도 죽였다. 그래서 우리 담론, 우리 시각, 우리 소리가 있을 수 없었다.

오늘의 우리 지식사회와 학문세계를 보아도 별로 다름을 찾지 못한다. 나도 미국에 가 박사학위를 받고 그 곳에서 이른바 ‘종신교수’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 판을 치는 곳이 이 땅이다. 외제 손가방이나, 외제 옷, 외제 화장품, 외제 가구 그리고 외제 자동차가 불티나게, 그것도 더 비싸게 팔리는 곳도 이 땅이다. 언제인가 시내 서점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한 연구도 외제 이론에 기대고 외제 담론을 끌어들이며 외제 시각을 들이대고 있다. 가장 심한 분야라고 여겨지는 기독교 관련 서적을 보자. 몰트만, 불트만, 니버, 바르트, 로빈슨, 셀링 등 온통 서구학자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시각과 생각에 매료되어 소개하는 것들이 넘쳐 난다. 우리의 특별한 역사경험에서 나오는 우리 시각을 가지고 우리 식으로 고민한 것들이 드물다. 아니 우리의 특별한 역사경험에서 잉태된 우리의 시각을 가지고 ‘그들’을 논의한 서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땅 기독교가 서양 신학자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주장이 판을 치는 종교공동체라고 조롱을 받게 되었다. 서구문명과 학문이 우월하다는 식민주의가 우리 지식사회와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탈식민주의담론과 논의도 서구에서 나온 에드워드 사이드나 프란츠 파농의 소개에 기대고 머물러 있다. 우리의 특별한 역사문화경험에서 나온, 이를테면, 유영모나 함석헌이나 김교신의 사상에 대한 글들은 드물다. 오죽했으면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조명했겠는가. 그래, 늦었지만 우리 지식사회와 학문세계 한 모퉁이에서 벌어 진 이러한 움직임을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외제학문 오파상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 우리의 지식시장이고 학문세계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이자. 우리나라 대학교수채용 때마다 외제박사 선호와 토종박사 무시의 문화 말이다. 나도 외제박사학위를 가지고 외국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래서 말인데 외제박사 가운데 훌륭한 교수의 지도로 엄격한 교육과 학문수련을 받고 탁월한 학위논문을 쓴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좀 솔직해 지자. 그 외제박사 가운데 ‘똥통박사’가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그 외제 학위를 준 나라에서 교수로 채용되지 못하는 수준 낮은 학위논문을 쓴 이들, 한국의 역사나 문화 그리고 사회를 전혀 모르는 지도교수 밑에서 ‘한국자료’를 그들의 이론에 끼어 넣어 짜깁기한 학위논문을 쓴 이들, 심지어는 ‘미국에서 학문 활동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빨리 학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 활동할 것이다’고 말하며 구걸한 학위를 가진 이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자기 학위논문을 국내학계에 발표하지도 못하겠는가. 이들이 오고 있는 세대를 또 다시 외제 지식 또는 수입학문의 노예로 교육시키고 있지 않은가, 정말 자신들이 노예인줄도 모르는 외제학문노예들이 우리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이러한 대학사회를 고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둘째, 위의 이유와 이어지겠지만, 우리 역사학계를 성찰해 보자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역사이론이나 방법론, 그리고 사학사 강의는 대개 서양의 역사를 전공한 이들이 담당한다. 그래서 내용이 온통 서양역사이론이고 방법이며 서양역사학의 역사다. 나는 결코 학문적 고립주의자도 폐쇄주의자도 국수주의자도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교수한 사람이니 나에게 이런 딱지를 붙일 수 없을 터이다. 나는 나라밖 지식사회와 학문세계의 흐름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을 읽고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쓰기를 하자는 말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역사연구를 하는 프랑스 역사가와 우리 역사가가 같은 주제를 다루어도 다른 인식을 할 수 있다, 오히려 프랑스 역사가보다 더 넓게 객관적으로 프랑스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랑스 역사가의 ‘눈’과 우리 역사가의 ‘눈’이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가가 미국의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연구한다는 생각, 같은 논리로 우리가 우리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연구한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역사를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 사람이 미국역사를 어느 누구보다도 더 알고 더 훌륭한 역사쓰기를 한다는 생각은 비학문적이다. 우리가 미국역사를, 미국 역사가가 우리 역사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러한 학문하기에 대한 ‘주체성’이 우리 지식사회와 학문세계에 뿌리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셋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 위기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비인문학적 사고와 행위에 경종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인 1990년대 중반부터 주기적으로 인문학이 위기라며 인문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시위하듯 모임을 갖고, 전국의 인문대 학장들이 고급호텔에 모여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선언문’을 낭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주간>을 만들어 보여주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른바 ‘인문학 위기론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함몰되어 갈 때, 그래서 국제화를 내세우며 실용, 경쟁, 효율을 이야기하고, 우리 대학도 이 장단에 따라 취업이 잘되는 분야를 강조하고 학생들도 그런 분야를 전공하고 그런 강좌에 몰려가 인문학 강좌가 폐강되는 사태가 빈번히 일어난다. 어떤 대학에서는 아예 인문학 분야의 학과를 폐지하기도 한다. 그러니 모든 학문의 ‘지하수’와 같은 인문학이 고사위기에 처해 있으니 정부가 나서 살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하고 이들의 집단행동도 이해한다. 사악하기조차 한 신자유주의와 일방적 세계화의 물결을 헤쳐 나가 ‘먹고 살기 위해,’ 그래, ‘빵’을 얻기 위해 경제주의 잣대로 경쟁과 효율만이 만능이라는 우리 사회와 대학에서 무시만 당해온 인문학자들의 마음 왜 내가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문학자는 인문학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권력에 기대어 권력이 베푸는 시혜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집단 구걸행각은 인문학 스럽지도 인문학자 답지도 않다. 권력에 기대고 자본에 잇대어 위기돌파를 하려는 이들에게 우리는 인문학의 희망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 대학 안팎에서 인문학이 좋아, 아니 인문학에 미쳐 가난하나 자긍심을 가지고 인문학을 하고 있는, 그야말로 인문학자스런 인문학자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장자의 신분을 판 에서가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당당했던 디오게네스의 인문정신을, 인문학자들의 기개를 계승하는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체제에 맞서, 체제의 교육에 맞서 삶으로, 삶의 교육을 시도하기 위해 이 글은 쓴다. 인문사회융합 또는 통섭학문을 선도하자는 어느 대학 총장과 이사장의 강권으로, 그리고 쓸 데 없는 학문 사이의 칸막이에 갇힌 ‘학문’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나의 오랜 꿈을 펼쳐보자고 미국 유수 주립대학의 역사학과 종신교수 자리를 뒤로하고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독교학과’를 만들어 신학, 성서학, 역사학, 사회학, 상담심리학, 윤리학 교수들과 함께 이 꿈을 펼쳐 보고자 했다. 실패 했다. 거의 모든 교수들이 인문사회융합이나 통섭학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면 ‘좋은 직장’ 가졌으니, 그냥 해오던 그대로 편하게 하루하루 지나자는 반교육적, 비학문적, 그래 비기독교적 태도 때문에, 그리고 자기 학문의 칸막이에 갇혀 학과 안에서 또다시 칸막이를 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에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인문학을 융성시키는 길이다, 이렇게 해야 대학이 대학답게 된다, 기독교대학은 이러한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내 꿈과 시도는 그래서 실패했다. 애초부터 체제의 대학에서 체제의 학인들과 이런 교육운동, 이런 학문운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때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이른바 <김예슬선언사건>이 일어났다. 2010년 3월 10일에 서울에 있는 이른바 ‘명문대’ 경영학과 3학년에 다닌다는 김예슬이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대학이기에” 스스로 대학을 떠난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학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교육에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 우리 대학, 우리 교육을 뒤집으려는 ‘삶의 인문학’을, ‘삶의 교육’을 나에게 ‘설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 ‘삶의 철학자’ 윤구병이 “교수들을 만나면/형이라고 부르자/교수형, 교수형, 교수형..../그리고 나서/목매달자”라는 시로 우리 대학, 우리 대학교수들을 조롱하는 글도 읽었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학문을 하는 체제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를 ‘체제의 학문에서 삶의 학문으로, 체제의 교육에서 삶의 교육으로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김예슬들’을 위해, 그들에게 속죄의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다섯째, 이 땅에서 일어난, 아니 동아시아에 나라에 일고 있는 ‘역사전쟁’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이 땅의 역사학이 세상권력의 노예가 되었다. 보수권력이나 진보권력과 짝하여 역사교과서에 이런저런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싸우고, 겨레의 역사냐 나라의 역사냐를 두고도 전쟁을 한다. 역사란 ‘눈의 학문’이기 때문에 같은 사건이나 같은 역사현상에 대해 다를 시각을 가지고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수많은 다른 시각과 해석이 나와 서로 겨눔이 있어야 지식사회나 학문세계가 발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시각과 다른 해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문 패권주의’다. 학인들이, 역사학자들이 세상권력과 짝하여 자기들의 시각과 해석을 ‘정통’의 자리에 올려놓고 학문권력을 독차지하려는 비학문적 심보에서 학문 패권주의는 싹트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세상권력과 짝하여 자기들의 시각과 해석이 정통이라고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 사약을 내리고 ‘다른 생각의 싹’을 죽였던 그 역사를 오늘의 역사학자들이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을 세상권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과 중국의 ‘역사오용’이 어떠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역사는 현재의 학이고 미래의 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해석이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하다. 잘못된 과거 인식은 잘못된 오는과 내일을 만든다.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적 역사해석 (오용)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도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과 올제를 위해서 어제를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겸허하게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 과거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중국도 오늘과 올제를 위해 어제를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왜곡하지 않아도 중국은 대국으로 우뚝 섰고, 그래서 왜곡하지 않음으로 더 나은 대국이 되는 것이다. 세상욕망 (권력)의 노예가 된 역사를 ‘해방’시키는 것이 그들의 오늘과 올제을 위해 가야할 길이라고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줄이면, 모든 학문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역사학은 세상권력이나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역사학은 그 권력과 욕망를 관찰, 분석, 해석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의 가치, 이념, 질서, 체제를 ‘그 너머’의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새김해 보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계속)

 


글 박정신(전 숭실대학교 부총장)

박정신  webmaster@koreahi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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