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낸 세금으로 밥벌이하면서, 왜, 중국,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가?

 

대고조선 지우기의 합주곡-송호정과 심재훈의 배반논리...

중국의 엉성한 청동기는 확실하다고 띄워주고,

우리의 고도로 진화한 청동기는 별 볼일 없다고 깎아 내리는 송호정...

자기 스승을 잔인하게 배반한 심재훈, 비주류 사학을 벗기 위한 충성맹세인가...

 

 

윤내현 역사학 종북몰이로 매국사학 감추는 송호정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연구』(1994년) 이후에 이은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필자는 어느 날 송호정 교수의 『한국고대사속의 고조선사』(2003년)를 반갑게 구입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감동은 충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송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윤내현 교수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1. 북한 학계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면서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윤내현의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단군조선의 중심무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한 것은 역사발전단계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한국고대사속의 고조선사』 30~31쪽).

2. 기원전 8~7세기 고조선과 연나라의 경계로 기록된 요하가 현재의 요하가 아니고 북경 동북쪽에 위치한 난하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북한 학계의 기본적인 견해인데, 남한학계에서는 윤내현이 따르고 있다(56쪽).

고조선의 표지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파형 동검이 요서지역인 적봉일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송교수는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 윤내현 교수의 주장을 종복으로 모는 반공몰이 외에는 중국의 동북공정 견해를 충실히 추종할 뿐 자신의 견해라고 할 것도 없다.

최근 윤교수 밑에서 연구조교를 했다고 실토한 심재훈 교수가 두 언론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저작물인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2016)를 자랑하는 중에, 재야사학계의 고조선 연구를 ‘상상력 경쟁’이라고 비꼬고, 자신의 스승의 학설에 대해서 조차 “학문적으로 지나침이 있다면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아들로서의 도리”라고 밝히는 담대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50대 송교수가 원로인 윤교수에게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훈계조의 어투가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심교수의 대담을 읽고서야 ‘학문적 아들로서의 도리’라는 고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송호정 교수는 자신의 '고조선사'에서 윤내현 교수의 대고조선을 압도하는 새로운 학설이라도 제시했는지 궁금하다. 다음은 송교수의 고조선 관련 주요 구절들이다.

▲ 지도1 : 윤내현 교수의 『중국사1』 에 있는 秦末(진말) 형세도-만리장성이 갈석산에서 끝나고, 난하(요수)가 고조선과의 서부 국경선이다.

3. 단군조선은 단지 신화일 뿐, 역사적 사실로서 그 증거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64쪽).

4. 중국 고대문헌에서 난하 유적이나 대릉하유역을 ‘조선’이라고 한 일이 없으며, 산융은 물론이고 거기에 거주한 영지, 고죽, 도하 등이 고조선의 주민이 될 수 없다(77쪽).

송 교수의 책을 읽으면 그 학문적 수준에 대해서 당황하게 된다. 신화에 담긴 내용을 분석해서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는 것이 역사이다. 그런데 송 교수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처럼 단군과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졌는지 ‘단군’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비난하기에 바쁘다. 또한 중국 고대문헌에서 지금의 난하를 무엇으로 표기했는지를 찾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런데 이런 기초도 배우지 못했는지 중국 고대 문헌에서 난하를 찾고는 없다고 거품을 무는 식이다. 지명의 변천사라는 말을 들어는 봤는지 의심스럽다. 중국사인지 한국고조선사인지, 아니면 중국학자인지 한국학자인지 국적을 의심케 하는 서술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로서 자격 미달의 송호정, 심재훈, 배형일

심교수 역시 스승이었던 윤교수의 고조선사 연구결과를 자신의 새책(『고대 중국에 빠져…』에서 ‘확대된 고조선사’(239쪽)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어디에 근거해서 확대, 과장되었다는 것인지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송교수나 심교수나 기준은 자신의 머릿속 생각이 전부인 것 같다. 윤교수가 제시한 수많은 1차사료에 대해 다른 1차사료를 가지고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 생각과 다르니 틀렸다는 것이다. 다만 캘리포니아대학 산타바바라의 배형일교수가 지적한 것에 근거를 두고, “청동단검이나 지석묘 같은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문화를 통해 민족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242쪽)는 정도가 근거인 것처럼 보인다. 강단학자들이 워낙 기초가 부족하다 보니까 ‘미국’만 나오면 중국사고 한국사고 추종하기에 급급하다. 뼛속 깊은 사대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배형일 교수의 지적도 역사학과 고고학의 기초는 알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 지석묘 등은 고조선의 표지유물이다. 이런 표지유물의 분포를 가지고 국가의 강역을 산정하며, 그곳에 살았던 민족을 인식하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이다. 비파형동검의 분포를 고조선 지배세력의 통치영역으로 해석하는 윤내현교수의 학설은 국제학계에서 합의된 분석틀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이를 부정하는 송호정, 심재훈, 배형일 교수 등의 주장은 일제 식민사학자들 및 중국 동북공정처럼 정치적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가. 『삼국유사』의 기년문제를 비롯한 단군관련 기사는 고려시대 사람들이 단군을 자신의 시조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전해줄 뿐이다, 그 인식의 정당성까지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한다(288쪽).

나. 비파형동검과 미송리형토기의 분포지역을 고조선의 강역과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일부 고고학적 문화요소의 유사성을 토대로 특정집단을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289쪽).

▲ 지도2 : 윤내현교수의 비파형동검 출토지. 이는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의미한다(『고조선연구』(상)만권당)

중국것은 높이고 자국것은 깎아 내리고...

과거 윤내현 교수가 주장한 ‘대(大)고조선’이 후학들에게는 위험한 것이거나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송교수는 종북(從北)학설로 보는가 하면, 심교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비파형동검을 ‘고고학적 문화양상과 민족분포와는 별개’라는 서양논리에 기초하여 지우려하는데, 비파형동검과 고인돌 등 복수의 유물의 분포도가 서로 일치하는데도 이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정말 비과학적 태도라 비난받아야한다. 마치 ‘윤내현 교수의 대고조선 지우기 합주곡’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송호정 교수는 곳곳에서 중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고, 반대로 단군조선은 사실성이 없는 유령(幽靈)의 나라라고 심한 비하를 한다. 먼저 친(親) 중국적인 구절들을 제시하겠다.

5. 상족(商族)계 청동기에는 ‘연후(燕侯)의 상사를 받는’ 등의 명문이 있어 객좌 일대에 거주한 이들은 연후와 모종의 복속관계를 맺었던 것이 확실하다(74쪽).

6.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연(燕)문화가 연산(燕山) 남록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했음을 입증해준다(80쪽).

7. 제(齊) 환공(桓公)의 패업(霸業)은 확대되고, 북방 각 종족의 융합이 더욱 촉진되었다(83쪽).

이렇게 ‘확실하다’, ‘광대한’ ‘촉진’ 등등의 말로 중국의 역사를 찬양일변도로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고조선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이 남의 나라처럼 모욕주기와 비하를 일삼는다. 누가 매국이고 정통인지 헷갈린다. 독자들 중에는 땅을 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심교수도 마찬가지이다.

다. 실상 전국(戰國)시대 연(燕)이나 흉노제국 성립 이전에 과연 요서와 요동에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다(294쪽).

라. ‘랴오하문명=한민족의 고대문명’과 같은 등식은 지나친 과장으로 보인다(302쪽).

마. 사실상 위만조선이 멸망한 지 300여 년 이후부터 전통시대 중국 학자들 조차 고조선의 위치나 일부 양상들에 대해서 이미 상이한 견해들을 내놓기 시작했음을 알아야 한다(300쪽).

심교수나 송교수의 주장을 보면 이들은 기초적인 연구사도 공부하지 않고 무조건 민족사 비판에만 열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의 ‘다’와 관련해서 중국의 소병기(蘇秉琦)조차 홍산문화의 하가점 하충문화시기(서기전 20세기)에는 고대 국가라는 방국(方國)단계에 들어섰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몽골 적봉 부근의 수많은 석성(石城)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심교수는 중국의 이런 주장까지도 부정하면서 우리 역사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단국대는 표면상 독립운동가가 설립했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민족사 말살 주장에 대한 공식견해가 뭔지 궁금하다.

심교수와 약간 다른 양상의 송교수는 아예 노골적인 반한(反韓) 주장을 이어간다.

8. 당시 과연 고조선에도 전문 상인이 있었는지 혹은 국가간 조공형태로 무역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자료가 부족해 설명하기 힘들다(95쪽).

9. 한마디로 초기 단계의 고조선은 중국 제나라와 교역을 한 사실 등이 확인되지만, 그것이 일정한 정치조직을 갖춘 국가로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96쪽).

10. 요서 지역 청동기문화의 담당자를 고조선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동호족이냐 산융족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참고로 요동지역 요령식 동검문화의 주체가 동호․산융인지, 아니면 고조선의 배경문화 또는 예맥족의 것인지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100쪽)

교수의 탈을 쓰고 있는 자들, 중국동북공정 한국지부 행동대원인가,

이와 같이 송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단군은 유령의 인물에 지나지 않고, 고조선은 사실상 나라도 아니며, 위대한 중국문화의 시혜를 받아 겨우 명맥이나 유지했고, 볼품없는 정치조직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이다. 더욱이 산융, 동호를 고조선과 분리하는 것은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조선을 지우기 위해서 만든 논리인데, 송교수가 충실하게 협력하고 있으니 본인 스스로는 ‘식민사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겠지만, 가히 ‘동북공정 한국지부’ 소속 회원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무척 조심스럽다는 심교수의 그 ‘무척 조심’이 동북공정의 고조선 지우기에 편승하려는 눈치 때문이 아닌지 궁금하다.

문제는 그들이 왜 중국을 높이고 고조선을 나라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것인가에 있다. 시공을 제멋대로 축소한 ‘조그만 고조선’이 우리의 정통사관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고조선’이 종북학설이라서 이를 반사적으로 거부한 것일까? 현재 북한은 서부의 난하 국경선을 변경하여 요하 하류설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대고조선’을 종북으로 몰고 갈 명분도 사라졌다.

그것도 아니면 식민사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그와 그 동료교수들의 운명 때문일까? 심교수 자신의 책이름처럼 정직한 역사의 근원을 중국에만 두고 그 ‘중국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칭 ‘비주류 역사가’(316쪽)의 딱지를 떼고자 비주류를 더 열심히 공격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말한 ‘유사역사가’(255쪽)에 대한 비하는 ‘이이제이’하는 주류의 수법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일찍이 재야사학의 태두였던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세 살부터 어머니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고 6세에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읽게 되었는데, ‘한무제 토멸지(漢武帝討滅之)하시고’라는 구절에 이르러 “위만조선을 우리나라라고 하면서 우리나라를 토멸한 한무제는 분명 우리의 원수(怨讐)인데, '하시고'라는 토씨를 붙여 읽는 것은 나는 싫다”하여 끝내 '동몽선습'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위만조선의 실체 분석은 과제로 남긴다고 하도라도, 중국황제인 유철(한무제)은 전쟁을 일으킨 원수인데, 그놈에게 ‘하시고’라는 존칭의 토씨를 붙여 읽을 수 없는 것은 한국인의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0년 동안 조선의 학동들은 존화(尊華)의 이념 때문에 ‘한무제 토멸지(漢武帝討滅之)하시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시고’라는 세뇌의 유전인자는 지금도 대를 이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 깊숙이 빠져있는 송교수와 심교수도 역시 ‘하시고’라는 전염균에 세뇌된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지금 한국은 구한말처럼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일제의 식민잔재를 청산하고 주체적 민족사관을 외치는 역사학의 혁신 바람이 일어나 국민에게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 동북공정의 충실한 하수인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일부 학자들은 ‘대고조선’을 지우기 위해 1차 사료도 무시해가며 심교수가 말한 ‘상상력 경쟁’(247쪽)을 ‘고조선 축소지향’에 경주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아들의 도리'는 자신들의 비조, 이병도에게나 해야...

또 학술논문에서 금기시하는 술어(~하고 싶다)를 남발하는 스승의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낙랑군 수성현을) 비정하고 싶다”라는 구절과 같은 ‘학문적 지나침’에는 용기 있게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관대하게 감싸고 있다. 그들 아들들의 관대함이 지나쳐 급기야 중국은 이병도 학설에 따라 만리장성 끝자락을 황해도까지 그려놓고야 말았다. 자기 스승에도 효도하고 중국에도 충성하는 이중적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으나 도리어 민족에는 배반의 칼을 꽂은 것과 같다. 민족 내지는 민족주의를 ‘고대사 소모성’의 대상으로 보는 저들의 인식은 일제시기의 민족항쟁을 덮어 일제식민통치를 정상권력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는 부역자들 같은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은 누구의 맘대로 해체될 대상이 아니다. 민족경멸이라는 배반의 칼을 스스로 뽑아내지 않으면 민족으로부터 어떤 대가와 결과가 올지를 진정으로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도 모른다면 시비포폄(是非褒貶)의 감계(鑑戒)정신도 모르는 역사학의 무자격자로서 퇴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무자격자들이 외치는 종북타령이나 비파형동검의 나라인 고조선지우기는 소모성 논쟁을 가열할 뿐이므로 이제 용도 폐기되어야 한다.

▲ 중국 안작장의 西漢史 지도(2014년)-이병도학설에 따라 황해도까지 만리장성을 연장하고 있다.

글: 이찬구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미사협) 공동대표,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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