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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단군)의 패수를 찾아라,재야, 식민사학 모두 엉뚱한 곳을 한사군으로... 가짜 유물가진 식민사학이 유리해...
김봉렬 | 승인 2016.08.23 12:42

 

낙랑군 재하북성설의 10가지 핵심 근거(네 번째)

4. 고조선의 패수는 하북성 보정시 지역을 흐르는 당하이다. 고조선의 패수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첫째,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선을 지나는 강물이다.

둘째, 패수는 고조선의 중심부를 지나는 강물이다.

셋째, 패수는 당나라 평주지역을 흘렀던 강물이다.

 

1. 고조선의 패수는 하북성 보정시 지역을 흐르는 당하唐河이다.

고조선을 흘렀던 습수‧열수‧산수‧패수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던 강물이 패수浿水이다. 패수는 『사기』「조선열전」에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강물이다. 뿐만 아니라 『위략』등 여러 사서에서 패수를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패수의 위치를 통하여 고조선의 강역을 알 수 있다고 본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야와 강단을 막론하고 패수의 위치에 대하여 수많은 학설만 난무할 뿐 정설이 없다. 그 이유는 패수라는 강물이 여러 곳에 존재했기 때문인데,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서로 다른 6개의 패수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옛 문헌의 기록을 보면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낙랑군 패수현의 패수‧낙랑군 누방현의 패수 등이 있었고, 대동강‧예성강‧어니하(한우락)도 패수로 불리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강이 패수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사용되었던 강이라는 말의 고대어인 펴라‧피라‧벌라가 향찰식으로 기록되면서 패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된 패수 외에도 지금은 명칭이 바뀌어 버린 더 많은 강들이 패수로 불리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윤내현 저『고조선 연구』 일지사, 2004년, 249쪽>

패수라는 강물이 여러 곳에 있었으므로 고조선의 패수를 찾기 위해서는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기』「조선열전」은 고조선이 존재하던 당시의 생생한 1차 기록으로 본문과 주석에서 고조선의 패수 관련기록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 기록들을 검토해보면 고조선의 패수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함을 알 수 있다.

▲ <그림 1> 갈석산과 왕검성 및 패수의 위치

첫째,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선을 지나는 강물이다.

둘째, 패수는 고조선의 중심부를 지나는 강물이다.

셋째, 패수는 당나라 평주지역을 흘렀던 강물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고조선의 패수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지역을 흐르는 당하唐河였다. 관련 사료들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선을 지나는 강물이다.

아래의 사료 D-1은 『사기』「조선열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선 및 고조선과 진나라의 국경선, 그리고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 어떻게 변했는지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고조선의 시대별 국경선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의 패수는 국경에 위치하였던 요동고새遼東故塞와 만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선을 지나는 강물이었다.

현재까지 재야와 강단을 막론하고 패수를 고조선의 국경선으로 인식해왔다. 이는 『삼국지』에서 인용한 『위략』에서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나라는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及漢以盧綰爲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고 기록한 이래로 중국의 많은 사서들이 패수를 고조선의 국경선으로 기록한 까닭이다. 하지만 고조선의 패수관련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인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패수는 국경선인 요동고새를 관통하여 흐르는 강물이지 패수가 곧 국경선은 아니었다. 사료  D-1을 세밀히 검토해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패수는 고조선의 중심부를 지나는 강물이다.

아래의 사료 D-2, D-3, D-4는 각각 『사기』「조선열전」과 『한서』「조선전」의 패수에 달린 주석들이다. 『사기색은』에서는 신찬의 말을 인용하여 ‘왕검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며, 『한서』에서는 안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패수가 낙랑현에 있다’고 하였다. 왕검성과 낙랑현은 모두 고조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므로 패수는 고조선의 중심부를 지나는 강물이었다.

(1)과 (2)를 통하여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지역에서 고조선의 중심부로 흐르는 강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패수의 흐름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사료 D-4이다. 『사기정의』는 『지리지』를 인용하여 “패수는 요동새의 바깥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현 서쪽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기』「조선열전」본문과 패수관련 주석들을 참고하면 고조선의 패수는 국경지역을 통과하여 고조선의 중심부인 낙랑현을 지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이었다. 이러한 패수의 흐름만 이해해도 패수관련 여러 학설들의 진위를 충분히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3) 패수는 당나라 평주지역을 흘렀던 강물이다.

고조선을 흘렀던 패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료가 D-5인데, 『사기』「조선열전」에 의하면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조선왕 우거를 회유하기 위하여 사신 섭하를 고조선으로 파견하였다.

조선왕을 회유하는데 실패한 섭하는 한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국경부근의 패수에 이르러서, 마부를 시켜 전송 나온 조선의 비왕 장長을 찔러 죽이고 바로 패수를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요새에 대하여 『사기정의』는 주석하기를 ‘평주 유림관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사료 D-5). 이를 통하여 고조선의 패수가 당나라 평주지역을 흘렀던 강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당나라 평주의 위치는 어디인가? 『사기정의』는 「하본기」의 ‘기주’를 주석하면서 ‘황하가 동북쪽으로 평주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사료 D-6). 고대 황하 하류의 갈석산 일대가 당나라의 평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석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고대 황하 하류의 갈석산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또는 낭아산)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패수는 보정시에 위치한 갈석산(백석산) 주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에서 고조선의 패수는 국경에 위치하였던 요동고새와 만나는 강물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사료 D-1). 위의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갈석산(백석산) 주변에는 두 줄기의 장성유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 줄기는 갈석산(백석산)에서 북경 쪽으로 이어진 장성이고, 한 줄기는 갈석산을 감싸고 보정시 수성遂城 방면으로 이어진 장성이다.

이들 장성은 모두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당하唐河와 만나며, 당하와 장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고조선과 연나라 및 대代나라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통하여 사료 D-1에서 패수(당하)에 이르기까지 요동고새를 다시 수리하여 연나라에 복속시켰다고 한 까닭을 알 수 있다. 패수 서쪽의 장성은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과는 무관하므로 연나라가 수리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패수는 고조선의 국경지역에서 중심부로 향하여 흐르는 강물이며, 당나라 시대의 평주에 위치했던 강물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고조선의 패수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지역을 흐르는 당하唐河였다. 뒤에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를 알고 나면 패수의 위치는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 ‘낙랑군 재난하설’과 ‘낙랑군 재평양설’이 보는 패수의 위치

(1) ‘낙랑군 재난하설’에서 보는 패수의 위치

‘낙랑군 재난하설’을 주장하는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고조선의 패수를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에 위치한 난하였거나 그 서부 지류 또는 난하 보다 조금 서쪽에 있었던 강물로 비정하였다. 그는 패수라는 강이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를 확인함에 있어서 패수라는 강 이름에 너무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지역이 지금의 어느 곳이었는지를 먼저 확인한 후 그 지역을 흐르는 강 가운데 어느 강이 패수였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순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진제국 및 서한제국의 행정구역이었던 요동군이 갈석산 서쪽의 난하 하류유역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난하 유역이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지역이었고,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는 이 지역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증 결과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는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沛水(浿水)로서 그 강은 지금의 북경 가까이에 있는 난하였거나 그 서부 지류 또는 난하 보다 조금 서쪽에 있었던 강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가 지금의 난하보다 동쪽에 위치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하였다. (윤내현 저 『고조선 연구』일지사, 2004년, 211~250쪽 참조)

앞에서 『사기』「조선열전」등의 기록을 통하여 고조선의 패수는 첫째로 고조선의 국경선을 지나고, 둘째로 고조선의 중심부인 낙랑현을 지나며, 셋째로 당나라 평주지역을 흐르는 강물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난하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강물이 아니다.

첫째, 고조선의 패수는 국경지역에서 요동고새와 만나는데, 난하와 만나는 요동고새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난하와 만나는 장성유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장성은 명나라 시대에 축조된 명장성이므로 고조선의 패수와 만났던 요동고새가 아니다.

더구나 요동고새는 고조선을 방어하기 위한 장성인데, 현재 난하와 만나는 장성유지는 북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장성이므로 위치상으로도 고조선 방어와는 관련이 없는 장성이다. 따라서 난하는 요동고새와 만나는 강물이 아니며, 고조선의 패수가 될 수 없다.

둘째, 고조선의 패수는 사료 D-4에서 보듯이 고조선의 중심부인 낙랑현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난하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지 살펴보자. 난하 하류의 갈석산 부근을 낙랑현으로 보면 언뜻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낙랑군의 연혁을 살펴보면 중대한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낙랑군은 공손씨 정권 때에 이르러 낙랑군과 대방군으로 나누어지는데, 낙랑현(조선현)은 낙랑군에 속하였고 대방군은 낙랑군의 남쪽지역에 위치하였다. 만약 난하가 고조선의 패수라면 난하 하류의 바닷가가 낙랑현(조선현)이 되는데, 그 남쪽은 바다이므로 낙랑현의 남쪽에 대방군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난하는 고조선의 패수가 될 수 없다.

셋째, 고조선의 패수는 당나라 평주지역을 흘렀던 강물인데, 난하 유역이 당나라 평주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당나라 평주의 위치를 난하 하류 일대로 보고 있으므로 난하는 이 조건에 딱 부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료 D-6에서 보듯이 당나라 평주는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는 갈석산 지역에 위치하였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황하는 하북성 천진시보다 동쪽으로 흐른 적이 없으므로 난하 유역은 당나라 평주가 될 수 없으며, 난하를 고조선의 패수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당나라 평주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고조선 갈석산의 위치를 밝히면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윤내현이 패수로 비정한 난하는 『사기』「조선열전」에서 나오는 패수관련 기록들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므로 고조선의 패수가 아니다.

(2) ‘낙랑군 재평양설’에서 보는 패수의 위치

‘낙랑군 재평양설’을 주장하는 강단사학자들은 고조선의 패수를 한반도의 청천강과 압록강 및 요령성의 혼하까지 다양하게 비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조선의 패수는 낙랑군 낙랑현을 지나서 바다로 들어가는 강물이다(사료 D-2, D-3, D-4).

만약 한나라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면, 고조선의 패수 또한 평양 일대로 흘러야 한다. 지금 평양을 지나는 강물은 대동강이므로 ‘낙랑군 재평양설’이 성립하려면 고조선의 패수는 대동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강단사학계에서 고조선의 패수를 대동강이 아닌 청천강이나 압록강 또는 혼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낙랑군 재평양설’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조선의 패수는 당나라 시대의 평주를 흐르는 강물인데, 당나라 평주는 고대에 황하가 발해로 들어갔던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였다(사료 D-5, D-6).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당나라 평주의 위치를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난하 일대로 보고 있는데, 설령 당나라 평주의 위치를 강단사학계의 통설대로 보더라도 고조선의 패수를 하북성 난하 일대에서 찾아야지 청천강, 압록강, 혼하 등에서 찾는 것은 올바른 사료해석이라 볼 수 없다.  

3. 패수 관련사료

사료 번호 패수 관련사료

D-1 조선왕 만滿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 연나라의 전성기로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진이 연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외요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한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패수에 이르기까지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여 경계를 삼고 연에 복속시켰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D-2 『사기색은』: (상략)...신찬이 말하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索隱 : (上略)...臣瓚云「王険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D-3 안사고가 말하였다. 패수는 낙랑현에 있다. 음은 보와 개의 반절음이다. 師古曰:「浿水在樂浪縣, 音普蓋反」. 『漢書』卷九十五, 西南夷兩粵朝鮮傳第六十五

D-4 『사기정의』 :『지리지』는 말하기를 “패수는 요동새의 바깥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현 서쪽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正義地理志云浿水出遼東塞外,西南至樂浪県西入海.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D-5 『사기정의』 : 평주 유림관으로 들어갔다(正義入平州楡林関也).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D-6 『사기정의』: 치수와 공부를 살펴보면 제도(帝都, 기주)로부터 시작했다. 황하는 승주 동쪽에서 시작하여 곧바로 남으로 화음에 이른다. 또 동쪽으로 회주 남쪽에 이르고, 또 동북으로 평주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동하의 서쪽, 서하의 동쪽, 남하의 북쪽이 모두 기주이다. 正義:按理水及貢賦從帝都爲始也. 黃河自勝州東,直南至華陰,卽東至懷州南,又東北至平州碣石山入海也. 東河之西,西河之東,南河之北,皆冀州也.  『史記』卷二, 夏本紀第二

 

글쓴이 : 김 봉 렬『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김봉렬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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