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해방을 광복이라 부르지 마라...

기사최종수정: 서기2016.8.17. 20:08

 

친일파에게 광복은 왜 축복이었나,

왜구의 주구 노릇하던 하류인생들이

주인, 왜구가 물러가자, 주인의 자리를 꿰찾다.

 

주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

왜구의 난동이 정교하게 자리잡아가던 서기1920년 11월 29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한 백발의 노인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목숨을 거두려는 왜구검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느낌이 어떤가?”

죽음을 초월한 노인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삭히며 대답했다.

한시漢詩였다.

마지막 유언이 한시라서 노인의 심정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상, 유재춘풍

유신무국, 기무감상”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부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는데,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이 노인은 왜구검사에게, '물어보나 마나 한 것을 왜 물어보냐'고 꾸짖고 있다. 이 한시는 아마도 다시 글로 써서 왜구검사에게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기록으로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18자로 쓴 한시에 죽음을 앞둔 이 노인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을 느끼고 있다. 사형을 집행하는 이 날은 11월 29일이다. 맹추위를 떨치는 겨울의 한복판이다. 차디찬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 장은 뼈속까지 시리도록 추위가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봄바람을 느끼고 있다. 왜구의 폭압을 비웃고 이 세상을 뛰어 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극복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 순간 그에게는 봄바람으로 비유되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내 다시 현실의 시공간으로 돌아온다.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는데,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이제는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으로서, 준엄하게 왜구검사를 꾸짖고 있다.

사형선고가 있기에 앞서 재판을 받으면서 이 노인은 이렇게 왜구 판사를 꾸짖었다.

“일본은 불의로써 우리나라를 병탄했다. 이는 세계의 인도人道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조선의 국민으로 너희들의 노예로 복종할 수 있겠는가. 일본은 조선을 지배할 능력이 없으며, 이른바 동화란 유치한 꿈(稚夢)에 지나지 않는다.”

이 노인은 아주 정확하게 왜구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미개야만성을 질타하고 있다. 왜구의 조선식민통치는 미개야만의 유치한 꿈이었다. 허황된 꿈을 붙잡고 미친 듯이 치닫다가 결국 원자폭탄까지 맞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심판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손녀 손자의 재롱을 보며 인생의 황혼을 즐겼어야 할 백발의 노인은 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려는 것일까, 식민지 조선의 최고 권력자 조선 총독을 폭사시키려고 폭탄을 던진 ‘죄목’ 때문이었다. 아마도 살인과 살인미수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인은 누구인가?

지금은 국사교과서에서 조차 잊혀 가고 있는 왈우曰遇 강우규姜宇奎 의사다. 당시 64세의 노인이었다. 지금이야 잘 먹고 의료체계가 잘되어 있어,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지만 당시는 인생을 곧 마감해야할 나이다. 강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와 만주 그리고 중국 하북성을 다니면서 독립투쟁과 민족교육에 힘썼다. 그러던 중 사이토 마코토가 3대조선 총독으로 부임하기 위하여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노인동맹단을 대표해서 폭살하고자 한다. 서기1919년 9월 2일 하오 5시쯤에 서울역에 내린 사이토 마코토가 쌍두마차에 올랐고 이 마차를 향해 영국제 폭탄을 던졌다. 귀를 찢는 듯 한 굉음을 내며 폭탄이 성공적으로 터졌다. 그러나 사이토는 살아남고 37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때 사이토 마코토를 마중 나온 총독부 정무총감, 만선철도이사와 미국뉴욕시장의 딸도 부상을 입었다.

▲ 서기1919.9.2. 왜구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3대 총독으로 부임해 오자, 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져 폭살을 시도한 강우규 의사. 체포된 후 형무소에서 왜경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모습, 형형한 눈빛은 이미 생사를 초월해 보인다.

거사 뒤 현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온 강의사는 오태영과 장익규, 임승화 등의 도움으로 피신하여 숨어 다녔다.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왜구 순사도 아닌, 왜구 앞잡이 김태석에게 9월17일 사직동에서 붙잡히고 만다. 결국 왜국 경찰에게 넘겨져 고문과 재판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나 죽는다고 조금도 슬퍼마라, 내 평생 세상에 대해 너무 한 일이 없어 오히려 부끄러웠다. 내가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것은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이만큼 애쓰다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 청년의 가슴에 인상만 밴다면 그만이다. 쾌활하고 용감하게 살려고 하는 십삼도 조선 청년이 보고 싶다.”

강의사는 이렇게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청년교육이 조국광복을 이루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마지막까지 강조하였다. 미래를 이끌어갈 조선 청년들이 강의사의 의거를 기억만 해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식민지하에서 절망과 패배감과 허무감이 아닌 용감하고 쾌활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을 염원하고 있다. 강우규 의사의 이 무력투쟁은 이후 왜구 수괴 등 주요인물 암살활동으로 빛나는 의열투쟁을 촉발시킨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폭파한 나석주 의사, 홍코우 공원에 폭탄을 던져 왜구 대장급 인사를 폭사 시킨 윤봉길 의사, 조선총독부 건물로 전기공을 가장하여 들어가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 등 거사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 왜구난동기 우리의 선열들은 무장투쟁, 사상투쟁, 일제식민주의 사학에 대한 역사전쟁 등 모든 방면으로 왜구의 도전에 대하여 응전과 반격을 펼쳤다.

왜구의 노예들, 주인이 되다.

결국 영원할 것 같았던 왜구난동기도 끝이 났다. 8.15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이런 선열들이 주축이 되어야 했다. 먼저 왜구의 주구 노릇을 하며 악랄하게 독립투사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등 반민족행위를 한 친일부역세력을 철저히 처단하여야 했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 사상, 역사, 종교 등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일제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그리고 광복전쟁에 일생을 바친 분들에 대한 보상과 대우를 하여야 했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로 치달았다. 미군정과 이승만의 비호하에 일제의 주구노릇을 한 친일매국역적들이 이 땅의 주인 되어 버리는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천인공로할 일들이 벌어졌다. 친일역적들의 주인인 왜구가 물러가자 그 자리를 이들이 모두 차지하였다. 왜구 밑에서 충실한 개, 노예 노릇하던 역적들이 주인의 자리를 꿰차고 그 주인들이 하던 짓을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그 주인보다 더 악랄하게 광복세력을 청산해 나갔다. 조국광복투쟁과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고하 송진우, 해공 신익회 등이 이 친일매국역적세력에 의해 쓰러져 갔다. 이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광복군 제1지대장, 약산 김원봉과 함께 광복군 제3지대장을 맡아 무에서 유를 창조할 만큼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해서 미군과 중국군을 종회무진 누비며 활약한 백하 김학규 장군은 백범 김구와 해방공간에서 함께 정부수립에 매진하였다. 백범 김구가 피살되자, 피살에 개입했다는 누명을 씌워 고문하고 가두고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고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들었다. 그 가족은 평생 연좌제로 묶어 놓아 출세의 길을 모두 막아 버렸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약산 김원봉은 또 어떤가, 최악질 왜구 고등계 형사 노덕술의 고문에 못 이겨 피를 토하는 분노를 가슴에 안고 북한으로 탈출하였다.

▲ 조선의용대, 광복군 제1지대장을 맡아 대일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당시 조선민중에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던 약산 김원봉. 조선의용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앞줄 가운데가 약산 김원봉. 이런 그가 광복된 조국에서 오히려 좌익 불순분자로 몰려,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왜구 고등계 형사, 노덕술에게 온갖 모욕과 고문을 당한다. 피를 토하는 울분을 안고 북으로 탈출한다.

해방공간, 광복된 조국의 품에 안기고자 이역만리 광복투쟁을 하다 돌아온 조국, 그러나 이미 그 조국은 왜구와 싸우던 타국보다 더 위험한 공간이었다. 피아가 구별되지 않았고 그래서 너무나 쉽게 왜구의 노예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받았다. 백범 김구는 왜구에게는 이를 갈 정도로 반드시 잡아서 죽여야 할 특등 반국가 범죄자였다. ‘존엄하고 성스러운’ 히로히토 ‘천황폐하’를 그것도 왜구 한복판, 동경에서 시해하려고 폭탄을 던지도록 사주한 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저는 영원한 쾌락을 누리러 가오니 슬퍼 마시오.” 30세 청년 이봉창이 왜구 수괴, 히로히토를 폭살 시키러 일본으로 떠나기 전,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에서 이봉창을 사지로 보내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 백범 김구에게 오히려 위로하면서 한 말이다.

“이제 저는 영원한 쾌락을 누리러 가오니 슬퍼 마시오...”

왜구는 도쿄 한복판에서 발생한 일왕폭살미수 사건의 배후가 백범 김구 임을 사건직후 알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왜구순사를 파견하여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지역은 프랑스 관할이었다. 이를 무시하고 침범하였다간 프랑스와 일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래서 프랑스 조차지 밖에서 어른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왜구가 패망할 때 까지 백범 김구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기들이 키워놓은 친일 개들이 알아서 그것도 자기들이 유린하던 조선 땅에서 백범을 깨끗하게 처리해 준 것이 아닌가,

왜구와 싸우다 전사했다면 그나마 덜 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왜구가 키워 놓은 쓰레기만도 못한 왜구 개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섬으로 쫓겨 간 왜구가 이것을 보고 얼마나 통쾌해하고 비웃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생각 만해도 이가 갈린다. 이런 미치고 개만도 못한 역사가 인류역사에 또 있을까?

▲ 악질친일경찰 노덕술. 그는 말단 순사에서 시작하여 경시계급까지 올랐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찰서장급이다. 왜구 보다 더 잔악하게 동포를 고문, 살해한 공로였다. 해방 후 체포되어 처형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살려주어 다시 귀국한 독립투사들을 가두고 고문을 하였다.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화려하게 부활한다. 좌측으로 부터 왜구 순사 초임시절, 반민특위에 체포된 모습, 육이오 전쟁때 참전한 모습. 그는 4.19가 일어나자 갑자기 사라진다. 숨어서 연명하다가 5.16 반란이 일어나자 다시 부활한다. 훈장을 세번이나 타기도 했다. 노덕술 처럼 춤을 춘 인생도 없으리라, 그 아들이 노태우 정권때 국무총리를 한 노재봉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러므로 8.15 광복을 광복절이라 하지 말라,

8.15는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는 비극이었다. 아니, 우리민족 전체에게는 대 재앙의 시작이었다. 반면에 친일매국역적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왜구치하에서는 기껏해야 순사, 면서기, 면장 그리고 재수가 좋으면 군수, 판사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식민지 노예의 저항을 막고 순응시켜 영원히 말살하고자 한 일제의 고도의 통치기술에서 나온 부스러기였다. 주인이 더 착취를 하고자 일부러 떨어뜨린 콩고물을 가지고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8.15해방이 되자 아득히 높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던 장관, 경찰서장, 도지사, 군 장성 등 주인 왜구의 자리를 모두 꿰차 버렸다. 이것이 8.15해방이 친일매국역적들에게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나라 해방공간과 그 이후의 진실 된 역사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백범 김구로 대표되는 죽음은 좌우 정치세력들의 싸움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식으로 왜곡해서 주입시킨다. 친일매국역적들이 차지한 대한민국이고 승자의 역사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승자인 친일매국역적들은 끊임없이 주술을 건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마치 친일매국의 역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선진적 경제부국을 이룬 것처럼 세뇌시킨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반역의 친일매국의 역사는 새롭게 탈바꿈하면서 더욱 망국의 세월을 재촉하고 있다. 서기2016.8.15. 박근혜는 광복절 기념식 축사에서 ‘건국68주년’ 타령을 늘어놓았다. 나라를 세운지 68년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겨우 68년 되었다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탄생한 신생 독립국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성질의 나라가 아니다. 이미 이전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있었고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2096년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한 단군으로 대변되는 조선의 역사가 있다. 박근혜의 건국68주년 발언은 이와 같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송두리 째 부정하는 것이고 이를 반기는 일본과 중국에게 우리역사를 팔아먹는 짓이다. 또한 우리 최고법인 헌법전문이 선언하고 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을 부정하는 것이고,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는 대통령의 탈을 쓰고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파괴하고 있다. 반국가 반헌법적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마땅히 국회는 탄핵소추하고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해야 한다. 또한 검찰은 신속히 반국가, 반헌법 범죄자 박근혜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 박근혜가 광복절 기념식에서 갑자기 건국68주년을 언급한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공식적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건국68주년을 끼워 넣은 것은 우연한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친일청산이 법률까지 제정되어 진행되고 전 분야에 걸쳐 청산 작업이 미약하게나마 진행되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해방공간에서 진행되다 이승만의 방해공작으로 좌절된 ‘반민특위’의 부활과도 같았다. 온 기득권을 다 차지하고 있던 친일매국역적세력은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다음에 정권을 탈환하고자 똘똘 뭉치기 시작하였다. 공공의 적을 앞에 두고 어제의 원수, 적들이 동지로 하나가 되었다. 친일매국역적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풍기던 세력은 공멸의식으로 똘똘 뭉쳐 사회각계각층에 흩어진 세력을 모아 ‘뉴라이트’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왜색에 바탕을 두고 숭미로 화장을 한 괴물이었다. 이들은 대놓고 식민지 시절이 한국에게 축복이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퍼뜨리고 교과서를 만들어 백범 김구를 일제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한 범죄자로 기술하여 정확하게 왜구난동기, 왜구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역사 왜곡과 말살에 참여한 친일사학자, 이병도를 우리역사 연구를 위해 노력한 공헌자로 기록하였다.

▲ 뉴라이트 회원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있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박근혜. 아래 줄 맨 왼쪽이 현재 한국방송사장으로 있는 뉴라이트 이인호, 전형적인 친일파 후손이다. 며칠전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기자회관(프레스센타)에 모여 '건국68주년' 행사를 가졌다. 박근혜 오른쪽 눈썹 짙은 이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서울대 교수, 이영훈이다.

서기21세기 문명개화되었다는 이 때에 서기20세기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투사들을 가두고 죽이고 역사를 난도질한 친일매국역적세력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악랄하게 부활을 한 것이다. 그 정점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다. 지난해 이어 올해 거룩하고 숭고해야 할 광복절 축제에서 ‘건국68주년’이라는 말이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건국68주년’이라는 것은 독립운동세력을 제거하고 저들에게는 국부인 이승만이 주인공이 된 친일매국역적의 나라, 대한민국을 세운지 68주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은 이처럼 기회주의와 배반과 변절 그리고 친일매국에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친일매국역적세력이 대통령을 만들어 집권한지 10년도 안되어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거덜 나고 있다.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영훈.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일제식민지배가 축복이었다고 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8.15 해방 후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 받은 친일사학세력이 국사학계를 장악하고 일제가 만들어 준 식민지 노예의 역사를 심어 놓은 지 71년이 지나고 있다. 친일매국사학세력은 이렇게 우리 영혼을 근본적으로 좀먹고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식민사관을 더욱 강고하게 완성하며 동북아역사재단을 통하여 조선총독부가 하던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발맞추어 동북아역사지도집을 만들어 우리역사의 새벽을 모두 중국에게 상납해 버렸다. 일제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여 우리역사는 중국한나라 식민지로 시작하였고,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배는 우리를 문명개화시켜준 축복이었다는 것이다.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설치되어 4백 년 동안 이어지면서 중국의 선진문물을 전해주어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왜구의 조선 식민통치도 자연스럽게 근대화를 시켜준 축복이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매국역적 짓을 국가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연간 수백억을 지원하고 있다. 뿌리 뽑힌 사이비 몰민족 진보세력은 이 매국사학계를 진보라는 이름으로 비호하며 반민족, 반국가 친일사학을 함께 퍼뜨리고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집단이 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비평’이다.

이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은 구한말 보다 더 심각한 망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광복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체만 바뀌었지 여전히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주체가 왜구에서 한국인 모습을 하고 있는 친일매국역적들로 바뀌어 있어 마치 독립된 국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왜구난동기에는 적군과 아군이 분명히 구별되어 독립투쟁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피아가 서로 뒤 섞여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 아군이고 동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적이었음을 나중에 가서야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알면서도 해방공간에서 친일매국역적세력을 청소하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들이 상전이 되어 있는 가운데 이 역적들과 한 공간에서 구역질나는 동거를 71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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