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원사료는 조선(단군)이 대륙 깊숙히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다.

 

‘낙랑군 재하북성설’의 10가지 핵심 근거(두 번째)

고조선의 열수는 연나라의 남쪽을 흐르는 강,

중국 정사인 『진서』는 낙랑군을 하북성 일대로 기록,

일제가 발굴‧조사한 ‘점제현신사비’는 신뢰 어려워...

 

▲ <그림 1> 낙랑군 및 고조선의 갈석산과 습수, 열수, 산수, 패수의 위치

2. 고조선의 열수는 하북성 남부지역을 흐르는 호타하이다

1. 열수 관련사료

사료 번호 열수 관련사료

B-1 『사기집해』 :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열수․산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낙랑과 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이름인듯하다.”고 하였다. 集解張晏曰 : 朝鮮有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 朝鮮取名於此也.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B-2 조선은 열양의 동쪽으로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 곽박이 말하기를 “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으로 기자를 봉한 곳이다. 열列은 또한 물 이름이다. 지금 대방에 있는데, 대방에는 열구현이있다.”고 하였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郭璞云, 朝鮮今樂浪縣,箕子所封也. 列亦水名也,今在帶方,帶方有列口縣. 『山海經』卷十二, 海内北經

B-3 열구현 : 곽박이 주석한 『산해경』에 이르기를 “열은 물 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고 하였다. 列口縣 : 郭璞注山海經曰「列, 水名. 列水在遼東.」 『後漢書』志第二十三, 郡國五, 右幽州, 樂浪

B-4 평주는 생각건대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 후한 말에 공손도가 스스로 평주목을 칭했다. 그의 아들 공손강과 강의 아들 공손연이 모두 제멋대로 요동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나라는 동이교위를 설치하여 양평에 거하였고, 요동ㆍ창려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개 군을 나누어 평주로 삼았다. 후에 도로 유주에 합하였다. 공손연을 멸한 후에 호동이교위를 두어 양평에 거했다. 함녕 2년(AD 276년) 10월, 창려ㆍ요동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군국을 나누어 평주를 설치했다. 26현 18,100호이다.

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及其子康 康子文懿竝擅㩀遼東, 東夷九種皆服事焉. 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莵 帯方 樂浪 五郡為平州, 後還合為幽州. 及文懿滅後, 有䕶東夷校尉, 居襄平. 咸寧二年十月, 分 昌黎 遼東 玄莵 帯方 樂浪 等郡國五置平州. 統縣二十六, 戶一萬八千一百. 『晉書』卷一十四, 志四, 地理 上, 平州

B-5 (소진이) 연나라 문후에게 유세하여 말하였다.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쪽에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쪽에는 호타와 역수가 있다. 지방이 이천여 리 이며, 갑옷 입은 군사가 수십만이고, 전차가 육백 대이며, 기마가 육천 필이고, 곡식은 수년을 지탱할 수 있다. 남쪽에는 갈석과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에는 대추와 밤의 이로움이 있다. 백성들이 비록 농사짓지 않아도 대추와 밤으로 넉넉하니, 이것이 이른바 천부天府이다...(하략).”

説燕文侯曰:「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南有呼沱易水,地方二千餘里,帯甲數十萬,車六百乗,騎六千匹,粟支數年. 南有碣石鴈門之饒,北有棗栗之利,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 此所謂天府者也. 『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B-6 좌장군을 불러 들여 [그가] 오자, 공을 다투고 서로 시기하여 계획을 어긋나게 한 죄로 기시棄市하였다. 누선장군도 병사를 거느리고 열구洌口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도 제멋대로 먼저 군사를 풀어 많은 병사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주살함이 마땅하나 속전을 받고 서인으로 삼았다. 『사기색은』: 소림이 말하기를 “(열구는) 현의 이름이다. 바다를 건너면 먼저 만난다.”고 하였다. 左將軍徴至,坐爭功相嫉,乖計,棄市. 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1),當待左將軍,擅先縦,失亡多,當誅,贖為庶人. (1) 索隠蘇林曰:「県名. 度海先得之.」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第五十五

B-7 (상략)...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을 지키며,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위 두 나라는 정병을 보내 연나라를 돕는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의양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을 지키며, 위나라는 황하의 바깥을 수비하고,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며, 연나라는 정병을 보내어 조나라를 돕는다...(하략).

(上略)...秦攻燕, 則趙守常山, 楚軍武關, 齊涉渤海, 韓魏出銳師以佐 之. 秦攻趙, 則韓軍宜陽, 楚軍武關, 魏軍河外, 齊涉渤海, 燕出銳師以佐之...(下略). 『戰國䇿』 趙卷第六

▲ 서기1785년에 제작된 대청광여도. 왼쪽상단 붉은 화살표에 '안문관'이 보인다. 한나라때 부터 존재해온 '안문'이다. 이 근처에 낙랑군과 관련된 갈석산이 있다고 하였다. 우측하단에는 '호타하'가 보인다.

2. 고조선의 열수는 하북성 남부지역을 흐르는 호타하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고조선을 흘렀던 습수‧열수‧산수‧패수 중에서 습수와 산수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열수와 패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되어왔다. 열수는 고조선의 중심 강으로, 패수는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강으로 이해한 까닭이다. 『산해경』과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열수를 찾아보면, 고조선의 열수는 현 중국 하북성 남부지역을 흐르는 호타하滹沱河였다.

(1) 『산해경』에 나타난 열수의 위치

『산해경』은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이다. 총 1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대황경大荒經」4권과「해내경海內經」1권 등 총 5권은 조선에 대한 기록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해경』이 고조선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사료임을 알 수 있다.<심백강 편저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75~91쪽 참조>

『산해경』에는 고조선을 흘렀던 열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오는데, 위의 사료 B-2이다. “조선은 열양의 동쪽으로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고 하였다. 곽박이 주석하기를 “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으로 기자를 봉한 땅이다. 열列은 또한 물 이름이다. 지금 대방에 있는데 대방에는 열구현이 있다.”고 하였다.

곽박(276~324)은 서진시대의 학자이다. 사료 B-1에서 ‘조선에는 습수․열수․산수가 있다’고 말한 장안도 3세기 위나라 사람이므로 장안과 곽박은 거의 동시대 사람이므로, 그들이 말하는 조선을 흐르는 열수도 같은 물이다. 위『산해경』과 곽박의 해설을 통하여 아래와 같이 열수의 흐름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첫째, 조선이 열양의 동쪽에 있는데 열양이 연나라에 속하므로 조선은 연나라의 동쪽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열양列陽은 열수의 북쪽을 의미한다. 열양이 연나라에 속한다고 하였으므로 열수는 연나라의 남쪽을 흐르는 강물이다.

둘째, 곽박이 ‘열수가 지금의 대방에 있는데 대방에는 열구현이 있다’고 하였다. 곽박이 살던 진晉나라 시대의 중국 정사인 『진서』「지리지」를 보면 평주 대방군에 열구현이 있다. 그러므로 곽박이 말하는 대방은 서진의 평주 대방군이며 그곳에 열수가 흐르고 있었다. 대방군은 낙랑군의 남쪽지역에 설치된 군이므로 열수는 낙랑군, 즉 조선의 남쪽지역을 통과하는 강물이다.

위의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열수의 흐름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열수는 연나라의 남쪽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동쪽으로 흘러 조선(낙랑군)의 남쪽을 통과하여 대방군 열구현에 이르러 발해로 들어갔다. 즉 열수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로 연나라와 조선의 남쪽을 두루 감싸고 흘러가는 강물이었다.

그러면 연나라의 남쪽을 흐르는 강은 어떤 강인지 살펴보자. 『사기』 「소진열전」에서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이 연나라 문공(文公, 재위: BC 362~BC 333)에게 한 말이다(위의 사료 B-5 참조).

소진의 말에 의하면, 연나라의 남쪽에는 안문과 갈석이 있고, 또 호타와 역수가 흐른다고 하였다. 『사기색은』의 주석에 따르면 호타는 호타하이다. 연나라의 남쪽에 해당하는 안문과 갈석은 모두 호타하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위 사료 B-2의『산해경』과 곽박의 주석에서 연나라의 남쪽을 흐르는 열수는 현 중국 하북성 남부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호타하滹沱河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곽박은 『산해경』을 주석하면서 ‘열수가 대방에 있다(사료 B-2)’고 하였고, 동시에 ‘열수가 요동에 있다(사료 B-3)’고도 하였다. 그래서 학계 일부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주석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위의 사료 B-4에서 보듯이 곽박이 살던 진晉나라 시대의 중국 정사인 『진서』에 의하면 공손씨 정권이 차지한 요동지역이 나중에 서진의 평주가 되는데, 여기에 대방군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열수가 요동에 있고, 대방에 있다고 한 곽박의 주석은 정확한 것이다.

특히 사료 B-4에서『진서』는 서진의 평주가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 지역이라고 하였다. 이 지역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라는 것은 학계의 이견이 없다. 서진의 평주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손씨 정권의 요동지역이 서진의 평주가 되었고, 여기에 창려ㆍ요동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군국이 설치되었으므로, 낙랑군과 대방군은 모두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 그러므로 대방군에 위치했던 열수 또한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조선의 열수는 현 중국 하북성 남부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호타하滹沱河였다(계속).

글쓴이 : 김 봉 렬 『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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